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사회 5개영역서 필요한 인정질서](https://img.khan.co.kr/newsmaker/1106/20141217_80.jpg)
인정의 시대
문성훈 지음·사월의책·2만2000원
99%대 1%의 사회. 이제는 보편적 사회현상이다. 사회적 양극화는 경제적 불평등만 낳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친밀성의 영역에서도 양극화를 낳는다. 99%가 일상적으로 모멸감을 느끼며 산다면 1%는 99%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당연시한다. 사례는 멀리 있지 않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경비원 자살사건,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회항 사건. 소위 ‘갑질’이라 불리는 이들의 행태는 사회적 양극화가 감정의 영역에서도 구조화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과는 신분사회로의 역행이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등장했지만, 극으로 치닫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는 현대사회의 토대마저 뒤흔든다. 1%를 위한 사회에서 ‘함께 사는 사회’라는 현대사회의 이상은 신분제도보다 낡았다.
이 책은 무시와 모멸감의 악순환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인정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결정적 문제점이 사회적 통합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면 그 대안은 응당 사회적 통합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회적 통합이란 근본적으로 상호인정을 통해 형성된 공동체적 연대에 기초하고 있다. 지은이는 5가지 사회 영역에서 새로운 인정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친밀성 영역이다. 전통적 의미의 부부가 성역할에 근거한 역할분담자로서 서로를 인정했다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한 현대사회는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로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가 요구된다. 둘째, 정치적 의사결정 영역이다. 국민들을 단순히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로서 인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촛불집회나 점령운동이 보여주듯 ‘주권자’로 국민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셋째, 경제적 생산영역이다. 자본의 이윤 창출에 기여하는 ‘생산주체’로 노동자를 보면 실업자는 차별과 무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생산 주체가 아니라 사회적 활동 주체로 이들을 새롭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문화적 유대영역에서 소수자의 이질성을 수용할 수 있는 인정이 필요하며 다섯째, 세계적 영역에서 국적에 따른 인정이 아닌 세계시민으로서 대우하려는 새로운 인정질서가 필요하다.
지은이는 경쟁이 인간을 서열화하고 등급화하는 기제가 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결국 개인은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 의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긍정적 자기의식과 행복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인정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