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는 군집의 형체미도 아름답지만, 각각의 모습이 사람의 표정만큼 천차만별이어서 한 그루 한 그루씩 나무의 표정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가을이 짙어지니 자작나무숲에 가고 싶었다. 아직 청록의 빛깔이 채 사라지지 않은 여름의 숲이 아쉽고,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 숲 역시 궁금한 터였다. 가을이 물들기 시작한 강원도 횡성으로 자작나무숲을 찾아간다.
가을이 물들기 시작한 횡성의 숲으로
가을 오면 저만치 겨울 오겠지. 가을 깊어지는데 문득 나무숲에 가고 싶어서, 자작나무가 쭉쭉 뻗어 있는 깊은 숲속 미술관과 가을이 물들기 시작한 횡성 청태산의 가을 숲을 찾아간다. 벌써 가을이 짙다. 아침 수은주는 어제와 내일이 또 달라진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는 변화하는 순환의 기운이 있어 생동적이다. 자연의 변화 역시 신성하고 생기가 넘치는데, 이때의 여행은 몸과 마음을 맑게 깨우는 여행이어서 한결 홀가분하다. 횡성 한우축제가 열리는 공설운동장 뒤편 국밥집에서 한우국밥으로 새벽의 허기를 달래고 축제장을 잠시 둘러본 후, 나무숲이 근사한 자작나무 미술관과 키가 큰 나무들이 숲을 가득 메운 숲체원을 찾아갈 요량이다. 운동장 옆 해장국집 주인 서현식씨(운동자해장국)는 운동도 좋아하고 해장국도 잘 끓여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사람이다. 명품이라 일컫는 횡성축협산 한우를 쓰는 지정점인데, 운동을 좋아하는 횡성 사람들과 풍문을 듣고 찾아오는 식객들의 발길로 늘 분주하다.
“횡성이 한우의 고장이 된 데에는 높고 낮은 지형의 고도차가 반영된 것입니다. 횡성은 태백산맥이 이어져 비교적 산지지형인데, 낮은 지역은 높은 산들과 고도 차이가 많습니다. 태기산과 청태산 등의 높은 산들이 읍·면을 빙 둘러 감싸고 있는데, 이 산들이 빙 둘러 병풍 역할을 하는 덕에 논농사를 짓게 되고, 이때 나오는 볏짚을 소에게 먹이니 딱 좋은 것이지요. 고기 맛이 좋은 것은 일교차가 크기 때문입니다.”

숲체원은 아이들, 장애인의 산행으로 안성맞춤이다.
잘 생긴 자작나무가 그려내는 숲의 미학
서씨는 마침 한우축제가 열리는 날이어서 양복을 말끔히 빼어 입고 축제장과 식당을 오가며 분주하다. 횡성은 해마다 9~10월이면 한우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 역시 공설운동장 뒤편 섬강 둔치에서 5일까지 축제가 열린다. 축제장에는 한우를 저렴하게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횡성군은 명품한우의 유명세로 10년 전까지 ‘횡성 태풍문화제’로 치르던 지역축제를 2004년부터 ‘횡성 한우축제’로 이름을 바꾸었다. 태풍보다야 한우가 백배 나을 듯 싶다. 어찌되었건 그 덕으로 횡성한우는 한우대로 대표성을 지니게 되었고, 축제 역시 명품한우의 맛을 보려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횡성군의 대표 축제가 되었다. 이제는 한우가 횡성을 대표하는 셈이다. 그러한 까닭에 횡성은 거주인구보다 키우는 소의 수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축제장에는 한우를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마을을 나온 어르신들이 둔치에 앉아 오랜만에 잔치 구경과 사람 구경에 한창이다. 사람 구경도 하고 소 구경도 한 후 자작나무숲으로 발길을 돌린다.
자작나무가 숲을 가득 메우고 그 오솔길 사이사이 작은 미술관이 들어앉아 있다고 했다. 숲의 주인이 혼자 나무를 가꾸며 산다고 했는데, 나무는 온전히 주인네를 닮아 편안하고 그윽하다고 했다. 산길을 따라 오르니 자작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다. 자작나무는 숲을 이룰 때 군집의 풍경을 그려낸다. 본래 자작나무는 높이가 800고지쯤에 이르는 산허리의 양지바른 곳에서 무리를 이루어 자라는 나무다. 추위에 강하고, 햇빛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백색의 껍질에 햇살을 받으면 어느 숲에서건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잘생긴 나무다. 가로로 벗겨지는 껍질의 순백색이 많은 나무들 사이에서 자작나무를 돋보이게 하는 이유다.

자작나무미술관.
나무숲 사이로 걷던 숲 주인 원종호 관장이 말한다. “자작나무는 생명·생장·축복의 나무이고, 만주인들은 자작나무로 별을 담는 주머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신성한 기운을 지닌 나무입니다. 나무 이름이 왜 ‘자작나무’냐 하면, 마른 나무를 땔감으로 불을 지피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는 것입니다. 이 나무가 보기와 다르게 옹골찬데, 옛날부터 가구를 짜는 목재용으로 많이 쓰이고 땔감으로도 많이 사용하던 나무입니다. 특히 썩지 않고 벌레를 먹지 않기 때문에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졌고,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의 재료 역시 자작나무의 껍질이라고 전해집니다.”
자작나무는 요사이는 강변이나 호숫가에도 조경수로 많이 심어진다. 자작나무는 대략 20m 남짓까지 자라게 되는데, 미끈하게 쭉쭉 뻗은 것이 매력이고, 나란히 줄을 서서 자라는 모습의 형태미를 갖추고 있다. 하늘로 곧게 뻗은 자작나무숲의 미는 여름이면 짧은 치마로 각선미를 뽐내는 아가씨들의 건강한 자태처럼 아름답고 생기 발랄하다.
사색과 힐링의 숲속 공간, 숲체원
또 자작나무는 군집의 형체미도 아름답지만, 각각의 모습이 사람의 표정만큼 천차만별이어서 한 그루 한 그루씩 나무의 표정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자작나무는 저마다 그 모습이 모두 개성적이고 다양한 표정과 인상을 지니고 있다. 껍질이 벗겨지는 형태에 따라 마치 사람의 얼굴 형상처럼 굴곡이 생기고 인상도 생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옹이와 생채기가 생기고 허물을 벗어내면서 각각의 표정으로 개개의 인상이 되는 것이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사람의 얼굴마냥 눈·코·입이 다 그려진 표정이 재미나다. 인상이 고약한 나무도 있고, 순하고 미끈한 고운 인상도 있는데, 사람처럼 자작나무 역시 제각각 개성으로 모두 잘생겼다.

명품한우를 브랜드로 내세운 횡성한우축제가 벌어진다.
미술관을 나와 다시 국도를 따라 청태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도로변으로 쭉 늘어선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니 완연한 가을이다. 둔내면 삽교리 청태산 자락에 조성되어 있는 ‘숲체원’은 힐링의 숲으로 잘 알려진 공간이다. 자작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수종이 숲을 빼곡이 메우고 있는데, 숲이 유난히 아름다워 사색과 힐링을 즐기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오른편으로 나무로 지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왼편 숲길 사이로 나무데크가 보인다. 나무데크길을 따라 오르니 다양한 양치식물과 자작나무, 잣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오솔길을 따라 탐방로와 산책로 코스가 편안하다. 정상인 해발 920m까지 나무데크로 연결되어 있는데, 휠체어를 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로로 만들어져 있어 아이들과 장애인들이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산행을 즐기기에도 적당해 보인다.
천천히 숲길을 따라 오르니 맑고 서늘한 바람이 나무숲을 돌아 내려와 작은 꽃들을 흔든다. 바람이 나무와 꽃들 사이를 기웃거릴 때마다 산숲의 자작나무들이 일렁이는데, 이는 마치 다디단 꽃비가 내리는 봄의 풍경, 눈부시게 떨어져 파도에 반짝이는 여름 햇살의 서경과 비슷하고, 또 다른 가을만의 독특한 서정으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평화롭고 신성한 숲의 기운이 꽉 막혀 있던 가슴에 긴 호흡의 숨길을 열어주는 듯하다. 키 큰 자작나무숲을 걸으니 그 사이로 맑은 바람이 흐르고 가을 하늘이 더 높아진 듯하다.
<글·사진 이강 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