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애들은 다 죄인이었어. 육체를 더럽혔잖아.” “섹스가 더럽나요?”
노수녀인 힐더가드 수녀의 말에 전직 BBC 기자인 마틴(스티브 쿠건 분)이 반박한다. 힐더가드 수녀는 정결과 순결을 서원했고, 육체의 욕정을 이기고 평생을 수행해왔다. 그녀의 눈에 미혼모는 하느님께 죄지은 자일 뿐이다. 그리고 그 죄는 고통 속에서 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를 낳다가 죽는 것도,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것도, 심지어 아이를 강제로 입양당하는 것도 감수해야 했다.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필로미나의 기적>은 실화 영화다. 10대 소녀 필로미나(주디 덴치 분)는 한순간의 실수로 미혼모가 된다. 강제로 수녀원에 입소당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고된 노동이다. 아이를 볼 시간은 하루 중 단 한 시간이다. 어느날 자신의 아이, 앤소니가 입양된다. 이런 사실을 숨겨왔던 필로미나는 아이가 50살이 되던 해, 평생 잊지 못하던 아이 찾기에 나선다. 이 제보를 받은 마틴이 필로미나와 동행한다.
이 영화의 원작은 마틴 식스미스가 쓴 ‘잃어버린 아이’(The Lost Child of Philomena Lee)다. 마틴은 BBC 기자 출신으로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통신국장으로 일했다.
![[영화 속 경제]필로미나의 기적-‘성욕’이 인간을 빈곤하게 만들까](https://img.khan.co.kr/newsmaker/1101/20141111_56.jpg)
20세기 초 아일랜드는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를 세계 각국에 돈을 받고 파는 정책을 폈다. 경제적 궁핍을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미혼모들은 ‘양육권을 포기하고, 평생 아이를 찾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다. 이들은 아이들이 어느 가정에 입양됐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었다. 1996년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해 엔다 케니 총리는 “과거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아이를 강제로 입양시켜야만 했던 여성들과 강제노역에 동원된 여성들에게 사과를 전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가톨릭에서는 섹스와 성욕을 부정의 대상으로 봤다. 이런 시각은 초기 경제학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표적인 이론이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인구론은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는 데 비해 식량은 천천히 증가한다’는 것으로, 그 결과 식량 부족을 피할 수 없고 인간은 계속 빈곤하다는 이론이다. 인간이 급속도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맬서스는 ‘성욕’에서 찾았다. 인간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건만 되면 섹스를 통해 아이를 늘리고, 그 증가 속도는 식량 증가 속도보다 빠를 수밖에 없다고 봤다. 예를 들어보자.
처음에는 인간 수와 식량 수가 균형이 맞았다. 인간이 섹스를 통해 아이를 많이 낳으면 인간의 수가 식량보다 많아진다. 이 식량을 얻기 위해 인간은 경쟁을 하게 되고 식량을 구하지 못한 계층은 죽는다. 그러면 다시 인간과 식량 간 균형이 맞아진다. 하지만 곧 인간이 섹스를 해 아이를 낳고, 균형은 또 깨진다. 맬서스는 목사였다. 그의 눈에 비친 섹스는 금욕의 대상이었다. 인구론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을 도울 필요가 없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면 생식능력을 회복해 식량과 인간의 균형을 깨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영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또 신구빈법을 통과시켜 구빈원의 통제를 받는 빈곤층만 지원해줬다. 인구론에 심취한 사상가 칼라일은 “경제는 암울한 학문”이라고 정의내렸다. 인구론에 따르면 인간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었다.
인구론은 자연과학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찰스 다윈은 우연히 읽은 인구론에서 ‘적자생존’의 아이디어를 구했다. 이를 생물학에 접목시켜 ‘진화론’으로 발전시켰다. ‘종의 기원’ 서문에는 이 같은 사실이 적시돼 있다.
필로미나는 10대 때의 경험에 대해 “그땐 그게 너무 좋았어.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았지”라고 회고한다. 그러자 마틴이 묻는다. “신은 왜 인간에게 성욕을 준 걸까요? 참는 거 보면서 즐기는 건가?”라고. 마틴의 물음에 맬서스는 뭐라고 답했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