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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방’ 주축 보좌관 그룹 MB와 경선 때부터 뭉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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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이광재·MB정부 박영준·박근혜 정부 3인방, 여의도 보좌관들 청와대 이식과정 ‘닮은꼴’

2010년 당시 친박 의원 사이에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언론 보도를 지켜봤던 박근혜 대통령(당시 의원)이 보좌 4인방(이재만·이춘상·정호성·안봉근) 중 한 명에게 이 사안의 내막이 무엇인지, 어느 친박 의원의 주장이 옳은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사안은 보좌 4인방 중 한 명의 손을 거쳐 친박 의원의 한 보좌관에게 맡겨졌다. 이 보좌관의 보고서는 왜 갈등이 만들어졌으며, 언론에 나온 것과는 달리 사실은 어떻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후 상황은 이 보좌관의 보고서대로 한 친박 의원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4인방, 친박의원 보좌관 그룹에 임무 할당
이 대목은 그동안 박 대통령이 어떤 경로를 통해 보좌진에게 지시를 하고, 이 지시를 중심으로 어떻게 친박 보좌관 그룹이 움직이는지 유추해볼 수 있게 한다.

최근 정윤회 관련 보고서 유출과 관련해 불거져 나온 ‘십상시’ 논란은 이 같은 친박 보좌관 네트워크에서 비롯됐다.

2002년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당시 보좌관)과 의원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2002년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당시 보좌관)과 의원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십상시’라는 박 대통령 보좌그룹은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해볼 수 있다. 하나는 박 대통령에게서 직접 지시를 받는 그룹이다. 보좌 4인방(이춘상 보좌관은 교통사고로 사망)을 비롯해 조인근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신동철 청와대 정무비서관·백기승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당직자·캠프 출신으로 박 대통령에게서 직접 지시를 받아 움직인 그룹이다. 여의도 시절에 박 대통령은 지시를 내릴 당시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보고하고 있는지 서로 알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칸막이식으로 일을 진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친박의 한 인사는 “직접 지시를 받는 이들은 박 대통령에게서 배려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보고를 할 때 요즘 말하는 ‘레이저’(비판할 때 보내는 무언의 눈빛) 광선을 엄청나게 받을 때도 있었다”고 이들의 네트워크가 엄격했음을 강조했다.

또 하나는 보좌 4인방로부터 할당을 받아 실무적으로 처리하는 그룹이다. 친박의원들의 보좌관 그룹이 여기에 해당한다. 보좌 4인방은 친박 의원 보좌관 그룹을 통해 일을 할당하고 친박 보좌관들에게서 보고서를 받았다. 대학교 88학번으로 1969년생 닭띠 모임인 ‘팔닭회’가 이들 친박 보좌관 네트워크의 주축이 됐다.

4인방을 도왔던 이들 중 핵심 인력들은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로 들어갔다. 핵심 인력 중에도 더 핵심인 인사들이 ‘십상시’에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친박의 한 인사는 최근 ‘정윤회 보고서’ 유출과 관련해 주변에서 “십상시에 들어가느냐”는 질문이 쏟아지자 “나는 백상시에 들어간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십상시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3인방을 주축으로 십상시의 외곽에 청와대 진출 보좌관이 있다. 더 폭을 넓히면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진출한 보좌관들이 원심력처럼 펼쳐지면서 친박 보좌관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한 보좌관에게서 보고서를 하나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거절했더니 더 이상 이 코어 그룹에서 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친박의 보좌관 그룹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경쟁할 때부터 만들어졌다. 친박 의원 사이에서는 친박 보좌관 그룹이 친이 보좌관 그룹보다 늦게 만들어짐으로써 경선 패배의 한 원인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경선에서 실패했지만 이들은 차기 대선을 준비하면서 은근히 세를 형성했다. 이때부터 친박 보좌관들의 이너서클이 만들어져 2012년 대선 때까지 이어졌다.

이들 보좌관 그룹은 경선 당시 캠프 사무실이 엔빅스 빌딩에 있었다는 점에서 ‘엔빅스’ 모임으로 불렸다. 이들 보좌관 모임은 친박 의원 1명씩을 초청해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친박 의원들의 경우 이들 실세 보좌관 모임에 한 번 ‘식사대접’을 하고 싶어 줄을 설 정도였다는 후문이 있다. 이들 친박 실세 보좌관의 힘은 친박 의원에게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됐다는 것이 새누리당 내 보좌관들의 전언이다. 한 친박 보좌관의 경우 박 대통령의 일을 보좌하는 데 전념하도록 이 친박 의원이 보좌관에게 따로 다른 일을 시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박 정부, 일만 시키고 안 챙겨 ‘사단’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지난해 4월 동아일보에는 ‘청와대 사람들’ 대해부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는 청와대에 진출한 별정직 118명의 명단이 실렸다. 외부에서 발탁된 비서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의도 국회에서 청와대로 진출한 친박 보좌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각 수석실에 골고루 포진돼 있다.

여의도 보좌진들 사이에는 ‘국회 보좌관→대선 캠프→인수위→청와대 행정관’ 진출 방식이 참여정부 당시 이광재 전 의원의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당시 인수위에서 당선자 비서실 기획팀장을 맡았던 이 전 의원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으면서 여의도의 보좌관들을 발탁해 청와대 각 수석실에 배치했다. 주로 친노 보좌관 중 이 전 의원이 졸업한 연세대 후배 보좌관들이 주축이 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영준 전 차관이 이 전 의원과 동일한 코스를 밟으며 친이 보좌관들을 청와대 권력의 핵심부로 옮겨놓았다.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생활을 하다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로 옮긴 박 전 차관은 이들 보좌관 그룹의 중심이 됐다. 서울시에 근무한 보좌관 출신 인사들과 한보협(한나라당 보좌진 협의회)으로 연결된 포항·부산 출신 보좌관 그룹이 이들 그룹의 핵심이 됐다. 박 전 차관이 인수위에서 당선자 비서실 총괄팀장을 맡으면서 친이 보좌관 그룹을 배치했고,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진출한 보좌관 그룹을 컨트롤했다.

참여정부 때 이광재 전 의원, 이명박 정부 때 박영준 전 차관, 박근혜 정부 때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이 여의도 보좌관 그룹을 청와대 권력에 이식한 과정을 보면 여러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철저하게 보좌관 그룹에서 ‘예스 맨’으로 검증된 인사들을 발탁한다는 점,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자신의 후배들로 청와대 각 수석실에 골고루 배치한다는 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청와대행이 정해지면서 2012년 대선 때까지 새누리당 보좌관 사이에는 보좌 4인방의 눈에 띄려고 노력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4인방의 눈에 든 인사들이 박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결국 배치됐다. 고 이춘상 보좌관과 연결된 보좌관들은 청와대행에서 큰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박영준 전 차관이 직접 보좌관 그룹들을 챙겨서 이런저런 말들이 없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보좌 3인방의 역할이 대통령의 심부름 역할만 하는 것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그동안 대선에서 도와줬던 보좌진들의 불만이 삐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최근 보고서 유출과 같은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데에는 일만 시킬 뿐 사람을 챙기지 않는 이 정부의 스타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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