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출 추경 분야 중 안전투자 및 지역경제 활성화는 훨씬 논란거리다. 안전투자 증대야 그렇다 쳐도 1조5000억원 규모의 ‘지역 기반시설 조기 확충’은 경계심을 촉발하기에 충분하다.
정부는 지난 3일 총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안(이하 추경)을 발표했다. 메르스 때문에 위축된 내수 경기를 진작하고 심화되는 가뭄 피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다. 메르스에 지친 국내 경기에 불을 지피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번 추경은 빛과 어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추경 적기 통과”를 외치는 정부와 여당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많은 점들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세수부족은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
우선 세입 추경 부분부터 보자. 세입 추경(보다 정확히는 ‘세입 경정’)이란 작년 말에 통과된 예산 중 세출부분은 그대로 둔 채, 당초 예상보다 부진한 세수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적인 방법으로 세입을 보강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작년 당초 예상보다 세금이 걷히지 않아서 이대로 가다가는 연말에 돈이 모자랄 것 같으니, 다른 방식으로 돈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세입 추경에서 따져보아야 할 점은 ‘왜 돈이 부족하게 되었나?’ 하는 점이다. 작년에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지극히 이례적인 사건이 올해 덜컥 발생해서 세수가 계획처럼 걷히지 않았다면 큰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딱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이때는 예산 지출을 줄일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돈을 더 조달할지를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 내수가 부진한 요즘, 세출을 줄이는 것은 말이 안 되므로 돈을 더 조달하는 것이 맞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세수 부족이 지극히 이례적인 것이라면 세입 추경을 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 1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2015년도 추경 관련 보고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문제는 이번 세수 부족이 지극히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해마다 나타나는 ‘연례행사’라는 점이고, 더구나 작년에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라는 점이다. 올해 예산안을 짜면서 정부는 작년에 올해 경상성장률이 6%를 넘길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이런 ‘화려한’ 성장률 수치에 근거해 ‘신기루 같은’ 세수 추계를 했고, 그에 합당한 지출규모를 짜면서 ‘균형예산’ 티를 팍팍 냈다. 그러나 이런 숫자는 그야말로 ‘놀이’에 불과한 것이었고, 전문가들 중에 이런 경상성장률이 실현 가능할 것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아마 올해 물가상승률이 2%를 넘길 것이라는 잠꼬대 같은 예측을 했던 한국은행 정도만이 이런 숫자 놀이에 공감했을 것이다)
허울 좋은 세수 추계는 불과 반 년도 못 가서 그 초라한 민낯을 드러냈다. 상반기에만 적어도 10조원 안팎의 세수 부족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견된 참사다. 그래서 큰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예견된 참사가 올해뿐만 아니라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상황은 똑같았다. 예견된 참사가 되풀이되는 현상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렵다. 필자는 이것은 공무원들의 ‘고의적인 수치 조작’이라고 본다. 따라서 세입 추경을 논의하기에 앞서 지난 몇 년 동안 국회와 국민을 우롱해 온 기재부의 담당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추궁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들을 꼭 옷 벗기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속 보이는 장난을 치지 못하게 따끔하게 단속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세출 추경 부분을 보자. 세출 추경(혹은 ‘세출 경정’)이란 문자 그대로 정부의 지출규모를 변경시키는 것이다. 즉, 문자 그대로 정부의 씀씀이가 변동(이번 경우에는 증가)하는 것이다. 정부는 대략 4개 분야를 지출 증가 대상으로 선정했다. 메르스 피해 지원에 2조5000억원, 가뭄 극복에 8000억원, 서민생활 안정에 1조2000억원, 안전투자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1조7000억원 지원 등이 그 개략적인 내역이다.
미래세대가 짊어질 국가채무 상환 부담
이 중에서 메르스 피해 지원이나 가뭄 극복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고, 또 작년에는 예견되지 않았던 이례적인 사건에 대한 대응이기 때문에 (예비비가 한푼도 남아있지 않다면) 세출 경정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3조3000억원 증액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나머지 분야는 모두 논란의 대상이다. 국가재정이 탄탄할 때야 이런 일을 모두 국가가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빚에 시달리는 나라 살림을 생각하면 한푼이라도 그 정당성을 따져서 지출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증액분야 중 서민생활 안정분야의 구체적 사업 내용은 청년 일자리 확충, 고용 안전망 강화, 서민 및 취약계층 생활안정 등이다. 이런 사업에 딱히 시비를 걸기는 어렵다. 다만 “살림살이가 빠듯하니 알뜰살뜰 아껴 써 달라”는 당부 정도를 덧붙일 수 있을 뿐이다.
마지막 범주인 안전투자 및 지역경제 활성화는 훨씬 논란거리다. 안전투자 증대야 그렇다 쳐도 1조5000억원 규모의 ‘지역 기반시설 조기 확충’은 경계심을 촉발하기에 충분하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던 이유가 바로 이런 사업에 헛발질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선이 내년 4월로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특정지역 사업을 위해 세출을 경정하는 것은 오해를 사기 딱 좋다. 이제 곧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할 텐데 약 4개월을 못 참아서 추경을 해야 할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논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토목사업은 내년으로 미루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추경의 거시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적자재정은 두 가지 부정적 효과를 수반한다. 하나는 장기 금리 상승에 따른 민간투자 위축(이것을 ‘구축효과’라고 한다)이고, 다른 하나는 재정적자에 따른 국가채무 증가다. 먼저 구축효과의 가능성이나 규모와 관련해 핵심 변수는 장기 금리다. 국채 발행물량 증가가 채권가격을 하락시키고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등이 국채 물량을 소화하거나 한국은행이 적당한 규모의 통화증발을 통해 국채를 매입할 필요가 있다.
가장 답이 안 나오는 부분은 국가채무 증가다. 이번 추경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약 10조원의 국가채무 상환 부담을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어깨 위에 쌓는 것이 될 것이다. 더욱 우리의 맘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파산 등 이미 그들의 어깨와 허리를 휘게 할 요소가 팽배한 상황이고, 더구나 미래 세대의 상당수는 아직 그들을 대변할 정치적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번 추경이, 아니 매번의 적자재정이 엄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