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과 민간인 신분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은 수급에 따라 충원하는 미국의 모병제 때문이다. 미군에서는 현역으로 곧장 가지 않고 일단 예비역으로 이름을 올리면 군이 필요로 할 때 군대에 가야 한다. 이때 내려지는 명령이 예비군 동원 행정명령이다.
한·미연합군이 매년 실시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서는 늘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모의 전황 브리핑이 벌어진다. 한국군 자체적으로도 작전사급이나 사령부급 차원에서 모의 전시 전황 브리핑을 실시하고 있다. ‘전시 전황 브리핑’은 전쟁 수행·지원 내용에 대해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국민들의 이해를 돕고,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의 전쟁 수단이다. 그런 만큼 내·외신기자 앞에서 브리핑을 해야 하는 브리퍼들의 능력은 전쟁의 양상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한·미연합군의 전투 시뮬레이션실 모습. | 김기남 기자
통상 모의 전황 브리핑은 브리퍼 사전교육, 성명서 발표, 기자단 질의·답변, 사후강평 순으로 진행된다. 주로 장군들인 브리퍼들은 “대량의 탈북주민이 유입되고 있는 가운데 개성·원산 일대에서 독감·폐렴·결핵 등 각종 전염병이 발생해 감염자가 후방지역으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와 같은 전황과 관련된 사항을 브리핑한다.
그러면 모의 브리핑의 질문자들로 나선 정훈장교들은 “○○신문 XXX 기자입니다. 너무 두루뭉술한 것 아닌가요, 뭔가 감추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라면서 브리퍼가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도 쏟아낸다. 한마디로 하나라도 더 캐내려는 모의 기자단과 군사작전에 대한 기밀 등을 이유로 적정한 선에서 언론 보도에 한계를 그으려는 군 당국자들의 기싸움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브리퍼로 나선 장군들은 브리핑 이전에 대강의 시나리오를 인지하고 있더라도 ‘젊은 기자’ 역할을 맡은 부하 장교들의 거침없는 질문에 실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경우도 있다.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예비군 장교
전황 브리핑을 통해 전쟁 수행 내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승리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은 원래 미군들이 하던 것이다. 이것을 본떠 수년 전부터 한국군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은 한·미 합동훈련을 갖게 되면 ‘연합합동보도본부’(CPIC·Combined Public Information Center)를 구성한다. 그리고 수시로 모의 전황 브리핑을 한다. 미군도 이때 군인이 기자 역할을 맡아 질문자로 나선다. 그런데 미군 질문자 대부분은 정부의 행정명령에 의해 동원된 예비군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상당수가 미 본토에서는 지역 방송 PD나 기자 등으로 종사하는 실제 언론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민간 언론인 신분으로 근무하다가 한·미 합동훈련이 벌어지면 군복으로 갈아입고 한반도에 투입된다.
이처럼 군과 민간인 신분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은 수급에 따라 충원하는 미국의 모병제 때문이다. 미군에서는 현역으로 곧장 가지 않고 일단 예비역으로 이름을 올리면 군이 필요로 할 때 군대에 가야 한다. 이때 내려지는 명령이 예비군 동원 행정명령이다.
성 김 주한 미국대사의 후임인 마크 윌리엄 리퍼트 대사(41)도 예비군 장교다.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 참전용사다. 리퍼트 대사는 2011∼2012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2009∼2011년 해군 정보장교, 2009년 국가안보회의(NSC) 대통령 보좌관 겸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마크 윌리엄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가 6월 17일 미국 워싱턴의 덕슨 상원의원 회관에서 열린 인준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손제민 기자
스탠퍼드대에서 학·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NSC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중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Navy SEAL)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전을 벌이던 2007∼2008년에도 1년간 이라크전에 참전하며 곁을 비운 바 있다. 2008년 6월 이라크에서 돌아온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따라 백악관에서 근무하다 또 한 번 자원입대했다. 그때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장교 복무에 대해 “가까운 친구인 그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국가를 위한 헌신에 감탄한다”면서 “그가 민간인으로 되돌아오기를 선택할 때에는 언제나 백악관의 고위 외교정책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리퍼트에 대한 두터운 신임을 표시했다.
리퍼트 대사는 예비군 장교이지만 그가 대학 때 군 장교로 가기 위해 학군단(ROTC)을 지원했던 건 아니다. 그가 군대를 지원한 것은 2005년 32세 때였다. 해군 예비역(Navy Reserve)에 지원했다. 2년 뒤 동원령에 따라 정보장교로 이라크에 파병됐다. 그는 이처럼 군 간부와 정부 고위직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한국 석사장교제도 특혜 논란 속 폐지
미군의 경우 육군 신병은 17세부터 35세까지 고교 중퇴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다. 공군은 27세, 해군은 34세, 해병은 28세가 상한선이다. 그러나 병력이 부족하면 상한 연령이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한때 육군은 42세까지 신병을 모집했다.
장교 역시 사관학교나 간부후보학교, ROTC 출신자에게 국한하지 않는다. 군이 필요로 하는 전문가는 곧장 장교로 충원된다. 리퍼트 대사가 그런 경우이다. 미 해군은 그를 정보분야 전문가로 키울 만하다고 판단해 5주간의 특수교육을 실시한 후 예비역 장교로 임관시켰다. 장교는 통상 입대 후 보통 8년 정도는 의무 복무기간으로 정해져 있어 군이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복무해야 한다.
이처럼 미국은 상비군이 아닌 주 방위군이나 예비군은 1년에 한두 차례 훈련만 받다가 필요에 따라 현역(active duty)으로 복무하는 시스템으로 군 병력을 운용하고 있다. 이들은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 이라크전 같은 전쟁이 터지면 정부의 행정명령에 따라 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하는 병력에도 이런 예비군이 포함돼 있다.
최근에는 에볼라 공포가 미국까지 번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아프리카 에볼라 퇴치를 위해 예비군 동원을 명령했다.
한국군에도 예비역 장교 제도가 있었다. 공식 명칭이 ‘예비역 사관과정’인 석사장교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1984년부터 1992년 말까지 있었던 석사장교는 석사 소지자 중 우수한 자를 시험으로 선발하여 4개월간의 군사훈련과 2개월간의 전방 체험을 거친 후 소위로 임관과 동시에 전역시켜주는 제도였다. 석사장교는 6개월만 복무한다고 해서 육개장(육개월 장교)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정부의 ‘대학원 졸업생 등의 병역특례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만들어진 석사장교 제도는 원래 우수한 인재에게 군복무 혜택을 준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으나 당시 일반병의 군복무 기간이 3년에 육박한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혜택이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장남(전재국·1985년)과 노태우의 차남(노재헌·1990년)이 석사장교로 복무하여 석사장교가 두 대통령의 아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제도는 노태우 대통령 아들이 석사장교를 마친 뒤에 곧 폐지되었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