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자본의 갑질에 시달리는 노동](https://img.khan.co.kr/newsmaker/1125/20150512_80.jpg)
노동여지도
박점규 지음·알마·1만6800원
한국의 노동현장 스물여덟 곳의 이야기를 담았다. 1997년 구제금융 이후 노동 유연화라는 이름 하에 노동자는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존재가 돼버렸다. 20년 동안 노동운동을 한 지은이는 2014년 3월 수원을 시작으로 2015년 4월 파주까지 1년 2개월 동안 전국 28개 지역을 뛰며 노동여지도를 그렸다.
그가 그린 지도에는 갑질하는 자본과 착취에 시달리는 노동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28곳을 뛰어다녔지만, 어디를 가도 삼성과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었다. 여정이 거듭될수록 회의에 젖어들었다는 지은이는 “재벌들이 만들어놓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를 빼놓으면 쓸 이야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동네 골목, 시골 어귀까지 재벌이 삼키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여지도’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지은이는 대기업과 거대자본의 그림자 속에서도 작은 희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 노동자자주관리회사로 전환하고 흑자로 돌아선 시내버스회사, 노조와 병원장이 함께 일궈낸 행복한 공공병원, 성과급을 받는 대신 후배들을 정규직으로 만든 선배 노동자들은 21세기 신산한 한국 노동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또렷한 희망들이었다.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15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노동자들에게 숱한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정부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노동 유연화를 더 강화하려고 한다.
지은이는 결국 노동자들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는 노동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일부 대공장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묵인하고 조장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일부를 불신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매도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지 묻는다. 노동여지도 여정에서 만난 건강한 노조들이 결국 건강한 연대망으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