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사이버 검열’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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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일상생활의 필수 네트워크가 되면서 사이버 상의 명예훼손이 빈발하고 있는 점은 문제다. 범죄수사에 있어 인터넷 상의 데이터가 접근 불가의 성역으로 보호받을 이유도 없다. 다만 이를 이유로 과도한 기본권의 제한은 없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10월 1일은 대한민국 인터넷산업의 역사에 기억될 만한 날이었다. 모바일 메신저 1위 업체 카카오와 포털사이트 다음의 합병법인인 다음카카오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오전 11시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가 축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음카카오의 합병 후 사업계획이나 합병과정의 에피소드 같은 것을 묻기보다 검찰의 카카오톡 검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국민들의 관심이 시총 10조의 코스닥 1위 업체의 탄생이나 네이버와의 경쟁상황, 세계 시장 진출 등의 향후 사업계획보다는 당장 자신의 정보가 검열되었거나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집중된 것이다.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로부터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로부터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이버 유언비어 엄단 기관대책회의
이 논란은 지난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서 시작됐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국민들의 불안이 쌓이게 돼서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앞으로 법무부와 검찰이 이런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밝혀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라고 사실상 검찰에 수사를 지시했다.

바로 이틀 뒤, 검찰은 방통위와 미래부 등 관련 정부 부처는 물론 네이버와 다음, 카카오와 같은 민간 포털업체까지 불러서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이름하여 ‘사이버 유언비어 엄단 유관기관 대책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허위사실 유포에 엄정 대응하겠다”면서 “개별 피해자들의 고소·고발에 앞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사이버 공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허위사실 최초 유포자는 물론 중간 전달자까지도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알려졌다. 이후 검찰은 실제로 수사를 담당할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을 발족시켰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를 전담팀으로 하고 부장검사를 비롯한 5명의 엘리트 검사를 배치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크게 반발했다. 검찰의 선제적 대응 방침이 논란이 됐다. 검찰이 법적 근거로 내세운 것은 전기통신망법 제70조,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이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로 검찰이 수사를 할 수는 있어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검찰이 선제적으로 수사하겠다는 것인데, 피해자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고 검찰이 수사에 나설 정도로 훼손될 명예가 큰 사람이 누구겠는가?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의 높으신 어르신들과 여당 지도자들이 대상일 것이다. 즉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검색해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당연히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내가 쓴 글을 검찰이 보고 있고 경우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면 스스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기준이 모호하다. 대상이 누구인지, 어떻게 쓰면 문제가 되고, 어떻게 표현하면 문제가 안 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는 소극적으로 표현하거나 아예 표현하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논란 속에서 다음카카오의 출범일에 실제로 개인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우려가 되었던 광범위한 감시, 사찰행위와 이로 인한 심각한 표현의 자유 침해, 사이버 검열이 현실로 드러났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사이버 검열
검찰과 경찰이 노동당 정진우 부대표의 5월 1일~6월 10일 사이의 카카오톡 내용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다음날인 17일 집행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정 부대표는 지난 6월 10일 국무총리 공관 인근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10 만민공동회’를 주도하고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응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수사과정에서 검·경이 카카오톡까지 뒤진 것이다.

정 부대표는 “6월 10일 당시 지인들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엔 지인들의 개인정보와 정치적 입장이 담겨 있었다”며 “친목을 도모하는 대화방에서부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임의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방까지 광범위하게 압수수색 범위에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부인과의 사적 대화, 카드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도 제공되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다음카카오 측은 카카오톡의 대화내용은 3~7일간 저장되며 정당한 법절차 없이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진화에 나섰으나 국민들의 불안과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카카오의 입장에서 정당한 법절차에 따른 영장집행 행위를 막을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영장을 신청한 종로경찰서가 범죄사실 입증에 필요한 만큼만, 예를 들어 어느 특정한 시기, 상대방과의 대화내용을 지정하여 영장을 신청했어야 했다. 포괄적으로 전체 대화내용을 지정하여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한다면 필연적으로 정 부대표가 주장하는 개인정보 침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사관행이 온 국민의 우려를 불러일으킨 주된 이유다. 검찰의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의 활동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불안하다.

인터넷이 일상생활의 필수 네트워크가 되면서 사이버 상의 명예훼손이 빈발하고 있는 점은 문제다. 범죄수사에 있어 인터넷 상의 데이터가 접근 불가의 성역으로 보호받을 이유도 없다. 다만 이를 이유로 과도한 기본권의 제한은 없는지, 이러한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를 검찰을 비롯한 규제기관들은 잘 살펴봐야 한다. 검찰과 경찰의 이번 행동으로 애꿎은 국내 인터넷기업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글로벌 인터넷서비스 회사들의 IDC(인터넷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면서 결실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들리는 이야기로는 구글은 절대로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몇 년 전 경찰에서 구글코리아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직원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빼간 적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구글에서는 한국을 중국보다 국가 리스크가 큰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접속을 차단할 뿐이지만 한국은 데이터를 압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터넷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이다.

<윤원철 KINX 경영지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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