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빅5’는 스타트업계의 ‘큰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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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방식은 회사별로 각각의 특색… 공동으로 기금 출자 ‘벤처자선’ 프로그램도

“지분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한다.”(넥슨) “스스로 약속을 저버리고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다.”(엔씨소프트)

1월 27일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경영권 참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양사 간의 경영권 분쟁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오자 국내 IT업계의 관심은 온통 이 주제로 쏠렸다. 넥슨의 지주사인 NXC의 김정주 대표와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한 학번 차이인 서울대 공대 동문이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됐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두 회사 간의 협업이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고 경영권 분쟁으로까지 이어진 배경을 살피면 20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김정주 대표가 미국의 대형 게임업체 EA를 인수해 국제 게임시장으로 진출하자고 김택진 대표에게 제안했다. 김택진 대표는 인수자금 확보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엔씨소프트의 지분 14.68%를 넘기며 제안에 응했다. 하지만 EA 인수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어서 2013년 ‘마비노기2’ 게임 개발과정에서도 양사 간 협업 시도가 또다시 실패했다. 이때부터 두 대표의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 0.38%를 추가 매입하며 최종 15.08%를 보유하게 되면서 업계에서는 넥슨이 엔씨소프트를 인수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게 된다.

스타트업 부문에서도 이 사안은 초미의 관심사다. 두 대표가 스타트업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1세대 벤처기업가 ‘빅5’에 포함된다는 점도 그렇지만, 스타트업 출신의 두 IT업체 간 경영권 갈등의 결과는 크든 작든 현재의 스타트업들이 미래에 성장한 뒤 경영권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선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1세대 벤처기업가 ‘빅5’로 불리는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이재웅 다음 창업자(왼쪽부터)는 투자를 통해 스타트업과 벤처 부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세대 벤처기업가 ‘빅5’로 불리는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이재웅 다음 창업자(왼쪽부터)는 투자를 통해 스타트업과 벤처 부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넥슨과 엔씨소프트 경영권 갈등 눈길
“단시간에 매출 성과를 올리기 힘든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투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투자유치는 결국 창업자의 지분 감소와 경영권 위협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양날의 검’일 수밖에 없다.”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들은 넥슨과 엔씨의 경영권 분쟁은 향후 성장할 스타트업의 창업자들도 숙명처럼 맞게 될 미래일 수 있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특히 스타트업이 성장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업체를 매각하는 식의 ‘키우고 빠지기’식 창업 패턴 대신 1세대 벤처기업가 ‘빅5’처럼 장기적인 경영계획을 유지하려는 창업자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다.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함께 ‘빅5’로 불리는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한국 벤처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라는 점 외에도 개인 및 소속 기업 차원에서 스타트업 투자와 지원에 적극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스타트업 기업을 성장시켜 이윤을 내기 위한 투자 목적과 사회적 차원의 지원을 제공하는 목적 모두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는 협업의 실패요인으로 꼽히는 두 회사의 기업문화 차이처럼 스타트업 투자와 지원방식에서도 서로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한 업종과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업체를 인수하며 넥슨을 키운 김정주 대표는 스타트업 투자분야도 다양하다. 콜라보레이티브 펀드라는 이름의 펀드로 투자한 국내·외 스타트업 수는 70여개에 달한다. 미국의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릿모터스에 100만 달러를 투자하는가 하면, 디즈니에 5억 달러에 매각된 메이커스튜디오라는 동영상 제작업체에도 투자했다.

반면 김택진 대표는 게임 개발에 회사 자원을 집중하는 경영방식처럼 스타트업 투자도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크레이지다이아몬드나 넥스트플레이 등의 게임 개발 스타트업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오는 한편, 모바일 게임과 같은 선도적인 분야의 스타트업은 자회사로 편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가 경영권을 인수한 핫독스튜디오의 경우 편입 이후 실적 부진 속에 지난해에는 모회사인 엔씨소프트로부터의 투자도 끊겨 결국 청산이 결정되는 등 투자실적이 양호하지만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기업 차원과 별도로 개인적으로도 투자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과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다음카카오와 네이버라는 기업 차원에서 진행하는 벤처·스타트업 지원사업과 함께 개인적으로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카카오가 합병 이후 1000억원대 투자지원을 계획하며 케이벤처그룹을 설립했고, 네이버는 벤처펀드를 통해 약 500억원, 스타트업얼라이언스를 통해 100억원대의 스타트업 투자를 시행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과거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으로 NHN에서 한솥밥을 먹었지만 두 기업의 의장들도 스타트업 투자에서는 서로 다른 면모를 보인다. 다음카카오 합병으로 본격적으로 네이버와의 경쟁에 나선 김 의장은 스타트업 투자에서도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카카오 창립 2년 만인 2012년부터 ‘애니팡’으로 유명한 임지훈 대표와 함께 케이큐브벤처스를 설립한 김 의장은 현재까지 모바일, 게임, R&D 분야 39개 스타트업에 약 190억원을 투자했다. 이 중 컴패니멀스, 핀콘, 넵튠 등은 업계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키즈노트의 경우 다음카카오에 지분 100%가 인수될 정도로 스타트업 성공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에 비해 ‘은둔의 경영자’라 불리는 이 의장의 스타트업 투자행태는 드러나지 않은 면이 많다. 네이버의 서비스인 라인과 연동되는 라인버즐을 개발한 엔필, 모바일 게임 개발사인 모모 등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사회적 벤처 인큐베이터를 표방하는 소셜벤처 투자 유한회사 ‘소풍’을 이끄는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스타트업 투자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이 가장 뚜렷하다. 다른 1세대 벤처기업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이 있는 IT업계에 투자를 집중한 것과 달리 소풍의 투자영역은 다양하다. 친환경 의류 제작업체인 오르그닷을 비롯해 환경·여행사업 스타트업 등 국내 소셜벤처기업 8곳에 해외 기업 1곳까지 총 9곳에 투자하고 있다. 개인이 가진 지식을 공유한다는 취지의 강연 전문기업 위즈돔이나 크라우드펀딩 업체 텀블벅 등 공유경제를 표방하는 스타트업에도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소풍 사무실이 입주하고 있는 복합건물 ‘카우앤독’은 그 자체가 예비창업자를 위한 인큐베이팅 시설이다. 이들 1세대 벤처기업가 ‘빅5’가 ‘벤처자선’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며 공동으로 기금을 출자해 설립한 유한회사 ‘C프로그램’도 여기에 입주해 있다. 기존의 스타트업 투자처럼 매출과 성과에 대한 점검을 계속하면서도 투자 대신 기부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벤처자선’ 사업의 취지다. 때문에 이윤 추구와 무관하게 사회적 가치가 있는 활동을 하는 비영리기구나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자사의 이익을 위한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는 이면에 사회적 차원의 투자가 병행되고 있는 점은 스타트업 출신 벤처기업인들이 등장하면서 생긴 새로운 문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벤처기업과 기업인 입장에서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긴 안목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탈리스트 이희윤씨는 “비교적 소액의 투자로도 성공 이후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스타트업 바닥의 특성을 잘 알기 때문에 벤처기업가들은 사적 이익과 공익 모두를 효과적으로 얻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방식과 문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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