1년 전 한국은행은 올해 상반기 성장률로 4.0%를 찍었다. 그런데 메르스와 가뭄을 다 넣어주어도 이번 2분기 성장률은 4.0%에 턱없이 부족하다. 도대체 지난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장면 1> 2015년 7월 23일, 한국은행은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속보치를 발표했다. 전분기 대비 0.3%, 전년 동기 대비 2.2%의 초라한 성적표였다. 이에 앞서 지난 9일, 서영경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향후 경제전망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최근 성장률이 이처럼 저조한 이유를 메르스와 가뭄에서 찾았다. 이들 때문에 성장률이 0.5% 내지 0.6% 정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수출 감소도 성장률 하락에 일조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을 모두 반영해도 성적표가 초라하기는 매한가지다. 전분기 대비 0.8%, 전년 동기 대비 2.7%의 성장률로는 어디다 ‘명함’도 내밀기 어렵기 때문이다. 1년 전 한국은행은 올해 상반기 성장률로 4.0%를 찍었다. 그런데 메르스와 가뭄을 다 넣어주어도 이번 2분기 성장률은 4.0%에 턱없이 부족하다. 도대체 지난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장면 2> 지금부터 1년 전인 2014년 7월 8일, 최경환 당시 부총리 지명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섰다. 새누리당의 박명재 의원은 부총리 추천을 축하하며,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완화 등 경제활성화 대책에 관해 질의했고, 최경환 부총리는 부동산 경기부양이 경제활성화 대책의 근간이 될 것임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7월 16일, 부총리로 취임한 최 장관은 우리 경제가 저성장, 축소균형, 성과부재라는 세 가지 함정에 빠졌다고 지적하면서 “한겨울에 한여름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부동산시장의 낡은 규제들을 조속히 혁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7월 24일에는 부동산 규제완화와 40조원의 재정팽창을 골자로 하는 새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주식시장은 환호했고, 새누리당은 7·30 재·보선을 석권했다. 그 후 1년은 정말 이때 생각했던 것처럼 장밋빛 인생이었을까?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판도라 상자’ 부동산 규제 빗장 풀려
지난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많은 일들은 ‘행복한 기억’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동화 속의 피터팬과 웬디는 행복한 기억을 통해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었지만, 행복을 잃어버린 한국 경제는 지난 1년 동안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우선 정신 못 차리고 있던 한국은행을 보자. 작년 7월의 시점에서 한국은행의 경제전망은 분명히 낙관적이었다. 2014년은 3.8% 정도의 성장에 그치겠지만 2015년에는 4%대 성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1년 전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인식은 요즘 눈으로 보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저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불황형 흑자에 의한 경제 축소균형도 어쩜 그리 잘 짚었는지 모르겠다. 수치상으로는 몰라도 말의 뉘앙스만을 볼 때 최 부총리의 현실 인식이 압도했다.
문제는 최 부총리의 정책방향이었다.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한은의 입장은 몰라도) 그 당시 누구도 반대할 수 없었던 명제였다. 심지어 야당조차 ‘소득주도 성장론’이라는 단어 앞에서 최 부총리에 간단히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문제는 활성화의 수단이었다. 최 부총리가 “한여름에 입은 한겨울 옷”이라고 비아냥거렸던 부동산 규제가 이때 완전히 빗장이 풀려 버렸던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그렇게 열렸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것은 ‘영혼 없는 관료’들의 합창이었다. LTV·DTI 규제가 은행권과 비은행권을 구분하지 않고 풀리자, 비은행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던 많은 채무자들이 은행으로 말을 갈아탔다. 따라서 은행 대출통계가 즉각적으로 증가했다. 이때 기재부 관료들은 “이것은 대출구조가 정상화되는 과정”이고, 채무자 입장에서도 이자비용이 감소하므로 일석이조라고 했다. 용비어천가가 따로 없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은행에 대출을 빼앗긴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먼 산만 바라보고 팔짱끼고 뒷짐 지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주택담보대출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신용대출로도 메우고, 더 후순위의 담보를 잡고 무늬만 담보대출인 자금공급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은행권 대출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비은행권 대출도 계속 늘어났다. 비은행권 대출을 새로 받아간 채무자는 당초에는 대출을 받지 못할 정도의 신용등급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기에 비은행권 대출의 건전성은 전반적으로 악화됐다. 채무자들이 빚에 허덕이다 보니 소비가 제대로 늘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부동산 규제완화는 주택 가격을 일부 떠받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내수 확장에는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최 부총리의 치적으로 부동산시장 부양을 들지만, 그것은 소비위축과 내수침체라는 희생하에서 얻어진 ‘상처뿐인 부양’에 불과했다.
최 부총리 정책 1년 만에 ‘도로아미타불’
#<장면 3> 지난 7월 22일,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처음부터 나누어 갚아나가는 분할상환”과 “선진형 심사체계 구축”을 통해 확실하게 채무자가 빚을 갚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쉽게 말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간 채무자들이 빚을 떼먹지 않고 잘 갚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는 것이 그 진정한 골자였다. 종전까지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종용하던 모습과는 완연 딴판이 됐다. 뿐만 아니라 금융위는 소득증빙 심사 강화라는 어려운 단어를 통해 사실상 DTI 규제를 현행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기조를 변경했다. 최 부총리의 정책은 정확히 1년 만에 ‘영혼 없는 관료’에 의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아마 이 정책기조 변환을 바라보는 최 부총리의 마음은 착잡했을 것이다. 아직도 한국 경제는 본인이 취임사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저성장과 축소균형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 영혼 없는 녀석들이 그 사이를 못참고 맘을 바꿔 먹었다는 점이 가슴 아팠을 수도 있다. 더구나 그 다음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성적표는 죽을 쑤고 있었으니 아직도 경기부양이 절실한데 말이다.
그러나 최 부총리는 너무 낙담할 필요 없다. 정책방향이 잘못돼서 1년 동안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을 뿐이지 지난 1년 전 취임사에서 짚었던 그 문제의식은 아직도 정확히 타당하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완연한 저성장이고, 축소균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1년 동안 경제정책이 아무런 긍정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성과부재라는 예언조차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그러기에 이제 그만 단상에서 내려와도 슬퍼할 이유는 없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