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군 시범비행, ‘미국의 태클’ 속내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미국이 무기 수출도 아닌 시범비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체제 출범 이후 부쩍 가까워지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자 경고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오는 11~16일 중국 광둥성 주하이(珠海)시 에어쇼 센터에서는 주하이 국제 에어쇼가 열린다.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중국의 대표적인 에어쇼다. 주하이 에어쇼는 그동안 최신형 무인기와 공격헬기 등 상당수 신무기가 최초로 공개돼 왔다는 점에서 올해도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스위스, 러시아 등 27개국의 공군 고위 관계자가 참관하는 것만 봐도 그 어느 때보다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세계 5대 에어쇼의 반열에 들어선 주하이 국제 에어쇼에는 세계 항공·우주업계 선두 업체인 보잉과 에어버스 등으로 대표되는 에어쇼 ‘단골 고객’은 물론 41개 국가와 지역의 700개 메이커가 참가한다.

‘블랙이글’ 항공기. | 연합뉴스

‘블랙이글’ 항공기. | 연합뉴스

그런데 이 주하이 에어쇼에 한국 공군의 특수 비행팀 ‘블랙이글’이 참가하기로 했다가 미국 정부의 ‘태클’로 계획이 무산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미국이 블랙이글 기종인 T-50의 주요 기술이 노출될 수 있다면서 참가 반대의사를 전달하자 한국 정부가 에어쇼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블랙이글의 에어쇼 참가를 취소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에어쇼에는 중국, 러시아, 아랍에미리트의 3개 특수 비행팀만이 축하공연을 하게 됐다. ‘블랙이글’의 에어쇼 불참은 이미 여러 차례 중국과 합의한 사안을 뒤늦게 뒤집었다는 점에서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블랙이글’ 참가 취소로 국제적 망신
공군은 블랙이글의 정비와 급유 등을 지원하기 위해 C-130 항공기 3대와 90여명의 인력까지 파견한다는 임무계획을 세워놓았는데 모든 게 헛일이 됐다. 앞서 블랙이글의 주하이 에어쇼 참가를 위해 방위력개선비 명목으로 30여억원의 방위사업청 예산까지 이미 편성해놓은 상태였다. 블랙이글 요원들의 출장비와 숙식비가 모자랄 경우 이를 방위사업청의 ‘긴요예산’으로 편성해서 최우선으로 지급하겠다는 방침도 있었다. 블랙이글의 유명 국제 에어쇼에서의 기량 발휘는 국가 이미지 개선은 물론 수출 홍보효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를 적극 지원한다는 차원의 배려였다.

실제로 블랙이글은 한국 공군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T-50의 해외수출을 위한 전략적 도구 역할까지 하고 있다. T-50은 경제적 부가가치와 새로운 수출상품으로서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

T-50 기종은 이미 인도네시아에 16대를 수출하기로 해 한국을 항공기 수출국 대열에 올려놓았다. T-50은 1대당 수출단가가 250억원 정도로, 50만원 가격의 휴대폰 5만대, 중형 승용차 1250대를 수출하는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 최첨단의 과학기술제품으로서 T-50은 중량(㎏)당 가격이 자동차의 440배에 달한다.

미국은 블랙이글의 주하이 에어쇼 참가 반대의 근거로 자국의 무기수출통제법과 국제무기거래규정 등 관련 규정을 들었다. 미국의 ‘수출승인’(EL) 규정에 따라 T-50을 수출하려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적성국에 비행해 들어갈 때도 미국의 양해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측은 외국 정부 인원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행위, 즉 시연도 수출행위로 간주한다는 항목을 중국 에어쇼 참가 반대의 명목으로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중국을 무기 수출과 국제 무기거래 규제대상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당초 블랙이글의 중국 에어쇼 참가는 한·중 양국간 국방 교류·협력 확대 차원에서 추진된 사안이었다. 한·중 양국 국방부는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국방정책실무회의를 통해 블랙이글의 중국 에어쇼 참여를 추진키로 한 데 이어, 지난 7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국방전략대화에서 최종 합의한 바 있다.

지난 2013년 10월 1일 성남공항에서 열린 건군 6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공군 블랙이글스팀이 에어쇼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

지난 2013년 10월 1일 성남공항에서 열린 건군 6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공군 블랙이글스팀이 에어쇼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

문제는 블랙이글이 타는 기종인 T-50B 8대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의 록히드마틴이 공동개발해 생산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록히드마틴은 전투기의 핵심 성능인 레이더 등 항전장비 관련 기술을 한국 측에 이전했다. T-50B는 KAI가 록히드마틴의 기술지원으로 제작한 초음속 국산 훈련기 T-50에 공연용 연기발생장치(스모그)를 장착하는 등 곡예비행에 맞게 특수비행용으로 개조한 항공기다.

지난달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가한 가운데 전력화 행사를 개최한 FA-50은 T-50을 개량한 전술입문기 TA-50을 경공격기로 개량·발전시킨 기종이다.

시연도 수출로 간주, 참가반대 명목으로
미측은 “T-50에는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날개와 비행 제어장치, 전자장비 부품 등 미국의 일부 핵심 기술이 포함되어 있어 국외 전개 때 미국 무기수출통제법, 국제무기거래규정 등 관련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에어쇼 참가로 T-50 기종의 각종 제원이 노출되고 기술 유출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국이 이번 에어쇼에 군용수송기 C-17을 선보일 예정인 것만 봐도 그렇다.

공군 특수비행팀이 미국의 ‘딴죽 걸기’로 해외 에어쇼에 참가하지 못한 사례는 이번 주하이 에어쇼가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블랙이글 조종사들은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도 해외 에어쇼에 가면 다른 나라 항공기 뒷자리에 앉아서 비행체험만 해야 했다. 과거 블랙이글 기종으로 사용하던 ‘A-37B’ 역시 미국산으로 허가 없이 분해나 조립을 할 수 없어 에어쇼 참가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기체의 장거리 수송을 위해서는 분해와 조립을 해야 하는데, 이런 작업을 미측이 원천 봉쇄한 것이다.

미국이 무기 수출도 아닌 시범비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체제 출범 이후 부쩍 가까워지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자 경고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국간 교류를 확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에어쇼 참가를 적극 추진해 왔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 국무부 법률팀이 ‘미국의 무기수출통제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미국 전투기도 중국에 전개된 사례 등을 들면서 해명을 요구하는 항의성 메일을 보냈지만 결국 제동이 걸렸다. 이런 배경에서 이번 블랙이글의 주하이 에어쇼 참가 불허는 한·중 국방 교류와 협력에 대한 미국의 ‘경고 신호’라는 확대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군사과학원의 셰융량(謝永亮) 박사는 지난 4일 신경보(新京報)에 기고한 ‘왜 미국은 중간에서 주하이 국제 에어쇼를 방해하는가?’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비밀 누설’이라는 이유로 블랙이글이 불참하는 것은 억지라고 꼬집었다. 미국이 T-50의 참가를 방해한 것은 갈수록 긴밀해지는 한·중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 방위사업의 핵심 기술과 부품의 국산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방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화력, 탄약, 기동, 항공 등 모두 11개 분야별 국산화율은 평균 63.2% 정도다. 그 중에서도 항공분야는 40.3%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T-50의 국산화율은 71%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핵심 원천기술을 미국 록히드마틴이 보유하고 있어 꼼짝없이 미측의 요구대로 블랙이글의 주하이 에어쇼 불참을 선언해야 했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한국군 코멘터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