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중국말이 잘 들리지예~? 착착 귀에 감기지 않습니꺼~?” 처음에는 “워 쓰~(나는 ~입니다)”로 그럴 듯하게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내 제멋대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어떤 때는 밑에 흐르는 자막을 그대로 읽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말을 듣지 말고 자막을 보라”고 뻔뻔하게 말합니다. 그의 엉터리 중국어에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는 여지없이 터집니다. 얼마 전 케이블채널 tvN의 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 코리아>(이하 SNL 코리아) 생방송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SNL 코리아」는 2011년부터 그 주의 주인공인 호스트를 초대해 생방송으로 콩트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 중 배우 정상훈(37)은 ‘글로벌 위켄드 와이’ 코너의 중국 특파원 ‘양꼬치엔칭따오’ 역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생방송 프로그램이다 보니 현장에서 터지는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코너의 인기를 좌우합니다. 프로그램 말미에 전 세계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는 이 코너에서 정상훈은 뻔뻔한(?) 중국어 실력과 관객의 호흡을 쥐락펴락하는 여유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의 출연 이름을 딴 맥주광고에 출연해 데뷔 18년 만에 처음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희극연기를 주로 하는 그를 다들 개그맨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는 배우입니다. 게다가 연극이나 뮤지컬 등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무대 연기를 주로 한 배우였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연기자가 되고 싶어서 다니던 미대를 자퇴하고 서울예대에 진학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대학로에서 백재현, 송은이, 정성화 등과 함께 콘서트 형식의 개그를 공연했습니다. 이 공연이 인기를 얻으면서 SBS의 시트콤 <나 어때>에 캐스팅됐죠. 이때가 1998년이었습니다. 이후 백재현은 이듬해 KBS와 손잡고 최초로 TV 속 공연 형식의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를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상훈은 <개그콘서트>의 창립멤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죠. 하지만 시트콤 출연도 좋았습니다. 송혜교, 최창민 등 당대의 청춘스타들과 함께했거든요. 그는 금방 스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이후 드라마 <세 친구> <그 여자 사람잡네> <장길산>에 영화 <화산고> <영어완전정복> <목포는 항구다> 등에 출연했지만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내 실의에 빠졌고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심하던 차에 선배 정성화의 조언으로 뮤지컬 무대에 섰습니다. 2009년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이것저것 다 하는 ‘멀티맨’을 연기하던 그는 2013년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많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립니다. 당시 뮤지컬 연습을 함께하던 신동엽의 눈에 들어 「SNL 코리아」에도 합류하게 됐죠.
그는 함께하는 연기자들을 편하게 해주기로 유명합니다. 그와 이번 「SNL 코리아」에서 만나 절친한 동료가 된 개그맨 김준현은 “함께 연기를 하면 동료 연기자를 많이 배려해준다. 눈빛만 보면 어떻게 연기를 받아줄지 금방 생각해낸다”며 감탄했습니다. 「SNL 코리아」가 끝나면 보통 밤 늦게까지 회식을 하는데 동료들을 도닥이며 가장 늦게 남아 있는 사람도 바로 정상훈이라고 하죠. 배우로서의 고민과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모두 갖춘 그를 세상은 조금씩 알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최근 tvN의 예능 프로그램 <촉촉한 오빠들>을 통해 감수성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SNL 코리아」의 다양한 역할을 통해 다시 정극 또는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고 합니다. 비록 연기를 그만두고 싶었던 고비는 많았지만 특유의 유쾌함과 진지함으로 이 고비를 넘었죠. 맹활약이 기대됩니다.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