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 불행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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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한국 대중음악 불행의 씨앗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 지음·돌베개·1만5000원

한국 대중음악의 시작에는 자본의 ‘음모’가 있었다? 지은이는 한국 대중음악의 기원에 ‘사의 찬미’를 놓는다. ‘사의 찬미’는 1926년 8월에 발표된 윤심덕의 노래다. ‘사의 찬미’는 한국문화사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음반은 발매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 전국에 보급된 유성기는 2000대에 불과했다. 대중들이 ‘사의 찬미’를 듣기 위해 유성기까지 구입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음반은 최소 3만장에서 최대 5만장까지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사의 찬미’가 이토록 성공한 데에는 비극적인 스캔들이 있었다. 음반이 발매되기 직전인 1926년 8월 5일 동아일보 사회면에는 자극적인 기사가 실렸다. ‘현해탄의 격랑 속에 청춘남녀의 정사’. 성악가 윤심덕과 희곡작가 김우진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며 동반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윤심덕은 미혼이었고, 김우진은 유부남이었다.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이후 동명의 영화로도 몇 차례 제작됐다. 그러나 이들의 동반자살이 사실일까. 지은이는 이들의 동반자살을 ‘기획자살’로 규정하며 몇 가지 근거를 댄다. 윤심덕과 김우진이 실제로 연인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들이 함께 배에 탄 걸 본 사람도, 물에 빠지는 것을 본 사람도 없다. ‘사의 찬미’도 애초에 녹음하기로 계획된 곡이 아니었다. 이들이 동반자살했다는 사실이 보도되고, 음반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돈을 번 것은 축음기를 만드는 일본의 국영기업이었고 레코드 회사였다.

동반자살이든 타살이든 이제 와서 사실을 규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실과 상관없이 지은이는 한국 대중음악이 ‘죽음’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열린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음악 내부의 논리가 아니라 음악 밖의 충격적인 스캔들 덕분에 서양음악이 한국 사회에 무혈입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양음악이 어떤 음악인지에 대해 검증할 틈도 없이 ‘그들은 죽었어’ ‘살아 있어’ ‘죽은 여자의 목소리야’라는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어느 순간 대중들은 서양음악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 사이 조선의 전통적인 미적 가치가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는 기형적인 식민지 근대문화가 만들어졌다. 지은이는 그 결과 한국의 음악이 지금껏 진정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독자적인 음악문화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며 그것이 한국 대중음악의 불행이라고 말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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