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출세한 용은 개천을 안 돌본다](https://img.khan.co.kr/newsmaker/1126/20150519_80.jpg)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1만5000원
개천에서 난 용은 승자독식 사회의 알리바이다. 한국 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많이 나야 한다’는 관점을 ‘기회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대체로 동의해 왔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것이 이론적 면죄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결국 극소수의 용이 모든 걸 독식하게 하는 ‘승자독식주의’를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이 함의하고 있는 것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갑질’에 대한 합리화, 전쟁과도 같은 경쟁 지상주의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수면시간이 가장 짧고, 노동시간은 가장 길며,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세계 최고의 자살률, 세계 최저의 출산율, 청년 노동자와 관련한 끔찍한 통계들이 무수히 늘어선 나라가 됐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재벌 및 대기업들은 한국이라는 개천에서 난 용들이다. 이들은 결코 혼자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각종 특혜를 누리며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쥐어짜내는 갑질을 통해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이들의 갑질을 시작으로 한국 사회의 갑질은 다단계의 먹이사슬로 이어진다. 또한 개천에서 난 용들은 자신을 배출한 개천을 돌보기보다는 오히려 죽이는 데 앞장선다. 그래야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가 서울공화국이 된 것을 사례로 든다. 건국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과 대부분의 주요 정책 결정자들이 지방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을 죽이고 지방을 희생으로 삼아 ‘서울공화국’이 탄생했다. 개천에서 난 용들은 더 큰 성공을 위해 용의 문법을 따르지 개천을 돌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깨야지 지금의 지역차, 학력차, 임금차,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를 깰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부터 ‘개천에서 용 나는’ 프레임을 깨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진보도 마찬가지로 대기업 중심, 서울 중심의 운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