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4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IWC는 아마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스위스 시계 브랜드 중 하나일 것이다. 이들은 기술력 면에서나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나 모두 높은 수준에 올랐으며 여러 브랜드들의 귀감이 될 만한 꿋꿋한 행보를 보여왔다. 또한 매우 탄탄한 라인업을 자랑하기로도 유명하다. 파일럿, 인제니어, 다 빈치, 포르토피노, 아쿠아타이머 등 대표 컬렉션의 개성이 저마다 뚜렷하고, 전 컬렉션이 현대 손목시계의 클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세대를 걸쳐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IWC의 최대 성공작이자 유구한 전통의 산물인 포르투기즈(Portuguese) 컬렉션을 소개하고자 한다.
1930년대 후반 포르투갈 출신의 두 사업가가 IWC의 샤프하우젠 본사를 방문하면서 포르투기즈의 장대한 역사는 시작된다. 시계 애호가였던 이들은 해상용 정밀시계(마린 크로노미터) 수준의 정확도를 갖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손목시계를 IWC에 주문했고, 이를 받아들여 당시 자사의 가장 정밀도가 높은 회중시계용(헌터형) 무브먼트를 탑재해 1939년에 발표한 시계가 바로 오리지널 포르투기즈 시계였던 것이다. 시계 이름에 포르투갈인을 뜻하는 단어인 포르투기즈가 붙은 것도 이 같은 배경이었다.

1939년 오리지널 모델을 충실하게 계승한 신제품 포르투기즈 핸드 와인드 8 데이즈
포르투갈 두 사업가의 요청으로 개발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 세대교체가 되는 시점이었던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직경이 작은 손목시계용 무브먼트를 따로 개발하는 제조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IWC 역시 1940년대 초반까지는 마땅한 손목시계용 무브먼트를 확보하지 못한 터라 기존의 커다란 회중시계용 무브먼트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이후 1950~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케이스 지름 36㎜ 미만이 남성용 표준 손목시계 사이즈로 통용됐을 정도이니 42㎜의 포르투기즈가 꽤 오랜 세월 얼마나 큰 시계로 사람들 사이에서 인식됐을지 짐작이 간다.
대담한 크기에 비해 얇은 케이스 두께, 그리고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아라빅 인덱스나 로만 인덱스를 사용하고 잎사귀 모양의 얇은 핸즈를 얹은 다이얼 같은 요소들은 이내 포르투기즈 시계만의 개성으로 자리매김하며 가히 전설적인 명성을 이어가게 된다. 1940년대 중반에 2세대 모델이 추가되었고, 이후 1950년대 후반에 발표한 3세대 모델에 이어 포르투기즈는 198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소량씩 제작되어 마니아층을 양산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포르투기즈는 다른 컬렉션인 인제니어나 다 빈치에 밀려 한동안 잊혀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1993년 창립 125주년 및 포르투기즈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며 IWC는 포르투기즈를 다시 원형 디자인에 가깝게 완벽하게 복각한 주빌리(Ref. 5441) 에디션을 발표한다. 높은 정밀도를 자랑하는 수동 명기 9828 칼리버를 탑재한 포르투기즈 주빌리 모델은 오리지널 모델과 마찬가지로 스틸 케이스를 비롯해 화이트 골드와 플래티넘 케이스로도 각각 한정 제작돼 시계 애호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포르투기즈의 성공적인 부활을 알렸다.
기계식 시계 경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시점인 1990년대 초·중반에는 또한 예전과 달리 기존 사이즈에 위배되는 일명 오버사이즈 워치로 불리는 대범한 크기의 시계를 차츰 용인하는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확실하게 업계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IWC의 양대 오버사이즈 시계라 할 수 있는 빅 파일럿과 포르투기즈 역시 돌풍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빅 파일럿과 포르투기즈를 오버사이즈 워치의 선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투르비용과 퍼페추얼 캘린더, 밤하늘의 별자리까지 표시하는 명작, 포르투기즈 시데럴 스카프시아
한국에서도 남성 예물용으로 선호
그렇게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포르투기즈는 전례 없는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다. 세계적인 명품 기업인 리치몬트 그룹에 합류한 그 해 완전히 새로 개발한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 5000을 장착한 첫 모델도 포르투기즈 오토매틱 시리즈였다. 5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완성된 5000 칼리버는 과거 크로노미터급 회중시계로 높은 명성을 자랑했던 IWC의 직계 후예로서의 의미와 함께 양방향 펠라톤 와인딩 시스템과 7일간의 긴 파워리저브 시간과 같은 진보적인 기술력을 더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한층 더 고상하고 정제된 디자인을 접목해 IWC의 새로운 베스트셀러의 출현을 알렸다.
물론 포르투기즈 오토매틱의 등장 이전에도 1998년에 발표한 포르투기즈 크로노그래프 모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ETA 7750 베이스의 신뢰도 높은 자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탑재한 이 시계는 상하 투 카운터의 완벽한 디자인 밸런스로 국내에서도 10년 넘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 젊은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계 중 하나로서 실제 예물시계로도 많이 소비될 정도다. 이후 2003년에는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에 손목시계 역사상 처음으로 남반구와 북반구 달의 움직임을 동시에 보여주는 포르투기즈 퍼페추얼 캘린더를 발표한다.
그리고 2010년 IWC는 그 해를 포르투기즈의 해로 내정하고 실로 다양한 시계들을 쏟아낸다. 2000년에 발표한 포르투기즈 2000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포르투기즈 오토매틱이 케이스 소재 및 다이얼 색상에 따라 다채롭게 전개되었고, 무엇보다 퍼페추얼 캘린더와 크로노그래프, 그리고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기능까지 더한 포르투기즈 그랑 컴플리케이션 모델이 첫선을 보여 웅장한 멋을 과시했다. 또한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형상의 포르투기즈 투르비용 미스테르 레트로그레이드와 2008년도에 이어 베이직 수동 라인업에 포르투기즈 핸드 와인드 모델이 더 추가되었다. 또한 1967년에 선보인 요트 클럽 오토매틱 모델의 뒤를 잇는 포르투기즈 요트 클럽 크로노그래프 모델이 더욱 스포티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의 자사 무브먼트로 소개돼 포르투기즈 라인을 한층 더 풍요롭게 했다.
또한 이듬해인 2011년에는 특허를 획득한 콘스탄트 포스 이스케이프먼트로 작동하는 투르비용과 퍼페추얼 캘린더, 항성시, 그리고 밤하늘의 별자리까지 표시하는 포르투기즈 시데럴 스카프시아를 발표해 시계업계를 놀라게 한다. 장장 10년의 개발 끝에 완성한 자사 수동 94900 칼리버에 고급시계의 척도가 되는 하이 컴플리케이션 기능과 천문 측정까지 가능한 모듈을 더함으로써 IWC 역사상 가장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계를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에는 8일간 파워리저브 되는 신형 수동 59215 칼리버를 탑재하고 1939년 오리지널 모델서부터 1993년 주빌리와 2010년 타임온리 수동 모델의 뒤를 잇는 포르투기즈 핸드 와인드 8 데이즈 모델을 소개한다.
두 포르투갈인의 요청에 의해 마린 크로노미터급의 정밀도를 손목시계에 구현하고자 탄생시킨 포르투기즈. 특유의 단정한 디자인으로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포르투기즈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의 수동 모델에서부터 브랜드의 정수를 담은 최상급 컴플리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지칠 줄 모르는 IWC의 열정과 뛰어난 시계 제조 노하우를 가득 응축시킨 이 시대의 명작이다.
<장세훈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