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제보자가 치른 대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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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줄기세포’ 제보자가 치른 대가는

진실, 그것을 믿었다
한학수 지음·사회평론·1만9800원

황우석 사태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났다. 2005년 5월 황우석 박사는 <사이언스>에 체세포 핵이식을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는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은 것이었다. 한국 사회는 열광했다. 난치병이 치유되고 줄기세포가 막대한 부를 가져올 것이라는 환상에 젖었다. 무조건적인 지지였다. 그러나 그해 12월 MBC 「PD수첩」은 줄기세포는 없고 논문의 데이터는 조작됐음을 밝히는 보도를 한다.

게시판에 올라온 한 통의 제보로 시작한 취재는 난자를 모으는 비윤리적 연구과정까지 파헤쳤다. 그러나 방송이 보도되고 궁지에 몰린 것은 황우석 박사가 아니라 담당 PD였던 한학수 PD와 「PD수첩」이었다. 황우석 지지자들은 MBC를 항의방문했고 「PD수첩」의 광고는 전면 철회됐다.

그러나 결국 취재 결과 줄기세포가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듬해 황우석 박사는 연구비 횡령, 사기 등의 혐의를 안고 법정으로 향해야 했다. 이 책의 지은이인 한학수 PD는 당시를 진실과 국익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이라고 회고한다.

이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던 최초의 제보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책 속에서 ‘닥터K’로 등장하는 제보자는 보도 이후 다니던 병원에서 강압적으로 사직서를 써야 했다. 그 뒤 1년 넘게 실직상태로 있으면서 복직을 기다렸지만, 복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전공을 바꿔 병리학과로 전과해 다른 병원에 자리를 잡게 됐다.

제보자를 만난 당시, 지은이는 수많은 제보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상처를 받았음을 즉각적으로 떠올렸고, 그 또한 피해자가 될 것임을 예상했다. 제보자들 중 상처를 넘어 ‘왕따’가 되어 사회에서 격리된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그의 예상대로 제보자는 진실에 대한 호된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책 속에서 지은이는 “대한민국은 제보자 K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며 “제보자가 앞으로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가느냐가 곧 한국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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