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에서 주고받는 개인적인 대화를 엿듣는 틈입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동안 ‘카톡’을 자신의 입과 귀처럼 여겨오던 이용자들에게는 소름이 돋고 끔찍한 일이다.
나는 어제 망명하였다. 구한말의 시절도 아니고, 국격이 강가에서 쏘아 올리는 폭죽처럼 화려하게 높아가는 시절에 졸연히 망명객이 되고 보니 처지가 한심스럽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지만, 그동안 정들었던 것들과 헤어지는 심경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낯선 이역의 공간에는 벌써 앞서 온 망명객들의 면면이 반갑기보다 딱하기만 하다.
사이버 메신저로 국민들 사이에 사랑을 받는 ‘카카오톡’이 최근에 그 안에서 주고받은 대화들을 검·경이 들여다본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너도나도 보따리를 싸들고 ‘텔레그램’이라는 새로운 사이버 공간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다. 그동안 말로만 떠돌던 ‘카카오톡’ 사찰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사찰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독일산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너도나도 갈아타고 있다.
몇몇 불온하고 불순한 이들의 일탈로 보여지던 망명의 발길이 예상을 넘자, 검·경과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카카오톡이 뒤늦은 해명과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단 자신이 누군가와 주고받은 사적인 대화들을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 SNS 이용자들을 안심시키지는 못한다.

사이버 검열 논란 속에 인기를 얻고 있는 독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의 한국인 신규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사진은 인터넷에 올라 있는 텔레그램의 소개 페이지. | 연합뉴스
‘사이버 망명’을 부추기는 SNS 사찰
이루 입에 담을 수 없는 ‘일베’들의 망언이 판을 치는 지경에서도 수수방관하던 검·경이 난데없는 ‘사이버 명예훼손’이라는 칼을 집어들고 강호에 나선 연유는 아무리 순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도 불순해 보인다.
자신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어섰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 무섭게 등장한 ‘사이버 명예훼손죄’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우려되고 의심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카카오톡’에 대한 사찰의 대상은 그동안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집회에 앞장서던 활동가들로 집중되었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검경이 손에 넣은 ‘카카오톡’의 정보들은 단순한 대화 내용뿐만이 아니라, 대화 일시와 수·발신 내역, 상대방 아이디와 전화번호, 사진이나 영상파일까지 망라하고 있다. 말 그대로 누군가와 은밀히 주고받은 숨소리와 귓속말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어찌 일부 불온한 활동가들에게만 충격을 주겠는가. 사이버 공간에서 주고받는 개인적인 대화를 엿듣는 틈입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동안 ‘카톡’을 자신의 입과 귀처럼 여겨오던 이용자들에게는 소름이 돋고 끔찍한 일이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제어해야 할 법원마저 90%가 넘게 마구잡이로 허용하는 상황에서 보자면, 언제라도 내 ‘카톡’도 털릴 수 있다는 이용자들의 우려를 단순한 기우로만 취급하기도 어렵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밉보여 내 ‘카톡’이 털리지 않을까 하는 ‘자기 검열’의 마음을 덜어낼 수 없다.
텔레그램이라는 신천지를 찾아 떠나는 사이버 망명객들은 자신이 떠나온 조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것은 단순히 사이버 매체를 옮기는 기술적인 이전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 깃든 국가와 정부에 대한 불신, 헌법과 국민의 권리, 정의와 공정에 대한 가치가 무너져내리는 것에 대한 반감이야말로 안타깝고 우려되는 지점이다.
세월호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국가 부재와 불신의 상황은 이제 사이버 사찰에 이르러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무능하면 가만히나 있으면 좋으련만’ 이 무능한 정부는 이제 알량한 믿음마저 포기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고, 국민에게서 신뢰를 잃은 지도자가 앞으로 어떻게 이 나라를 끌고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사이버 모니터링 전담반까지 만들려는 검찰은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아무 문제 없는 글을 쓰면 된다’고 하지만 정작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누군가가 내 대화를 엿듣고, 언제든 그것을 털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국가기관이 국민의 대화를 사찰한다는 사실 자체도 우려스럽지만,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국민들이 ‘문제 없는 글’마저 내어놓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소통되지 못하고 공유되지 못한 채 ‘얼어붙은 입’이 불러올 침묵과 불신의 앞날이 암담하기만 하다.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에 대한 침해
국가권력을 견제할 보수언론들이 제 정체성을 잃고 또 다른 권력의 나팔수를 앞다투어 자처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 대안으로 자리잡은 SNS마저 국가권력이 통제하는 현실은 불행한 일이다.
사이버 상의 허위사실 유포라는 명분을 앞세운 검·경의 무차별적인 SNS 사찰은 법리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헌법상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에 대한 침해의 우려가 많을 뿐만 아니라, 국가 주권의 주체인 국민이 한시적인 권력위임체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정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기회마저 봉인될 염려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현명한 통치자라면 자신에게 쏟아지는 국민들의 쓴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이 지엄한 군왕의 교지와, 그 교지에 따라 발 빠르게 칼을 뽑아드는 검·경의 행보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정부 정책이나 정부 정책 담당자는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례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한 개인의 발언이나 표현을 놓고 정부기관이 명예훼손을 앞세워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들은 오만한 짓이다.
“군주는 힘이 아니라 곧 인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오. 그 인이란 차마 하지 못하고 삼가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 권력을 가진 군주가 인의 굴레를 벗어난다면 그것은 언제든 폭력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었던 정도전의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봉건군주 시대에도 절대권력인 군왕이 삼가고 경계해야 할 덕목을 국민이 주인이라는 시절에 되새겨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대통령이 거처하는 청와대 부근에 자리잡은 경복궁에 가면 궁궐 앞에 큼지막한 쇠그릇이 있다. 정(鼎)이라 불리는 쇠그릇은 발이 3개 달려 있어 ‘세발솥’이라고도 불린다. 중국 우왕 때 구주의 제후들이 만들어 바친 솥에서 유래한 정은 군왕의 가장 큰 책무가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것에 있음을 잊지 말라 하여 궁궐 앞에 세워둔 것이라 한다. 그 솥을 바친 구주의 백성들이 원하는 세 발에는 무슨 바람이 담겨 있었을까. ‘겸손’ ‘공정’ ‘애민’의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국민들의 쓴소리를 모독이라 듣지 말고, 가끔 산책 삼아 경복궁 앞을 찾아 거기 놓인 세 발 달린 쇠솥을 보며, 백성들을 섬길 궁리에 애쓰는 것이 마땅할 일이다. 조금이라도 겸손하고 현명한 통치자라면 제 나라의 백성들이 입을 다물고 보따리를 싸들고 망명하는 처사에 대해 밤잠을 설쳐야 마땅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시백(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