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만 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 조사관(45)은 시민사회 내에서 ‘수사반장’으로 통한다. 대학생 시절부터 그의 이력은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으로 의심되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맞춰져 있다. 학생 때는 동료의 의문사와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목격했다. 이후에는 김훈 중위 사건, 장준하 의문사 사건 등의 진상규명에 직접 참여하면서 지금의 의문사 전문 인권운동가 고상만이 완성됐다.

/고상만 제공
2013년 2월, 그는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으로부터 한 통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는다. 국회 국방위에서 군 의문사, 인권 문제를 다루고 싶은데 도움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일주일을 고민한 끝에 그는 국회의원의 권한을 활용하면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김 의원실의 5급 비서관직 제의를 수락한다. 그는 “김 의원의 노력을 보며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느꼈다”며 올해 3월까지 계속된 국회 활동에 뿌듯함과 아쉬움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의원의 권한을 빌려 군 의문사 문제 하나만 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흩어져 있던 군 유가족 단체를 하나로 묶었고, 죽은 군인을 물자과에서 처리하던 것을 인사과로 바꾸는 등 일부 개선을 이끌어낸 부분들에 대해선 자부심을 느끼죠. 하지만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 특별법을 논의도 못한 채 국회를 떠나게 된 건 참 안타까워요.”
국회에 들어가기 직전 고 전 조사관은 자신의 의문사위 활동을 토대로 한 저서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을 펴냈다. 국회를 나온 지금은 장준하 평전 집필을 마무리하고 있다. 1993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 편을 본 것이 이후 활동 방향에 많은 영향을 줬다. 그리고 10년 뒤 그는 “운명처럼” 의문사위 조사관이 되어 장준하 사건을 조사했다. 이후에도 관심을 놓지 않은 결과 장준하의 생생한 발언이 담긴 자료를 찾아내 이를 토대로 평전을 썼다. “유신독재정권이 장준하 선생을 사찰한 기록을 우연히 찾았어요. 심지어 장 선생의 연설 내용도 다 들어 있죠. 사상계에 실린 글 외엔 장 선생의 생각을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민간인 사찰 기록 덕택에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런 면에선 (유신정권에) 고마움을 느낍니다.(웃음)”
그는 ‘잊지 않고 기억하면 언젠가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인권운동가의 삶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요새는 오랫동안 도움을 주지 못했던 ‘김신혜 사건’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씨는 2000년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돼 여태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고 전 조사관은 이 사건도 짜맞춰진 수사로 인한 억울한 옥살이라고 보고 있다. 15년 만에 김씨에 대한 재심이 열리게 되자 고 전 조사관도 여러 언론에 출연해 이 사건을 알리고 있다. “제가 인권운동가로서 사는 이유는 기억하면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김신혜씨는 15년, 김훈 중위도 17년째 진실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강기훈씨는 24년 만에 억울함을 풀었고, 인혁당 사건도 30년이 넘어서야 무죄로 밝혀졌잖아요.”
권한과 수입이 보장된 국회 보좌진 자리를 버리고 맨손의 시민운동가로 돌아갔다. 고상만 전 조사관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민단체 후원이라고 강조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사는 이들이 지쳐 쓰러지는 걸 보면 안타깝죠.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삶을 사는 시민운동단체에 기부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