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뉴저지의 애틀랜틱시티는 라스베이거스와 함께 대표적인 카지노 도시다. 대서양 연안의 휴양도시였지만 점차 쇠퇴해 1970년대에는 실업과 범죄가 심각했다. 이때 꺼낸 비장의 카드가 카지노다. 1976년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도박장을 여는 것에 찬성했다. 1978년부터 도심 재개발을 통해 카지노가 들어섰다.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허슬’은 도박의 도시 애틀랜틱시티에서 일어난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1978년 미국 FBI는 아랍인 요원 압둘을 아랍의 대부호로 위장하게 한 다음 뉴저지 캠든시의 정치인들에게 접근한다. 카지노 사업을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캠든 시장과 상·하원 의원들은 카지노 면허와 함께 압둘의 미국 망명을 도와주는 대가로 뇌물을 챙긴다. 이 사건이 ‘앱스캠(ABscam) 스캔들’이다. ‘압둘’(Abdul)과 ‘속이다’(scam)를 합친 단어다.
영화는 이야기에 살을 더하고 캐릭터를 더 강렬하게 만들었다. 세탁소를 운영하다 돈을 벌게 된 어빙(크리스찬 베일 분)은 어느날 시드니(에이미 아담스 분)라는 여성을 파티에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고, 대출사기로 큰 돈을 번다. 그러다 FBI 요원 리치(브래들리 쿠퍼 분)에게 잡히는데, 리치가 제안을 한다. 부패한 관료를 잡기 위해 함정수사를 할 텐데 4명만 잡아들이면 석방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어빙과 시드니는 FBI의 작전에 참여하지만 뜻하지 않게 정치인, 마피아까지 연루되면서 사건이 커진다. “사람은 사기를 쳐서 목적을 이루는 존재다.” 어빙의 철학은 확실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서로 속고 속인다. 어빙은 부분가발로 대머리를 감추고, 시드니는 영국 억양을 쓰며 출신지를 속인다. FBI 요원인 리치도 직모이지만 곱슬머리인 척 살아간다. 자신의 약점을 감춰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다.
![[영화 속 경제]아메리칸 허슬-사행산업 ‘카지노믹스’의 민낯](https://img.khan.co.kr/newsmaker/1100/20141105_56.jpg)
캠든 시장인 카마인의 꿈은 일자리가 넘치고, 소득이 늘어 활기찬 도시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의 선택은 카지노였다. 카지노를 유치하면 대규모 자본이 들어오고, 호텔과 공연장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들어서면서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또 카지노에서 걷는 세금은 도시를 풍족하게 할 수 있다. 통상 매출액의 40%다.
카지노는 사행산업(射倖産業)으로 분류된다. 사행산업이란 ‘인간의 사행심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하거나 이와 관련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산업’을 말한다. ‘사행심’이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다.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운에 기대 대박을 꿈꾸는 산업이다. 다른 사행산업으로는 경마, 경륜, 복권 등이 있다. 사행산업은 중독성이 강하고 사회에 부정적인 작용을 할 때가 많다. 때문에 마구잡이로 허가를 내주면 피해가 커져 사회적 비용이 더 들 수 있다. 그래서 특정 지역이나 특정 업자에게만 선별적으로 허가를 내준다. 하지만 이런 선별 허가는 특혜시비를 불러오고 수익성이 높다 보니 범죄조직과 연루될 가능성도 커진다.
2013년 기준 한국 사행산업의 총매출액 규모는 19조7000억원에 달한다.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는 강원도 정선의 강원랜드 한 곳이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16곳이다. 카지노는 2006년 이후 신규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매년 매출액과 입장객이 늘어나고 있다. 2013년은 2006년 대비 매출액과 입장객이 두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카지노가 마냥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애틀랜틱시티 카지노 12곳 중 올해만 4곳이 문을 닫았다. 펜실베니아와 뉴욕에서 카지노가 잇따라 개설되면서 독점적 지위를 잃어버렸다. 카지노는 돈을 벌어주는 산업이 아니라 단순히 돈을 돌게 하는 것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카지노의 취업유발효과는 연간 마이너스 9000명이라고 밝혔다. 카지노로 인해 발생하는 취업자보다 한탕 욕심에 빠져 일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실업이 더 크다는 것이다. ‘카지노믹스’의 민낯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