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 폴 연방 상원의원은 낙태와 동성결혼에 반대하고, 총기 소유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공화당의 주류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을 드러냈다.
미국 공화당의 2016년 대선 경선 잠재 후보자 가운데 두 번째로 지난 4월 7일(현지시간) 출사표를 던진 랜드 폴 연방 상원의원(52·켄터키주)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자유주의자(libertarian)’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는 대내적으로는 작은 정부를, 대외적으로는 불개입을 지향하는 정치인을 뜻한다. 폴은 공화당의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로 각인된 덕분에 티파티 진영뿐만 아니라 시민자유운동 단체의 지지도 받고 있다. 하지만 2010년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장을 냈을 때 “나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이 내게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서 “자유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폴이 당시 자유주의자임을 부인한 것은 다분히 상원의원 당선을 위한 정치적 노림수이겠지만 그에게는 자유주의자의 피가 엄연히 흐르고 있으며, 그 피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1988년 대선 때 소수당인 자유주의당의 대선 후보로, 2008년 및 2012년 대선 때 공화당의 경선 후보로 출마했던 론 폴 전 하원의원(80·텍사스주)이다. 아버지 폴은 복지지출 확대에 반대했고,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반대표를 던진 소수의 공화당 의원 중 한 명이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했듯 자기 지역구 텍사스주가 미 연방에서 분리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공화당의 랜드 폴 상원의원이 지난 4월 7일(현지시간) 지역구인 켄터키주 루이빌의 골트하우스호텔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낙태와 동성결혼에 반대하고, 총기 소유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폴은 공화당의 주류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을 드러냈다. 이란과의 전쟁을 원치 않고,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을 원하고, 이스라엘을 포함해 외국 원조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도 지지하지만 의회의 절차를 거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전 국가원수 제거를 위한 미국의 군사행동이 이란의 세력 확대와 IS의 준동을 낳았다는 이유로 비판하고, 같은 이유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축출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또 국가안보국(NSA)의 불법 정보수집에 반대해 지난해 2월에는 대권 잠재 후보 가운데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 주류와 다른 성향 탓에 공화당의 대표적인 매파인 2008년 대선 후보 존 매케인 상원의원으로부터 “공화당 잠재 대선 후보 가운데 최악”이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폴이 자유주의자냐 아니냐를 둘러싼 미 논객들의 갑론을박과는 별도로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는 데 유리한 쪽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자유주의 옹호 저널리즘을 위한 게리슨센터의 토머스 크냅은 카운터펀치에 쓴 글에서 “(그는) 카멜레온이자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폴은 최근 드론(무인비행기) 정책에 대한 입장 선회에서 이 같은 모습을 드러냈다. 4월 27일 보수언론 폭스뉴스에 출연한 그는 지난 1월 드론 공격으로 파키스탄에서 미국인 인질이 사망한 데 대해 “전투와 관련 없는 곳에서 드론 활용을 반대해왔지만 전시에는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2013년 3월 오바마의 드론 정책 책임자였던 존 브레넌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인준안에 반대해 13시간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했을 때와는 상반되는 것이다.
CNN과 ORC가 지난 4월 16~19일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에서 폴은 공화당 대선 잠재 후보 가운데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에 이어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주)과 함께 공동 3위를 기록했다.
<조찬제 선임기자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