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상에 대한 독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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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시대의 증상에 대한 독한 비판

인간의 문제
로맹 가리 지음·이재룡 옮김·마음산책·1만3000원


소설가 로맹 가리의 산문집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산문은 시대와 불화했던 소설가의 한바탕 쏘아붙임이다. 문장의 속도는 숨가쁘고 그가 골라낸 표현들은 종종 극단적이다. 그는 무엇보다 이데올로기가 품고 있는 폭력성을 혐오했다. 교조적 이데올로기에 대항해 그가 옹호했던 것은 ‘인간적 여지’다. 이데올로기는 과학과 객관화라는 명분으로 인간적 여지를 박탈했다. 전체주의를 비롯해 마르크스주의도 프로이트주의도 모든 현상을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환원하려 했다. 그는 이들에 대해 “각자의 지적 왕국은 제각기 인간 정신에 대한 총체적 제국이 되기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주의, 탈신비화, 환상의 실종도 ‘인간적 여지’를 없애버렸다. 이 또한 그가 통탄해 마지않는 시대의 증상들이었다. 그 중 그가 못내 애석해 했던 것은 여성의 탈신비화다. 그런 맥락에서 양성 평등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일견 반민주적이다. 그는 “우리 문명의 자부심이자 보석인 여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하나의 인간 존재로 변해버렸다”며 “여자를 그들 원래의 자리에 있도록 해주세요. …그들은 가장 끔찍한 덫, 민주주의의 덫에 걸렸다”고 서글퍼한다. 지독한 남성우월주의라고 타박하기에는 철없이 절절하다. “이것은 한 남자가 울리는 경종, 심장이 울리는 경종이다. 맹추위가 기세등등한 러시아의 어느 겨울날, 한 여인이 삽으로 눈을 치우는 광경을 본 충격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 남자의 심장에서 우러난 경종이다”라는 능청스러운 문장에서는 그저 웃어넘길 수밖에 없다.

‘정치인에게 보내는 연서’에서는 당대를 한껏 비튼다. 그는 다짜고짜 정치인들에게 “나는 당신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이유는 그들이 우리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진정한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란 취약하고, 불확실하고, 자기 생각이 없거나 그 생각의 부재로 실패하고, 탐욕스럽고… 교활하고, 고뇌에 찼지만 순전히 외면용인 확신과 자신감을 과시하는 ‘여전히 완전하게 인간적인 모습’의 총집합이다. 그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테랑과 시라크를 포함한 프랑스 정치인들을 독설의 대상에 올려놓는다. 그의 문장이 몰고가는 속도와 방향이 빠르고 난데없어 독자는 종종 우왕좌왕하지만, 그가 몰아붙인 문장 끝에 만나는 위트 있는 독설은 시간과 공간이 다른 지금 우리 사회에도 웃음과 통쾌함을 준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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