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대접을 못 받은 사람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신간 탐색]인간 대접을 못 받은 사람들

숫자가 된 사람들
형제복지원 구술프로젝트 지음·오월의 봄 1만5000원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형제복지원은 원장 박인근 개인의 악마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국가의 법령과 공무원 사회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 국가폭력이었다. 그러나 책임자 처벌과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피해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고통 속에 살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6년까지 12년 동안 부산시 사상구 주례동에서 ‘사회복지시설’로 운영됐다. 3146명을 수용하고 있었다. 납치·감금·강제노역·학대·성폭력 등이 횡행했다. 밝혀진 사망자 수만 513명이었다.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당시 매년 20억원 이상의 국고지원을 받았다.

국고지원금은 피수용자들의 숫자로 산정됐다. 복지원에 감금된 사람들은 두당 얼마씩의 존재였던 셈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기보다는 ‘몸값’이었다. 사람이 아닌 ‘숫자’였다. 사람이 아닌 ‘숫자’에 가해지는 폭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복지원 소대장으로 불리는 성인 남성이 12세 어린 아이의 가슴을 100대씩 가격하는가 하면, 원장이 피수용자의 배를 형광등으로 가르고 거기에 소금을 뿌렸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국가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5년 정부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을 발령해 소위 ‘부랑인’ 단속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 훈령은 역앞이나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애매하고 임의적인 기준으로 잡아 감금할 수 있도록 했다. 책은 좀 더 집중해 밝혀야 할 것은 ‘국가와 사회가 왜 이런 시설을 필요로 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구술프로젝트에 참여한 서중원 작가는 전두환 정권은 사회정화라는 미명 하에 독재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를 악용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당시 성숙하지 못한 시민사회는 독재사회 속에 억눌린 자신의 분노를 약자 청소와 낙인찍기로 해소했다고 지적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정당성을 상실한 독재국가와 미성숙한 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신간 탐색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