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빼앗는 자본주의의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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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잠을 빼앗는 자본주의의 탐욕

24/7 잠의 종말
조너선 크레리 지음·김성호 옮김·문학동네·1만3800원

최근 연구에 의하면 잠을 자다가 메시지나 정보를 확인하려 한 번 이상 일어나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휴대전화를 비롯한 각종 기기에는 ‘수면 모드’라는 메뉴가 있다. 완전하게 꺼지는 것이 아닌 ‘수면 모드’는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그 무엇도 결코 근본적으로 꺼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지은이는 이것이 “실제적인 휴식상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잠을 터부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잠은 소비시간과 노동시간을 빼앗기 때문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소비하라는 자본주의 명령 앞에 잠은 거슬리는 방해꾼이다. 노동하고 소비하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잠이야말로 반체제적이라는 것.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상품화·금융화하는 데 성공했다. 배고픔, 목마름, 성욕, 인간관계까지. 그러나 잠만은 좀처럼 상품화·금융화하는 데 실패했다. 지은이는 “잠은 자본주의가 우리의 시간을 도둑질해가는 것을 비타협적으로 방해한다”며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모욕이라고까지 말한다. “우리가 가짜 필요의 늪에서 해방되어 잠을 자면서 보내는 시간은 현 시대 자본주의의 게걸스러움에 인간이 가하는 심대한 모욕들 가운데 하나로 존속한다.”

잠을 추방하려는 자본주의의 노력은 성공 중이다. 일단 수면시간이 줄었다. 현재 북미 성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대략 6시간 반. 한 세대 전에는 8시간, 100년 전만 해도 10시간이었다. ‘우리는 생애의 3분의 1을 잠자면서 보낸다’는 격언을 ‘우리는 생애의 4분의 1을 잠자면서 보낸다’고 바꿔야 할 판이다. 잠들지 말고 무엇이든 좀 해보라는 명령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끝간 데 없는 노동의 스트레스 아래에서 현대인들은 불이 꺼져도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지은이는 24/7은 밤낮없이 돌아가는 시장을 의미하며, 이 체제는 밤낮의 자연적 리듬, 일주일이라는 사회적 주기를 없애버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밤낮없이 돌아가는 365일이 아니라 밤낮없이 돌아가는 7일일까. 365일은 빠르게 변하는 시장의 속도에서 보자면 너무 장기간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등의 테크놀로지 교체주기만 보더라도 365일이라는 주기는 시장의 속도에 적합하지 않다. 24시간 주 7일 밤낮없이 돌아가는 세계에서 잠은 어쩌면 인간 주체성의 회복이다. 옮긴이는 책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삶의 의미가 깨어 있는 데에만 있지는 않다. 진정한 깨어남은 잠 속에서만 가능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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