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도서의 선정에 ‘특정 이념’과 ‘국가경쟁력’이라는 기준이 어떻게 작동할지,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가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선정작품 사후 취소와 배포작품 회수를 가능하게 한 규정’까지 신설했다.
문체부의 ‘세종도서 우수문학도서’ 운영방침을 보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순수문학작품이라는 선정기준이 제시되어 있다. 특정 이념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문체부는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했다가 이른바 ‘종북콘서트’ 논란 후 철회한 전력이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1일,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시경에 출두하고 있는 신은미씨.
‘뺑뺑이’라고 불리던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가 있던 시절에, 서울의 어느 중학교에 배정된 여학생들은 대성통곡을 하였다. 밝은 보라색의 교복 때문이었다. 10리 밖에서도 눈에 확 띌 만큼 요란하고 촌스러운 색깔의 교복을 3년 동안 입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여학생들을 절망시킨 것이다. 어째서 그 학교는 그런 얄궂은 색의 교복을 골랐을까. 사립학교인 그 학교의 이사장께서 연보라색을 각별히 사랑하셨기 때문이란다.
이 나라의 버스나 열차들이며, 공공관서들에 칠해진 색들은 시각적 폭력감마저 느낄 정도이다. 공공예술을 하는 화가 출신의 친구를 만나 눈을 흘기며 따졌더니, 한숨부터 내쉰다. 아무리 돋보이는 색상을 고르면 무얼 하느냐고 했다. 도장을 눌러야 하는 결재권자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나라의 열차나 건물이 아름다워지려면, 도장을 쥔 이들의 미적 수준이 향상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경영에 능통한 단체장이며, 교통의 달인이라 불리는 운송기관장들이 화가나 디자이너들의 미적 감각을 능가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가랑잎으로 압록강’을 건너는 전지전능한 능력이라도 지닌 존재라도 되는 것일까.
좀 괜찮다 싶은 지역 축제나 문화 프로그램들이 관에서 개입하는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지 않게’ 되는 사례를 무수히 보아왔다. 공연장을 찾은 시장 부인의 말 한마디에 타악을 중심으로 해오던 음악회가 난데없는 현악기들로 채워지기도 하고, 참신한 기획으로 꾸려지던 야외공연제가 자신에게 ‘마이크’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듬해 막을 내려야 했다.

문체부의 ‘세종도서 우수문학도서’ 운영방침을 보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순수문학작품이라는 선정기준이 제시되어 있다. 특정 이념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문체부는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했다가 이른바 ‘종북콘서트’ 논란 후 철회한 전력이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1일,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시경에 출두하고 있는 신은미씨. | 이준헌 기자
돈줄 앞세워 문화예술 목 조이는 정부
아무리 창의적이고 깊이 있는 문화예술이라 할지라도 적잖은 예산이 필요한데, 그를 지원하는 단체나 정부들은 돈줄을 앞세워 문화예술의 목을 조이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4000여개가 넘는다는 이 나라의 지역 축제들이 지자체장의 임기와 그 운명을 같이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과와 관계없이 시장이나 군수가 바뀌면 지원예산을 손에 쥐고, 갈아엎고, 제 홍보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착실하게 뿌리를 내리는 문화예술 행사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관은 지원하고, 운영은 문화예술가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꾸려진다는 점이다. 관의 개입이나 간섭이 줄수록 문화예술의 꽃은 생기를 찾는다. 창의와 참신한 상상력이 요구되는 문화예술에 관이 개입하여 ‘연보라색’을 강제하는 짓은 폭력에 가깝다.
지난 1월 21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세종도서 우수문학도서’ 운영방침에 따르자면, 그동안 소외계층에 대한 문화적 나눔과 작가들의 다양한 창작을 지원하기 위하여 시작된 ‘우수도서제도’를 ‘세종 우수도서’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는데, 그 선정과 운영방식에서 적잖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돈줄을 쥔 문화부가 선정기준이라는 것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 문학 작품”, “인문학 등 지식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며,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도서”라는 알 듯 모를 듯한 기준을 박아둔 것이다. 문학도서의 선정에 ‘특정 이념’과 ‘국가경쟁력’이라는 기준이 어떻게 작동할지,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가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선정작품 사후 취소와 배포작품 회수를 가능하게 한 규정’까지 신설했다. 말하자면, 선정위원들이 정한 책일지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선정을 취소하고, 배포된 책들을 거둬들이겠다는 것이다.
우선 눈에 거슬리는 것이 ‘특정 이념’이다. 문학이 지닌 가치는 작가의 세계관과 역사의식을 배제할 수 없다. 사회 현실에 대한 작가의 관점과 비판정신은 문학의 생명이며, 이념이다. ‘특정’할 이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지만, 문학작품을 통해 작가가 구현할 가치는 삶과 사회에 대한 작가정신의 요체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이념 없는 문학은 한낱 문화적 소비재에 불과할 뿐이며, 작가의 영혼을 훼손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문학적 이념을 ‘특정’하겠다는 대목이다. 말로는 점잖게 하고 있지만, ‘특정 이념’이란 것이 돈줄을 쥐고 있는 정부를 비판하는 책은 돈을 대주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그야말로 자신이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쥘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멀쩡한 공연문화제를 일거에 없애버린 지자체장의 횡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정부가 쥐고 있는 ‘돈’이 누구의 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국민의 세금이며, 국민을 위해 써야 할 돈이다. 돈줄을 쥐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자신의 돈으로 여기는 오만함이 엿보인다.
책에 긋는 선이야말로 버려야 할 이념
‘국가경쟁력’이라는 기준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문화예술의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당장 장사가 되는 것에만 들러붙어 생색을 내는 ‘국가경쟁력’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영리를 앞세운 출판사나 대형서점들에게 그 다양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당장 돈벌이는 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문학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참신한 상상력과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지닌 작가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책이 대형서점의 구석을 벗어나 독자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도움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신은미씨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우수문학도서가 선정 취소되었다. 자신들이 선정한 우수문학도서를 종북몰이의 제물로 삼아 스스로의 결정을 번복한 것이다. 올해로 20년째를 맞으며 국제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도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부산영화제를 이끌어온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사퇴를 종용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의혹을 다룬 ‘다이빙 벨’ 영화를 상영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말이 들린다. 이번에 문화부가 내건‘특정 이념’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를 두루 짐작하게 하는 지점이다.
‘특정 이념?을 배제하고 대체된 ‘순수문학?의 정체도 아리송하다. 설마 망국의 슬픔에 잠긴 조선의 청년들에게 일제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으라던 ‘오장마쓰이(松井伍長) 송가(頌歌)?의 순수함을 말하는가. 한마디로 듣기 거북한 쓴 소리는 거두고, 오로지 별과 이슬을 노래하란 말인가. 아직도 국민들의 정당한 문화 향유를 위해 쓰일 돈을 제 손에 쥐고서 오로지 “한강을 넓고 깊고 맑게 만드신 이여”(미당 서정주의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처음으로> 중 일부)라는 말만을 듣고 싶어하는 의도라면,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국가경쟁력?을 위해 배제되어야 할 ‘특정 이념’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돈줄을 쥐고 있다고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문화예술의 선을 긋는 것은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심히 침해하는 짓이다. 표현의 자유를 생명처럼 지켜야 할 작가들에 대한 또 다른 검열의 도래이다. 세종도서의 문학나눔 사업이 그 선정부터 ‘특정 이념’과 ‘순수문학’이라는 선 긋기로 편향되는 것은 대단히 우려되는 일이다. 운이 좋게 선정이 되었다 할지라도 언제든 그 선정을 취소하고 배포된 책들을 거둬들이겠다는 말은 거의 위협에 가깝다. 어떤 출판사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책을 내려 할 것이며, 어떤 작가가 이전처럼 자유롭고 거침없이 쓸 수 있을까. 배포된 책들을 거둬들이겠다는 말이 ‘배포된 책들을 태어버리겠다’는 분서갱유처럼 들리는 현실이 심히 우려스럽다.
<이시백(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