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사학자였던 이 이사장의 변신은 2005년 그의 할아버지 이명세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고, 2006년 뉴라이트 계열 단체 교과서포럼에 이름을 올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수반까지 하면서 독립운동가로 대단히 훌륭하지만 1948년 대한민국 독립에는 반대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공로자로 거론한 것은 옳지 않다. 상해임시정부는 정부로 평가받지 못했고 우리가 독립국가 국민이 된 것은 1948년 8월 15일 이후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인호 신임 이사장이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의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에 반대했다고 밝힌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대해 내놓은 답이다.
이 이사장은 이길영 전 이사장이 석연치 않은 사유로 임기를 1년이나 남겨둔 채로 사퇴한 뒤 야당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일 만에 전격적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발언에 대해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여당, KBS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공영방송인 KBS를 이끌어갈 이사장이 편향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된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를 무시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을 이끌 이사장의 이러한 편협된 시각과 생각이 결국 KBS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율성을 해치지 않겠느냐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이사장은 지난 200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정적인 측면을 일부 언급한 KBS 역사다큐멘터리 ‘한국사전(傳)’에 대해 같은 해 9월 8일자 동아일보 칼럼을 통해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켰다”며 “자체 검증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이 있다. 그는 KBS 이사장 취임 자리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시대를 앞지르는 진보적 민주주의 사상을 가진 독립운동가였고, 우리 민족의 남반쪽만이라도 스탈린의 전체주의적 독재 아래 놓였던 세계 공산권으로 흡수되는 것을 막아내어 진정한 자주독립을 성취하고 대한민국이 자유와 독립을 토대로 복지국가로 발전하는 길을 만들었고, 헌법적 토대를 만든 인물”이라며 자신의 생각이 변함없음을 밝힌 바 있다.

이인호 KBS 이사장이 2013년 5월 31일 서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는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편협한 역사관이 조부 영향일까
이러한 이 이사장의 편향된 역사관에 대해서는 친일 전력이 있는 조부의 영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의 조부 이명세는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조선유도연합회’의 상임참사를 지내며 일제를 찬양하는 시국강연을 하고, 최린·윤치호 등이 속한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태평양전쟁 지원활동을 펼치는 등의 친일활동을 한 전적이 있다. 이에 대해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펴낸 보고서는 “이명세의 친일행위는 매우 적극적이고 또 자발적이었다”고 표현했다.
과연 이 이사장은 친일파 조부의 영향을 받아 편협한 세계관과 편향적인 역사관을 가진 인물인가? 그녀의 과거를 보면 현재의 그녀가 이해되지 않는다.
1936년생인 이 이사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이자 외교관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고 명문 서울사대부고를 나왔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게 지배하던 50년대에 쟁쟁한 남자들을 제치고 서울사대부고 학생회장을 했을 정도로 진취적이고 똑똑한 여자였다. 서울대에 입학한 다음 해에 전액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한국 여성 최초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한국으로 돌아와 고려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교수, 핀란드 대사, 러시아 대사 등을 역임하며 학계와 관계를 두루 거친 인재 중의 인재이다. 특히 서울대 교수 시절 암혹했던 80년대에 러시아 혁명사를 가르치며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던 진보적인 학자였다. 시인 최영미는 이 이사장과의 조선일보 대담에서 자신이 서양사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이 이사장 때문이었다고 고백한 바도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동문 황인욱의 석방을 위해 사제가 함께 탄원서를 쓰기도 했다.
진보적 사학자였던 이 이사장의 변신은 2005년 그의 할아버지 이명세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고, 2006년 뉴라이트 계열 단체 교과서포럼에 이름을 올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2013년 ‘우 편향’, ‘친일 미화’라는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지지하였고, 같은 해 9월에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교육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뿐 아니라 여타의 8종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검증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사학자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궤변을 늘어놓고 주위의 비판에도 몽니를 부리게 만든 계기가 단지 친일파 조부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거나 그러한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역시 제대로 하지 못한 친일 청산의 피해자로 보인다. 이 이사장은 집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의 외가 쪽 증조부인 이중하는 백두산정계비를 두고 청나라와 국경 문제를 논의하다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국경은 줄일 수 없다”며 끝내 양보하지 않은 유명한 일화를 남긴 인물로, 국사 교과서에까지 실렸었다. 성균관장을 지낸 조부까지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이다. 이 이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세계적인 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접었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냉전시대에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적성국인 소련의 자료를 구할 수 없었기도 했고, 학문적 수준이 낮기도 했다. 대신 가르치는 일을 열심히 했으며 다양한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이 이사장 나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부의 친일행적에 대한 비판이 자신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접하면서 많은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존경하는 조부가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공도 있을 것인데, 과거의 친일행각만으로 비난받는 것으로 보고 친일파 척결이 소련의 사주라거나 자신의 조부가 친일파라면 당시 중산층은 모두 친일파였다는 주장을 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조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후 ‘변신’
이 이사장은 자신이 공영방송의 이사장으로서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의 잘못된 발언을 합리화하기 위한 억지 논리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발언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이 이사장은 공영방송 KBS의 이사장으로서 합당한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그녀의 언행으로 보아 생각이 편협하고 역사관이 잘못된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2차대전의 전범국가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면 과거청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독일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피해보상활동으로 국제사회의 리더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전범이었던 포르쉐 박사는 수감생활 후 풀려나 국민차 폴크스바겐을 만들어 독일의 재건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국력에 비해 국가의 위상은 매우 낮다. 이 이사장이 독일과 일본 중 어느 길을 따라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은가.
<윤원철 KINX 경영지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