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화된 압력용기의 경우 핵발전소의 사고·고장으로 비상노심냉각장치(ECCS)로부터 대량의 냉각수가 주입되면 가압 열충격 때문에 순간적으로 깨질 수 있다.
설계수명(약 30년)을 넘긴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의 가동기간 연장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고 있다. 정부, 특히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가동기간 연장을 적극 추진하는 반면 부산시·울산구의회를 비롯하여 지역주민들은 핵발전소의 노후화에 따른 안전성 저하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1978년 4월에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1호기(PWR·가압경수로)는 연장기간 10년의 종료(2017년 3월)에 대비한 추가 연장이며, 1983년 4월에 가동된 월성1호기(CANDU·가압중수로)는 설계수명 만료(2012년 11월)에 대한 최초 연장 시도이다.
핵마피아의 수명 연장 주장은 과학적인 안전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직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만을 고려한 배금주의적 발상에서 나왔을 뿐이다. 전력회사가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 또는 폐로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원자로(가압수형 경수로에서는 압력용기라고 한다)의 안전성 여부다. 노후화된 압력용기도 신품으로 교체할 수는 있으나, 그 비용과 시간이 핵발전소의 신설에 맞먹을 정도여서 경제성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노후화로 압력용기의 안전성 또는 발전효율이 떨어지면 핵발전소의 폐지를 결정하게 된다.

2013년 7월 그린피스 레인보 워리어호에서 바라본 부산 기장군 고리 원자력발전소 1·2호기. 국내 최초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원전 1호기는 2017년 3월 10년의 설계수명 연장 기한이 끝난다. | 이상훈 선임기자
따라서 고리1호기의 수명 연장에 대한 결정적인 문제점으로서, 1)압력용기의 취성천이(脆性遷移) 온도 상승 2)전기·제어케이블의 열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압력용기의 안전성을 판단하는 공학적인 주요 사항은 재질인 탄소강의 내구성, 즉 취성천이 온도의 수치다.
세계 평균 하한온도 130도 넘어
일반적으로 금속은 두드리거나 열을 가해도 부러지지 않고 늘어나는 성질을 보인다. 하지만 불에 달군 금속을 영하의 물에 급히 넣으면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 즉, 일정 온도에서는 금속이 약해져 외부 충격으로 쉽게 깨지는 취성(脆性)파괴가 발생한다. 이 일정 온도를 취성천이 온도라고 한다. 핵발전소 압력용기가 핵분열에서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의 고속(高速) 중성자를 장기간 받게 되면, 재질금속이 약해지는 조사취화(照射脆化) 현상으로 취성천이 온도가 점점 높아진다. 주요 원인은 구리·니켈·인·유황 같은 불순물의 함유량에 있다. 입자들로 꽉 찬 강판이라도 고속 중성자에 의해 불순물의 입자가 튕겨나간 만큼 입자 구성도 듬성듬성해져 강판 재질이 무르게 된다. 취성천이 온도에 대한 관련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급조된 화물선의 빈번한 침몰사건이 계기였는데, 1960년대에 들어서 침몰 원인이 선박 강판의 취성천이 온도 상승으로 밝혀졌다.
영하의 물 속에서도 견딜 선박의 강판이 불순물이 많은 탓으로, 상온의 물에 쉽게 깨졌던 것이다.
따라서 노후화된 압력용기의 경우 핵발전소의 사고·고장으로 비상노심냉각장치(ECCS)로부터 대량의 물이 주입되면 가압 열충격 때문에 순간적으로 깨질 수 있다. 고준위방사능의 핵분열 생성물질이 대량 방출되는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다. 고리1호기의 경우, 압력용기 내에 넣어둔 같은 재질의 시험금속편(片)의 예측온도 측정에 따르면 가동시(1978년)의 취성천이 온도(영하 23도)가 138.06도(1988년), 142.33도(1999년)를 보이고 있다. 1999년 당시 압력용기에 142.33도 이하의 상온의 물이라도 갑자기 대량으로 들어오면 용기가 파괴될 수 있다는 뜻이다. 2014년 현재 고리1호기 압력용기의 취성천이 온도는 더 높아져 있을 터인데 세계적으로 사례를 살펴보면 ECCS의 작동에 따른 압력용기의 평균적인 냉각온도는 130~150도로 알려져 있다.
핵마피아는 금속시험편의 예측온도 측정방법의 변경이라는 편법을 통해 규정치인 149도보다 낮은 126.66도(2005년)로 계산하여 여전히 안전성을 주장하고 있다. 백보 양보하여 10년 동안 겨우 몇 도만 올랐다 하더라도, 이미 세계 평균적인 사례(ECCS)의 하한온도(130도)를 넘어서고 있다. 또 핵마피아는 압력용기 내의 일정 기압과 금속균열의 존재를 파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파괴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려는 자세를 보이지만 금속균열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압력용기의 비파괴검사에는 소극적이다.
한편 실질적으로 국제표준 역할을 하는 미국기계학회(ASME)가 압력용기의 취성천이 온도를 규정으로 도입한 것은 1974년의 일이다. 고리1호기가 시험가동을 한 시기(최초임계)는 상업운전 1년 전인 1977년 6월이었다. 웨스팅하우스(WH)사와의 턴키계약으로 완성되었는데, 당시 기술로는 압력용기 제조에 약 3년, 설치에 약 2년, 합계 5년의 기간이 필요했다. 즉, 고리1호기 압력용기의 경우 미국이 취성천이 온도를 규정으로 도입하기도 전에 만들어진 셈이다.
당시 미국의 주조기술은 일본보다 떨어졌다. 고리1호기보다 가동이 약 3년 빠른(1975년 10월) 일본의 겐카이(玄海)1호기도 PWR이나 2009년 시험감시편의 측정에서 취성천이 온도가 98도로 나타나 안전성을 우려하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기술자들은 100도를 위험경계선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안전 의무화 규정 위반하는 케이블
다른 한편, 핵발전소 내에는 전력 및 제어용 케이블이 1000~2000㎞ 깔려 있다. 케이블은 신체의 신경과 혈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높은 안전성을 요구받는다. 그런데 고리1호기 내 케이블의 대부분은 내화케이블이 아니라 가연성 케이블에 연소방지기능을 갖춘 특수수지(樹脂)의 도료를 칠한 것으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케이블의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절연성의 열화가 예상된다.
1975년 3월 말, 미국은 브라운발전소 페리1호기(Browns Ferry1)에서 촛불로 인한 대규모 케이블 화재가 발생한 후, 내화케이블의 사용을 의무화했지만 당시는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특수수지의 도료를 칠한 내화성 케이블을 허용하였다. 일본은 더욱 늦어 1980년에 내화케이블의 채용을 의무화하였다. 미·일의 제도에서 경제적 부담이 적은 쪽을 택하는 핵마피아의 상투수단을 고려하면, 1980년 이전에 국내의 핵발전소가 내화케이블의 사용을 의무화했을 리가 없다!
고리1호기가 수천억의 비용을 들여 내화성 케이블을 내화케이블로 전부 교체하지 않는다면, 핵발전소의 안전 의무화 규정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비닐 또는 염화에틸렌 재질의 케이블에 겨우 특수도료를 덧칠한 내화성 케이블을 전면 교체하지 않는 한, 고리1호기뿐만 아니라 월성1호기도 연장의 기본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가 된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엄격한 기준의 소급적용이라는 이유로 반발하겠지만, 피해 축소를 위해 소방법 및 해외의 원자력 안전관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언제까지 한수원의 부담 경감을 우선할 것인가?
핵마피아는 폐로를 거부하는 이유로 1)폐로적립금의 부족 2)폐로기술·최종처분장의 미확립을 들어야 할 것이다. 핵발전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액의 폐로기금을 적립해 온 탓으로, 실질적인 폐로비용을 충당하기가 곤란하게 되었다. 또 후자의 경우 방사선폐기물처리장 없는 핵발전소, 즉 ‘화장실 없는 아파트’의 건설·운영에만 치중해 온 핵마피아의 단락적인 이권구조에도 원인이 있지만, 경제성과 안전을 보장하는 폐로 및 처분의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핵공학(기술)의 본질적인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