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다” 다큐멘터리 <망원동 인공위성> 김형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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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정복 스타트업 지침서’. 다큐멘터리 영화 <망원동 인공위성>의 포스터에 적혀 있는 선전문구다. 연출한 김형주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두고 “코리안 드림의 허상을 다룬 영화”라고 말했다. 얼핏 봐서 영화는 ‘스타트업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다. 단지 진행형일 뿐이다’라는 업계에서 떠도는 명제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였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1월 28일, 경향신문사에서 김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왜 ‘개인이 인공위성을 발사한다’는 송호준 작가의 이야기를 찍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나.
“단편영화를 찍다가 작업실에 불이 나 모든 것을 날린 적이 있다. 그 일을 겪은 후 ‘왜 나는 영화를 찍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잡지에 실린 송호준 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왜 개인이 인공위성을 띄우려 하나’라는 질문에 ‘산은 왜 오르나’, ‘음악은 왜 듣나’ 그렇게 답하는 것을 봤다. 그게 대답을 위한 대답처럼 들렸다. 그냥…이라는 것이 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감독의 트위터를 폴로하고 찾아가 만났다. ‘와서 찍으세요’라는 답을 했고 초기에 구성안도 공유했다. 송호준 작가는 자기를 찍거나 취재하는 내용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각자 자발적으로 생각하는 랜덤한 반응을 원하는 것 같다.”

마지막에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는 자막이 나온다. 결국 실패한 것이 아닌가. 인터넷 댓글 같은 데엔 결국 사기극이 아니냐는 식으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겠다.
“글쎄. 그런 반응이 실제 있는지는 모르겠다. 송호준 작가의 작업을 두고 왜 미술가 또는 예술가라고 할까. 재미있는 게 미술계에서는 직접 만들지 않아야 포스트모던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거짓말인데 진짜인 것, 진짜인데 거짓말인 것, 작품을 하나의 예술적 퍼포먼스로 본다면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균열을 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표지이야기]“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다” 다큐멘터리 <망원동 인공위성> 김형주 감독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만약 티셔츠 1만장을 팔고 유명해졌다면 성공이었을까. 이것을 하나의 과학프로그램으로 본다면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는 ‘결말’에서 실패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화적 프로젝트라는 시각으로 본다면 인공위성 발사 자체보다도 티셔츠 1만장을 팔겠다는 기획이 더 중요했을 수 있다. 성공이냐 실패냐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다른 단어가 있으면 좋겠다. 부연해 말한다면 ‘실패가 있으니 성공한다’, 이런 말은 끊임없이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해서 만드는 말이다. 나는 이것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의 다른 버전으로 본다. 스타트업이든 창조경제든 성공한 사례만 공유된다. 주구장창 페이스북을 만든 저커버그를 보라,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를 보라는 식으로 아주 예외적으로 성공한 사례만 레퍼런스로 남는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실패라기보다 이만큼 힘들었고, 이만큼 결과가 나왔는데, 그것 또한 레퍼런스가 된다면 연대의 가능성이 발견되는 것이 아닐까.”

엄밀히 말해 송호준씨의 작업을 두고 스타트업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감독이 말하는 예술적인 퍼포먼스라고 한다면. 비유로 사용한 것 정도로 생각하면 되나.
“송호준씨를 처음 만난 것이 2010년 겨울이다. 그 당시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쏟아져나왔다. ‘88만원 세대’라는 말도 유행이었다. 영화에 보면, 송 작가의 작업실 옆 주산학원이 내건 광고문구가 이것이다. ‘꿈은 이뤄진다.’ 그래서 학원 수강생들의 꿈은 이뤄졌을까. 성공하지 않은 케이스를 누가 이야기하나. 그러니까 문제가 큰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영웅입니다’라는 식으로 성공하지 않은 경우도 성공한 케이스로 만들어버리는 것,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스타트업을 포함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내지는 강박을 송호준씨 케이스를 통해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영화를 만드는 작업도 스타트업과 비슷하다. 시나리오를 쓰고 펀딩을 기다리지만 언제 시작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단 투자를 받는다고 하면 다시 수익적인 부분 때문에 ‘이런 부분은 고쳐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어찌어찌해서 엎어지지 않고 개봉해도 이번에는 상영관을 잡지 못해 2주 만에 내린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나’라는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절실한 건 관객을 포함해 모두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그런데 단어는 항상 위에서 만들어준다. 단어는 곧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말, 얼마나 멋있나. ‘요즘 뭐하니’라고 물으면 ‘스타트업이오’라고 답하면 뭔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예를 들어 ‘저는 영화감독인데요’라고 하면 이제는 그게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 너, 무직자구나’라고 답이 나온다. 비극적이고 자조적이지 않았다면 좋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영화가 개봉하면 일단 제 친구들이 먼저 봤으면 좋겠다.”

영화 망원동 인공위성은

[표지이야기]“누구나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다” 다큐멘터리 <망원동 인공위성> 김형주 감독

결과적으로 영화도 퍼포먼스의 일환이 된 것은 아닌가.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보며 든 생각이다. 로케트가 발사된 뒤 덩실덩실 춤을 추는 송호준 작가. 그것도 아마 사전에 계획한 퍼포먼스였을 것이다. 로케트로부터 나온 전파신호가 전 세계 아마추어 무선애호가들에게 잡혔다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건 광명성 1호던가, 북한이 발사했다는 인공위성이었다. 남한이나 서방언론에서는 북한이 개발한 것은 우주발사체가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 했는데, 북한은 꿋꿋하게 자신들이 개발한 것은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우주발사체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성공했다고 했다. 비록 조잡한 미디파일이지만, 이 인공위성이 무선을 통해 송신하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 신호를 누구나 포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신호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광명성 1호의 성공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어떻게 말하면 거대한 사기극이다. 그런데 우주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프로파간다다. 스푸트니크호 발사로 촉발된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 자체가 그랬다.

OSSI, 곧 오픈소스로 인공위성을 개인이 발사한다는 송호준 작가의 프로젝트는 어찌 보면 무모한 계획이다. 티셔츠 1만장을 팔아서 인공위성 발사에 드는 비용 1억원을 마련한다는 계획도 그럼직하지 않다. 영화가 기록하듯 실제 팔린 티셔츠는 600장 내외였다. 영화에 기록된 지구 반대편 해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한 외국인들이 사준 티셔츠가 5~6장이었는데도.

영화에는 두 가지 프로젝트가 동시에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는 인공위성 제작, 두 번째는 티셔츠 1만장 팔기. 둘 다 난관에 봉착한다. 청계천 뒷골목을 누비는 송 작가. 로봇태권V, 장갑차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언더그라운드적 신화는 현실과 다르다. 고작 모두 더해 1㎏도 안 되는 송 작가의 인공위성 제작계획을 딜레이시키는 원흉이다. 피를 말리는 순간, 거래했던 가게는 다른 일이 바빠 그의 절박함을 외면한다. 여러모로 여운을 많이 남기는 영화다.

2월 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글·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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