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드라마 <미생>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를 얻었다. ‘미생’은 바둑용어로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가 인턴시험을 통과해 영업3팀에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하던 날, 그의 상사 오상식 과장은 그에게 “이왕 들어 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 봐라”고 말하며 덧붙인다.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넌 모르겠지만 바둑에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이 대사는 ‘생존’이 화두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을’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tvN <미생>. | tvN 제공
이 밖에도 <미생>의 대사는 줄줄이 화제가 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얻었다. 고졸 학력으로 번번이 취업의 벽에 부딪히는 장그래의 대사는 취업난이 극심한 청년세대에게 절절한 위로이자 안부 인사였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으로 나온 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워킹맘으로 일과 가정을 모두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선 차장의 모습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직장여성들이 처한 각박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워킹맘은 어려워. 워킹맘은 늘 죄인이지. 회사에서도 죄인, 어른들에게도 죄인,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시청자들은 미생이 보여주는 세계가 치열하고 각박해도 현실에 비하면 판타지라고 말한다. 현실에는 오 차장처럼 후배를 살피는 선배도, 사람을 아끼는 조직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가 ‘갑을관계’로 치환되고 ‘갑’들의 자의적 권력이 관행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미생>이 보여준 직장인들의 우정은 냉혹한 현실에 대한 작은 위로였던 셈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