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마틴 오말리-민주당의 샛별, ‘볼티모어 폭동 후유증’ 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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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말리의 진보 성향은 클린턴이나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보다는 낫지만 사회민주주의자인 버니 샌더스 후보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보다는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혜성같이 나타난 정치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치역량이 뛰어나 한때 오바마와 함께 민주당의 ‘샛별 정치인 5인’에 꼽히기도 했다. 잘생긴 외모에 진보 성향, 여기에 오랫동안 록밴드 활동을 할 만큼 음악 재능과 활달함도 갖추고 있다. 마틴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52) 이야기다. 오말리가 지난 5월 30일(현지시간) 2016년 대선의 민주당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메릴랜드주 최대 도시 볼티모어를 기반으로 변호사를 거쳐 볼티모어 시의회 의원(1991~1999년)을 시작으로 볼티모어 시장 두 번(1999~2007년), 메릴랜드 주지사 두 번(2007~2015년)을 지내며 백악관 입성을 꿈꿔 왔다. 2002년 에스콰이어지는 그를 ‘미국 최고의 젊은 시장’에 선정했다. 시사주간 타임은 2005년 그를 ‘대도시 시장 5인’에 선정했고, 같은 해 8월 그는 비즈니스위크가 뽑은 민주당의 샛별 정치인 5명에 오바마, 마크 워너 상원의원(당시 버지니아 주지사), 켄 살라자르 전 내무장관(당시 상원의원), 램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당시 하원의원)과 함께 포함되는 영광도 누렸다.

백악관 도전은 당연했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고 그도 오래전부터 대선 출마를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를 잘못 만났다’고나 할까. 그의 앞에는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큰 산이 버티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예기치 않았던 악재까지 터졌다. ‘프레디 그레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 4월 터진 볼티모어 폭동이다. 볼티모어 폭동은 백악관을 꿈꿔 온 그에게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었다. 흑인 청년 그레이가 볼티모어 경찰에 의해 구금 도중 숨지자 흑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흑인들은 경찰의 강경대응을 비난하면서 오말리를 겨냥했다. 볼티모어 시장 당시 그가 편 강력한 범죄대응정책 탓에 그레디가 숨졌다는 것이다. 오말리의 강경 정책에 따라 2005년에만 체포자가 10만명을 넘었다. 이듬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소송에 따라 시가 문 보상금은 87만 달러나 됐다. 오말리는 당시 볼티모어 폭동의 원인을 경찰의 강경진압 대신 빈곤과 실업 탓으로 돌렸다. 시사주간 타임은 폭동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볼티모어 폭동은 안방에서의 그의 지지기반을 흔들었다고 지적했다.

마틴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가 지난 5월 30일(현지시간) 볼티모어 페더럴힐파크에서 열린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소매를 걷어붙인 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마틴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가 지난 5월 30일(현지시간) 볼티모어 페더럴힐파크에서 열린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소매를 걷어붙인 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주지사 시절 오말리는 진보 의제를 선도했다. 2011년 불법이민자에게 등록금 혜택을 주는 법안에 서명했으며, 2012년에는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에 서명했다. 사형 철폐론자인 그는 2013년에는 사형선고 철폐 입장을 밝혔고, 강력한 총기규제 정책도 시행했다. 대선 출마 뒤에도 후보 모두가 꺼려하는 총기규제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지난 6월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교회 총격사건으로 9명이 숨지는 사건이 난 뒤 그는 총기규제를 당선 후 주요 의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진보성향도 클린턴이나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보다는 낫지만 사회민주주의자인 버니 샌더스 후보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보다는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클린턴이나 샌더스보다 나은 점은 젊다는 것뿐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그는 클린턴보다 15살, 샌더스보다 21살이 어리다. 심지어 그의 지지도는 샌더스보다도 낮다. 민주당 후보 여론조사 결과 클린턴은 50~60%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샌더스가 약 15%로 2위를 고수하고 있고, 오말리는 1~2%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치고 있다. 대선 출마 선언 전인 지난해 말 그는 낮은 지지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장 선거이건 주지사 선거이건 대통령 선거이건 다양한 후보가 있을 때 역사는 항상 1~2%로 시작됐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지만 너무나 강력한 도전자와 볼티모어 폭동 후유증이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찬제 선임기자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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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용산의 역경루
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