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에 물량팀까지 ‘목포 하청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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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석유시추선에서 오전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으러 쏟아져 나온다. 똑같은 현대삼호중공업 작업복을 입었지만 직영과 하청, 물량팀이라는 세 개의 신분이다. 사무직을 제외하면 생산현장의 80%가 비정규직이다.

‘열차가 나주의 너른 평야를 달린다.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들은 나주를 출발해 목포를 향해 걷고 있다.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으로 향하는 19박20일 행진이다. 세월호 참사 300일, 4·16 가족협의회는 광주 5·18 묘역을 참배하고 세월호 인양,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페이스북에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수경, 박호민 조합원의 덥수룩한 얼굴이 보인다. 평택을 출발해 하루 10시간씩 400㎞를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걸었다. 70m 굴뚝에 올라간 후배 김정욱과 이창근을 두고, 천리길 행진에 나선 이유는 쌍용자동차 동료와 가족 26명의 죽음이 세월호 304명의 ‘죽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남녘 끝자락, 봄기운 품은 바람을 안고 목포대교를 건넌다. 바다 너머 골리앗 크레인과 건조 중인 배들이 보인다. 북으로는 무안과 나주에서, 남으로는 진도 해남까지 전남 서남부 권역에서 가장 큰 회사 현대삼호중공업이다. 사원아파트 앞 도로가 주차장이다. “지난해 특수선 수주를 많이 받았어요. 하청업체에서 하루에 100명 안팎이 새로 들어와요. 통근버스와 식당에 자리가 없어서 난리예요.” 임양희 노조 조직부장(36)은 2001년 제대하고 일주일 만에 하청업체에 들어와 2013년 정규직이 됐다. “그나마 사람을 뽑을 때였고, 운이 엄청 좋았죠.”

세계 4위 조선소 현대삼호중공업. 정규직 4259명, 소속외근로(비정규직) 1만580명이 일하고 있다고 고용노동부에 공시했다. 그런데 회사 안에서 밥 먹는 사람은 1만7000명이 넘는다. 2000~3000명이 물량팀과 알바생들이다. 물량팀이란 팀장을 주축으로 10~20명이 팀을 꾸려 선박 블록 등을 만들어내고 일감이 끝나면 해고되는 비정규직팀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노동부가 작성한 ‘현대중공업 종합안전보건진단’을 통해 296개 사내하청이 물량팀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제조업 사내하청에 있어 다단계 하청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식당 앞에서 선전전을 하는 현대삼호중공업 노조 간부. | 현대삼호중공업지회 제공

식당 앞에서 선전전을 하는 현대삼호중공업 노조 간부. | 현대삼호중공업지회 제공

일감이 끝나면 해고되는 비정규직들
공장 정문 신축건물 유리창 청소가 한창이다. “수백억 들여 건물 짓고, 작년에 관리직 신입사원 뽑고, STX 출신 경력사원도 뽑았어요. 그런데 사무직 희망퇴직을 받는다니 말이 됩니까?” 현대중공업은 울산에서 1500명, 삼호에서도 100명 이상의 사무직을 쫓아내겠다고 한다. 울산에서는 사무관리직이 노조를 결성했고, 삼호에서도 대리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 사무실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조선소 풍경이 경이롭다. 세계에서 가장 큰 1만톤 해상크레인이 바지선을 올리는 시운전 중이다. 대형 선박이 육지에서 건조되고 있다. 유압으로 배를 들어 올려 레일을 통해 바다로 옮기는 신공법이다. 제철소에서 싣고 온 철판을 쌓아놓은 철판 분배장을 지난다. 소독과 녹방지 작업을 마친 철판이 가공부로 옮겨져 다양한 크기로 잘린다. 조립공장으로 옮겨진 철판이 용접되어 점점 큰 블록이 만들어진다. 용접공들의 세밀한 손기술이 더해져 오목하고 불룩한 모양으로 변한다. 완성된 블록이 트랜스포터에 실려 샌딩숍과 도장숍으로 옮겨진다. 녹 방지, 미생물 처리 등 많게는 7번의 페인트칠을 입은 블록이 도크장으로 모인다. 골리앗 크레인으로 블록을 들어 올려 용접한다. 1만3000개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바다로 나가면, 바다 위에서 배 내부 작업이 진행된다. 바다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절반을 넘는다.

이동식 석유시추선에서 오전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으러 쏟아져 나온다. 똑같은 현대삼호중공업 작업복을 입었지만 직영과 하청, 물량팀이라는 세 개의 신분이다. 사무직을 제외하면 생산현장의 80%가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파업권이 있어도 생산에 차질을 줄 수가 없으니 정말 힘듭니다.”

식당 앞에서 노조 간부들이 ‘강압적 퇴사를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사무직이라고 펜대 굴리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안전모 쓰고 시커먼 옷 입고 현장을 뛰어다닌다. 선배들에게 조인트 까이고 인격모독 당하면서 밤 9시까지 일한다. 회사는 사무직의 월급을 성과연봉제로 바꾸고 사람을 찍어서 내보내고 있다. 사무직 구조조정 다음은 생산직이다. 노조가 함께 싸우는 이유다.

식당 게시판에 노동조합 일정이 붙어 있다. 2월 12일 세월호 도보행진단이 공장 앞을 지난다. 노조는 500만원의 예비비를 받아 식사와 간식을 준비했다. 조합원들을 모아 14일 진도 팽목항 범국민대회에 참여한다. 구조조정, 산재사고, 대의원 선거, 비정규직 상담, 세월호 행진…. 할 일이 산더미다.

이동식 석유시추선. | 현대삼호중공업지회 제공

이동식 석유시추선. | 현대삼호중공업지회 제공

작년에 비정규직 4명 사고로 사망
2월 25일 국회에서 9개 조선소 노동조합이 모인 ‘조선업종노조연대’가 출범한다. 조선소 물량팀 실태조사를 벌인다. 현대삼호중공업 신은식 지회장은 서울 계동 현대중공업 사옥에 올라가 1인 시위를 시작한다. “작년에만 여기서 4명,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8명이 죽었어요. 모두 사내하청입니다. 비정규직, 물량팀, 사무직 구조조정까지 조선산업이 최대 위기예요. 정부와 국회가 나서라고 싸울 겁니다.”

공장 근처 한 사무실에 현대삼호중공업 해고자들이 모였다.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황영수 사무국장은 두 번 해고됐다 복직된 후 2010년 세 번째 해고됐다. 2002년 발전노조 연대파업, 2005~6년 비정규직법 반대 파업, 2007년 한·미 FTA 반대 파업 때문이었다. 지난 연말 교섭에서 해고자 1명 복직에 합의해 남은 해고자는 3명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과 파견업종을 늘리고 해고를 쉽게 하고 임금을 깎겠다는 박근혜 정부에 맞서 민주노총이 4월부터 파업을 벌인다. 해고를 각오하고 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해고자들과 공장 안 활동가들이 모였다. 1만명이 넘는 하청노동자가 있는데 뭐라도 해보자고 했다. 노조와 현장 조직에도 제안했다.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희망노동자’가 만들어졌고, 매주 공장에 홍보물과 명함을 나눠주며 상담을 시작했다. 하청업체들이 6개월이 되기 전에 취업을 못하게 했다. 기능공들이 높은 시급을 찾아 회사를 옮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현장에 불만이 높았다. 설문지를 만들어 통근버스 타는 곳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노조도 선전물로 알렸다. 순식간에 300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회사가 뒤집어졌고, 노조로 공문을 보내 하청업체가 취업 제한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해고자 양현주씨는 “직영들이 지들만 먹고 살려고 한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이번 일로 하청노동자와 노조의 거리가 좁혀졌다”며 “노동조합을 찾아오는 문턱도 낮아졌다”고 말한다. 하청노동자들을 모아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이 남았다.

황형수 국장이 대불공단을 안내한다. 현대삼호중공업 3배 면적의 국가산업단지로 선박 블록 공장들이다. 조기형 서남지역지회 사무장(50). 그는 목포 삼학도에서 태어나 18살 때부터 호남에서 제일 큰 남양조선소에서 안강만 어선과 모랫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행복한 시절이었다. 1997년 대불공단에 들어와 지성중공업에서 7년, 디에스중공업에서 2년8개월 일했고, 최근에는 대한중공업 케이트 등 블록공장들을 떠돌아다녔다. 30년 경력의 치부, 용접, 제관공 월급이 250만원이다. “대불공단에 3만명 넘게 일하는데 근로조건이 전국에서 제일로 열악하죠. 4대 보험도 없고, 임금은 상습적으로 체불되고.” 공장은 있는데 직원이 없다. 관리인 몇 명만 두고 공장 안에 하청을 둔다. 그들이 다시 재하청을 준다. 현대삼호중공업 납기를 맞추기 위해 물량팀을 공장에 들여 물량을 쳐낸다. 그래도 안 되면 저녁에 아르바이트, 이주노동자 불러다가 일을 시킨다. 물량팀장은 돈을 못 받았다며 월급을 미루다 사라진다. 경영승계 계획인지, 현대삼호중공업이 2공장을 힘스로 바꾸고 물량을 파격적으로 준다. 다른 공장들은 수주량이 없으니까 힘스에 가서 물량팀으로 일한다. 용접공들이 대불공단 이곳저곳을 빙글빙글 돌며 일한다.

“대형 블록공장들이 직영이 없으니까 그게 젤 큰 문젭니다. 야간, 일요일까지 일하고 언제 노조 만듭니까? 한 해 13명이 삼호와 대불공단에서 죽어나갔어요. 바지선이 폭발해서 죽었는데, 가스 냄새가 그렇게 난다고 해도 납기일 급하다고 일하라고 하고, 즈그 직원이 몇 명인 줄도 모르고, 그런 공장들이에요. 노동부는 근로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전남도지사나 목포시장은 찾아오지도 않아요.”

전화 한 통이 울린다. 용접하는 조합원이다. 공장에 일이 없어 다른 곳으로 옮긴다며 조합을 탈퇴하겠단다. 금속노조 서남지역지회에서 체불임금을 해결하고 떠난 사람이 5000명이 넘는다. 조합원 100명이 대불공단 3만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

목포시청 앞 호남축산 노동자들. | 박점규

목포시청 앞 호남축산 노동자들. | 박점규

사람이 죽어도 오지 않는 도지사와 시장
‘호남축산 미화원 임금 월 100만원은 어디로?? 피켓을 들고 목포시청 앞에 서 있는 장영준씨(47)는 호남축산영농조합에서 12년 동안 일했다. 목포 시내를 돌아다니며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 무안의 공장에서 퇴비로 만든다. 운전기사가 9명, 수거원이 11명이다. 관리직 4명은 사장의 아들과 사돈 딸 등 친인척이다. 밤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해서 받는 월급이 상여금을 포함해 161만원, 세금 떼면 140만원이다. 야간 휴일수당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휴가는 설과 추석 이틀씩 1년에 4일. 여름휴가도, 결혼식 휴가도 없었다. 참다못한 노동자들 19명이 지난해 12월 노조를 만들었다가 4명이 해고됐다.

장영준씨가 들려준 얘기는 놀라웠다. 목포차로 무안의 아파트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게 해서 양쪽으로 돈을 받아먹고, 폐수 정화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썩은 물이 흐르게 하고 기사에게 책임을 떠넘겨 경찰 조사를 받게 했단다. 1년에 신발이 4켤레 닳는데 한 켤레도 안 사주고, 비옷을 요청했더니 2004년에 사줬다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목포시다. 지난해 호남축산에 지급한 노무비가 8억8000만원인데 노동자들이 실제 받은 인건비 총액은 4억원이 되지 않았다. 목포시에서 준 월급이 1인당 263만원, 실제 받은 총액은 161만원으로 1인당 100만원이 사라졌다는 것인데 목포시는 몰랐단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와 재활용은 시와 시민들을 위한 일이다. 당연히 목포시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구 민주당은 입만 열면 비정규직을 얘기한다. 최근 당 대표 선거는 정리해고법 파견법을 만든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지원과 비정규직법을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 문재인이 겨뤘다. 박근혜 정권은 비정규직법을 더 개악하겠단다. 개그콘서트 ‘도찐개찐’이다.

“새누리당은 나라 팔아먹고, 민주당은 국민들 피 빨아먹고. 음식물 쓰레기보다 더 썩었당께요.” 노조 대표를 맡고 있는 한장백씨가 분통을 터뜨린다. 민주당 20년 장기집권 김대중 ‘선상님’의 도시. 비정규직 ‘목포의 눈물’이다.

전남도청과 교육청이 있는 무안읍 전교조 전남지부 사무실. 늦은 밤, 수업을 마친 교사들이 모여든다. 밝고 활기찬 얼굴들이다. 전남의 교사 1만8000명 중 6000명가량이 전교조 조합원으로 전국에서 비율이 가장 높다. 중·고등학교는 60~70%, 100%인 학교도 있다. 촌지와 비리가 스며들기 어렵다. 지난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려는 정권에 맞섰다. 서울 조합원들은 정부가 탈퇴시키라는 해고자를 지부장으로 당선시켰다. 전남 교사들도 당당하게 싸웠다. 목포의 교사들은 희망버스를 비롯해 연대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무안에서 해직되었다가 해남제일중학교로 복직한 조창익 전교조 전남지부장. 그는 민주노총 서남지구협의회 의장, 목포신안지부장을 하면서 만났던 노동자들의 삶을 하루하루 기록해 <행복한 혁명을 위하여>를 펴냈다. “전교조가 부끄러울 정도로 벼랑 끝 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배워 전교조 운동이 노동운동 전선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행복한 미소에서 목포의 내일을 본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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