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측‘법적 절차 거쳐 제공’강변하지만 피의자와 관련된 단체방 멤버들의 휴대폰ㆍ계좌번호까지 모두 노출‘충격’
“앞서 전화로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카카오는 법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고 요청자료를 제공한 적은 단 한 건도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정 기자님이 의혹을 제기하신 대로, 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은 요청에 카카오에서 제공한 사례가 있다면 카카오도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하지만, 법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지난 4월 기자가 ‘카카오’ 측으로부터 받은 메일의 일부이다. 카카오 측은 “검·경 등 정부기관이 카카오톡에서 오간 사인(私人) 간의 대화를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법적인 절차’를 지켜왔음을 강조했다. 수사기관이 통신비밀보호법이나 형사소송법에 따라 요청하는 경우 카카오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전기통신사업자는 자료제공의 의무가 있다. 기자가 물은 질문은 그렇게 ‘법에 의해 요청받은 건수는 얼마나 되며, 실제로 요청받은 건수 중 카카오 측이 검토 후 거절한 경우가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팩스나 전화를 통해 요청받은 ‘통신사실확인자료’ 대부분은 일사천리로 처리되고 있다”는 법조계·정보통신운동 측의 지적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슈]단체카톡ㆍ1대 1 대화 사실상 무차별 제공](https://img.khan.co.kr/newsmaker/1097/201410121_1097_A32a.jpg)
카카오 측은 이날 기자에게 보낸 회신에서 “안타깝지만 이 경우 접수 여부, 요청받은 내용, 제공 여부에 대해 당사가 확인해드릴 수 없다. 요청 건수도 저희가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던 카카오가 달라졌다. 10월 8일 다음카카오는 “‘투명성 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라며 2013년 상·하반기와 2014년 ‘카카오톡 정보제공 현황’ 통계를 표 형태로 제공했다. 다음카카오 측이 공개한 현황 표에 따르면 통신사실확인자료는 2013년 상반기에 630건, 하반기에 793건이다. 2014년에는 상반기에만 1044건을 받아 수사기관의 요청이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통신제한조치, 다시 말해 감청영장 건수도 2013년 86건에서 2014년 상반기 61건이라는 수치가 나오고 있다. 처리율은 73.90~96%다. 이쯤 되면 ‘법적 절차를 거친 경우’ “일사천리로 수용되고 있다”는 애초의 풍문(?)이 거의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날 김인성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트위터를 통해 실제 ‘통신제한조치 집행조서’의 일부를 공개하면서 ‘실시간 감청 실태’가 일부 공개된 다음 내린 ‘결단’이었다.
통신사실확인, 올 상반기만 1044건 급증
‘법적 절차를 거쳐 제공된 정보’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주간경향>은 지난 2012년 국정원이 감청영장을 받아 카카오톡으로부터 넘겨받은 감청자료를 입수했다. 카카오 측이 제공한 정보는 이런 제목이다. “가입자: 8210○○○○○○○○, 가입일: 12-05-30 14:13:28, 탈퇴일: 사용중.” 탈퇴일에 ‘사용중’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만약 감청대상이 탈퇴했을 경우에도 탈퇴일을 명시해 서버 등에 자료가 남아 있었다면 제공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으로 나오는 것이 대화상대 목록이다. 역시 휴대폰 번호로 추정되는 숫자로 표기되어 있다. 노동당 정진우 부대표의 카톡 압수수색과 관련, 카톡 측이 내용을 선별해 제공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10월 8일 검찰 관계자가 ‘검열’ 논란 해명과정에서 불거져나온 의혹이다. 검찰 관계자는 “원래 압수수색영장을 제대로 집행하려면 경찰관이 서버에 가서 직접 복사를 하는 등 이미징을 떠오는 것이 맞겠지만 이 사안의 경우 경찰이 제대로 안한 것”이라며 “(카카오 측) 법무팀에 압수수색영장을 보내서 본사 서버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회사가 해주는 대로 그냥 받아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부대표가 10월 2일 기자회견에서 “영장이 발부된 기간 중 3000명 지인의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것에 대해 “확보한 자료는 6월 10일 당일 자료에 불과하다”고 해명하는 과정에서 한 설명이다. 불똥은 엉뚱하게 튀었다. “민간이 대신 영장을 집행했다”는 비판이다. 다음카카오 측은 JTBC의 해당 보도가 나온 저녁 문자메시지로 사실과 다르다고 알려왔다. 무엇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일까.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우리로서는 대화내용 중 어떤 부분이 범죄행위인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수사내용도 알 수 없는 입장”이라며 “영장에 적시되어 있는 기간으로 제한해 내용을 조회하는 것 이외에 별도의 선별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국정원 감청 영장으로 카카오 측이 제출한 회원들의 대화 내용 중 일부. 피의사실과 무관한 사적인 대화도 제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실제 카카오 측이 사법당국에 제출한 감청자료를 근거로 판단하면 카톡 측의 ‘해명’이 보다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 측이 제공한 국가보안법 피의자의 대화록에는 단톡, 그러니까 단체대화뿐 아니라 1대 1로 나눈 사적인 대화 내용도 다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감동입니다. 혼자 보기는 너무 아깝네요. 눈물도 나고요. 볼륨을 키우시고 곡 끝까지 감상해보세요.” 유튜브 영상이다. 여기에 당사자는 음악선물이라며 링크를 보낸다. 감청기록에 포함된 기록에는 이런 메시지도 있었다. “[애니팡] 블록의 지배자 ‘김○○’님이 174353점을 기록하셨습니다.”
“망명해도 디지털 검열 우려 못 씻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해당 감청대상자가 개설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단톡방의 기록도 감청대상자가 참여했다면 다 기록으로 제출되었다는 점이다. 한 단톡방 멤버는 430명이었다. 이들이 나눈 책 구입과 관련한 대화 중에는 개인의 계좌번호도 자연스럽게 오고갔다.
이들은 자신의 휴대폰 번호가 제출된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통화를 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카카오톡 회원은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당수는 <주간경향>이 기자의 신분을 밝히며 양해를 구해도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자를 사칭한 피싱전화로 의심하는 눈치였다. 앞의 ‘애니팡’ 메시지가 발송된 당사자는 법원에 감청자료가 제공된 당사자가 “전에 집세를 내고 살던 집주인”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다음카카오 측은 “휴대폰 번호로 가입자 정보를 저장하고 있으며, 실제 이름은 저장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제공된 정보 중 “○○○님이 퇴장하셨습니다”에서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통해 어렵지 않게 휴대폰 소유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감청영장 청구건수가 1년에 160여건이라는 식의 통계가 언론을 통해 흔히 제시되는데, 개별 건수가 아닌 실제 감청당하는 상대방 전화번호 등을 모두 포함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테면 2013년 상반기 통계의 경우 255건의 감청을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전화번호 수는 3540건, 다시 말해 3540명이 감청을 당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 방통위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에 전체적으로 480만명의 통신자료가 제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국민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이 프라이버시 침해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장여경 진보넷 활동가는 “사실 이른바 사이버 망명을 통해 다른 SNS로 옮겨간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카카오톡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압수수색이나 감청 등의 문제를 충분히 파악해, 문제가 되는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급박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