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오프쇼링에서 리쇼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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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흩어진 뒤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사람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사랑의 설렘과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자연은 무심하다. 사람의 고뇌 따위는 심중에 없다. 밤하늘의 초승달은 언제나 그 자리에 뜨고, 하늘은 그저 맑기만 하다. 삶은 그토록 덧없는 것일까.

장률 감독의 <경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현 교수(박해일 분)의 말처럼 ‘똥’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베이징대 교수인 최현은 친한 형의 부음을 듣고 한국의 장례식장을 찾는다. 그리고는 충동적으로 경주로 향한다. 경주 찻집 ‘아리솔’이 목적지다. 7년 전 그가 이 찻집에서 봤던 춘화를 보기 위해서다. 찻집의 새 주인 공윤희(신민아 분)는 낯선 방문객에게 호감을 느낀다. 최현은 공윤희에게 이끌려 경주사람들의 계모임에 동석한다. 술자리를 파하고 밤거리를 걷는 최현과 공윤희. 공윤희를 짝사랑하는 형사 영민은 한 능에 오른다. 그리고 그 밤 최현은 공윤희의 집에 들른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 영화 <경주>는 1박2일의 이야기다.

[영화 속 경제]경주-오프쇼링에서 리쇼링으로

<경주>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우연처럼 벌어지는 소박한 일상의 이야기라든지 화면이 길게 이어지는 롱테이크 기법이 비슷한 맛을 우려낸다. 경주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생활의 발견>도 스쳐 지나간다. 경주는 과거와 현재, 능과 기와집이 함께 이마를 맞댄 도시다. 삶과 인생, 인연에 대한 얘깃거리가 수천년 동안 쌓였을 터다. 최현은 경주를 방황한다. 사유의 답은 베이징에 더 많을 듯한데 최현은 경주에서 답을 찾는다. 최현은 공자의 후손도 경주에서 만난다. 공윤희다. 그녀는 공자의 79대 후손이다. 바다 건너 해외로 나가 학문의 경지를 찾던 이가 바다를 되돌아 와 국내에서 답을 찾는 꼴이다.

경제용어 중에도 ‘바다 건너 해외로 나간다’는 뜻의 단어가 있다. ‘오프쇼링’(Offshoring)이다. 국내 기업이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생산, 용역, 일자리 등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아웃소싱의 한 형태로도 볼 수 있다. 오프쇼링에는 공장과 연구소, 콜센터 이전 등이 포함된다. 2000년 이후 미국 제조업체들이 인건비 절약을 위해 중국과 인도로 떠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오프쇼링은 정보통신(IT)과 교통물류가 발전하고 현지화 전략까지 겹치면서 활발해졌다. 법인세 감면 등 일부 국가들의 기업유치 경쟁도 한몫 했다. 한국 기업들도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으로 대거 떠났다. 현대와 삼성 등 주요 대기업들은 해외에 상당량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오프쇼링은 국내 기업의 공동화를 불러오고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어 내수경기를 어렵게 만든다.

마냥 떠나던 기업들이 2010년 이후에는 돌아오고 있다. 리쇼링(Reshoring)이다. ‘바다 건너 국내로 되돌아 온다’는 뜻이다. 해외의 임금 상승과 토지가격 상승, 시장상황 악화 등이 겹치면서 되레 국내 경영여건이 좋아진 때문이다. 정부의 국내 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지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지 통화의 평가절상이나 규제, 언어와 사회관습의 차이로 인해 해외 생산성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던 것도 원인이다.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이 맺어지면서 자국에 있어도 관세혜택을 충분히 누리게 된 것도 오프쇼링을 결정하게 된 요소다.

베이징에서 공부하기 위해 ‘오프쇼링’을 했던 최현은 ‘리쇼링’한 경주에서 생과 사를 고민한다. 천년의 고도 경주는 중국 어느 도시에 견줘도 떨어질 게 없다. 영화 속에는 죽음이 넘쳐난다. 지인의 자살, 길에서 만난 이들의 자살, 남편이 자살하고 홀로 남겨진 미망인, 그리고 능.

죽음은 의외로 가까이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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