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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열정페이’ 요구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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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지원 없이 스타트업의 서비스 콘텐츠 ‘거저먹기’로 사용 추진

1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은 광주광역시를 방문했다. 방문 일정의 핵심은 광주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건립은 창조경제 생태계를 전국적으로 확산하겠다며 미래창조과학부 등 5개 부처가 추진하고 있는 계획의 일환이다. 올해 상반기 안으로 전자·자동차·건설 등 17개 시·도마다 각각 하나씩 산업분야를 전담하는 센터가 세워질 예정이다. 광주에는 자동차산업 혁신센터가 들어섰다. 박 대통령은 “광주가 수소경제의 리더가 되도록 할 것”이라며 혁신센터 사업에 힘을 실었다.

시·도와 대기업 연결한 창조경제센터
정부에 따르면 지역별로 산업분야를 나누고 센터를 운영하는 취지는 특성화에 기반을 둔 지역경제 활성화와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창업 활성화다. 그런데 취지와는 다른 구석이 있다. 센터 건립과 운영은 각 지역마다 할당된 대기업이 맡는다. 광주센터는 현대차그룹이 맡았다. 삼성은 대구와 경북에 전자산업 혁신센터 두 곳을 운영 중이다. 롯데는 부산에 유통·관광산업 혁신센터를 짓고, 한화는 충남에 태양광에너지 센터를 짓는다. 사업에 참여하는 15개 대기업과 17개 시·도를 연결하면 프로야구 연고지와 묘하게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정부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대기업이 지어서 운영하는 이유를 대기업이 지역경제에 공헌하고, 해당 산업에서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역 산업 생태계를 이끌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간의 산업생태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스타트업 등 창업지원 역시 대기업 수요 중심의 사업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 절반 이상의 센터가 문도 열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센터 정책의 미래를 미리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 27일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월 27일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문제는 대기업들도 스스로가 참여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 사업에 이름을 올린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센터 개설지역과 아무런 연고도 없이 막무가내로 묶여버린 것만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산업분야 역시 지역의 특성과 동떨어져 있어 어떻게 사업을 진행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 역시 말을 아끼면서도 “회사에선 지역과의 연계를 차츰 옅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 방향과는 반대인 정책을 따라야 하니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업의 지원을 받아 시행하는 정책은 대기업 쪽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정부가 정보통신산업 분야의 소규모 스타트업에 이른바 ‘열정페이’(무급 또는 저임금을 해당 직종을 향한 열정으로 감내한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를 요구하는 일이 적지 않다. 민간이 자체적으로 구축한 사업의 열매만 정책 추진이라는 명목으로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정보센터는 지난해 6월 문화포털 ‘생활밀착형 맞춤 문화정보서비스’ 구축사업을 위한 제안서를 작성했다. 문제가 되는 건 제안서에 이미 스타트업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그대로 옮겨 붙이라는 내용이 담긴 부분이었다. 해당 스타트업은 인디음악 공연 소식과 음악인 정보 등을 제공하는 ‘인디스트릿’이라는 사이트였다. 정부가 예산지원도 없이 ‘거저먹기’로 스타트업의 서비스 콘텐츠를 가져가려던 꼼수는 지난해 10월 인디스트릿 대표인 이준행씨가 기관 직원의 협조 요청을 받은 내용을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해당 기관과 부처는 뒤늦게 해명에 나섰지만 인디스트릿 사이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행사 및 공연 예약시스템을 구축해 제공하고 있는 ‘온오프믹스’라는 스타트업 역시 정부 사업의 표적이 됐다. 정부가 ‘문화포털’ 사이트 구축에 책정한 총사업비 예산은 3억4900만원이었다. 하지만 사이트의 핵심 서비스인 관련 문화행사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책정된 하위 지출 항목은 없었다. ‘재능기부’라는 명목으로 예산 없이 콘텐츠를 마련하려는 정부의 방침은 인문학 강연서비스 구축계획에도 담겨 있었다. 유명인사와 유망 신인들의 재능기부 방식으로 강연료는 없이 인문학 강좌 동영상과 텍스트 등을 확보한다는 안이 제안서에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정부 지원 스타트업 자율성 보장해야
사실 정부는 이전부터 이 ‘문화포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부처간 업무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전까지 행정안전부가 총괄하던 사업을 미래창조부가 이양받고도 손쓰지 않고 방치했던 것이다. 해당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콘텐츠들의 경우 한국의 각 지역과 해외 각국의 문화행사를 알리는 코너를 마련하고 있지만, 조회수가 한 자릿수를 넘기기는커녕 ‘0’을 찍고 있는 콘텐츠도 여럿이다. 애초에 민간에서 운영 중인 각종 문화정보 제공 사이트와 차별점도 없는 데다, 주목도 끌지 못하는 사이트를 만드는 데 예산이 허비되던 참이었다.

정부 시책에 따라 경쟁력 없는 문화정책 사업을 시행한 것은 ‘문화포털’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미래부는 2월부터 ‘K-튜브’라는 약칭으로 알려진 ‘한국형 유튜브’ 개발서비스 공고에 들어가 올해 안에 사이트 구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시장점유율이 80%를 넘는 유튜브에 대항해 국내 방송 프로그램 등 영상 콘텐츠를 해외에 전파하는 경로를 만들겠다는 게 목표다. 이에 따라 지상파 방송 3사가 만든 방송 콘텐츠는 국내에선 유튜브를 통해 감상할 수 없게 제한이 걸렸다.

당연히 유튜브에 올라온 국내 방송 영상의 조회수는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급감했다. 한국어로 만들어진 영상을 제공하면서 자막과 같은 해외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도 없었다. 국내 이용자들은 손쉬운 우회접속으로 영상을 감상하는 방법마저도 쓰지 않고 불법 다운로드를 이용하는 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한국 방송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은 더 떨어지는 결과만 남았다.

6개월 안에 유튜브 수준의 영상 콘텐츠 사이트를 구축하는 데 잡힌 예산은 10억원이다. 유튜브가 창업 초기인 2005년에 서비스 제공을 위해 유치한 투자액이 1100만 달러 수준부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당초 경쟁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정부의 ‘안 되면 말고’식 정책 추진방식을 두고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원이 스타트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IT 칼럼니스트 김재연씨는 “정부가 단기적 성과 위주로 연구비 등 지원예산을 몰아주는 등의 행적을 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빗나간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이뤄낼 결과 역시 얼마나 조잡할지 예측 가능하다”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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