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결혼에서 이혼으로 끝난 ‘KB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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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 해결의 본질은 부잣집의 재물을 탐낸 토호를 저 먼 곳으로 쫓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멀게는 ‘관치금융의 청산’이고 가깝게는 ‘낙하산 인사의 방지’다.

“부부싸움 좀 시끄럽게 한다고 경찰이 나서서 강제로 이혼시킨 꼴이다.” 이건호 행장과 임영록 회장이 서로 대립하면서 몇 달여를 끌었던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몇 년간 계속될) KB사태를 두고 어떤 금융계 인사가 한 말이다. 이번 사태의 어두운 일면을 정확히 짚어낸 명언이다. 확실히 이번 사태의 수습과정에서 ‘경찰’인 감독당국의 개입은 적절한 방식과 강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는 이번 KB사태의 심연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계속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애초에 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을까?” 하는 데 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곱씹어봐야 비로소 KB사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9월 17일 서울 명동 KB금융지주 로비에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 강윤중 기자

9월 17일 서울 명동 KB금융지주 로비에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결혼은 연애결혼이 아니라 ‘정략결혼’이었다. 그러니 당초부터 애정이 있었을 리 없었다. 그럼 정략결혼은 왜 발생했을까? 모든 정략결혼이 그렇듯이 ‘떡고물’을 노리는 탐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KB사태를 앞서의 비유에 기대어 조금 더 정확히 묘사하자면 “먹잘 것이 많은 부잣집의 재물을 탐내서 힘 있는 사람들이 강제로 아들 딸을 정략 결혼시켰다가 서로 싸움이 심하자 갈라 세운 꼴”이다.

많은 언론들이 이번 KB사태에서 과도하고 어설프게 개입한 금융감독 당국의 잘못을 지적한다. 맞다. 경찰 노릇을 했던 감독당국의 사후 개입과 제재 과정은 촌스러웠다. 경찰의 개입 범위는 부부가 부부싸움을 적당한 선에서 하도록 유도하면서, 부잣집의 기물이 지나치게 망가지거나 이웃집 사람들의 숙면을 방해하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하는 것이 옳았다.

‘부잣집’ 노리는 주변의 ‘토호’들
그러나 우리가 더 깊이 천착해 보아야 하는 것은 애초에 왜 이런 정략결혼이 생기게 되었는가 하는 구조적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 부부의 이혼 이후 또 다른 정략결혼이 발생할 것이고, 이 부잣집은 계속 망조가 들고 그 과정에서 머슴들은 “심하게 눈알만 굴리는” 형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략결혼이 생기는 핵심적인 이유는 ‘부잣집’이 존재하고, 그 부잣집에는 적절한 ‘상속자’가 없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호시탐탐 힘쓸 기회만 노리는 주변의 ‘토호’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잣집을 가난하게 만들어버리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면 적절한 상속자를 찾아주고 토호가 어슬렁거리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런데 부잣집을 인위적으로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은 무언가 우리 맘에 들지 않는다. 따라서 해결책의 실마리는 두 번째 방향, 즉 부잣집을 잘 보존하고 그 옆에서 군침 흘리는 ‘잡것’들을 저 멀리로 내쫓는 것이다.

비유는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짓고 현실로 돌아와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해보자. 위의 비유에서 부잣집을 가난하게 만든다는 뜻은 금융산업의 초과이윤을 줄여나간다는 뜻이다. 통상 이런 목적을 위해 경제학이 지지하는 해결방식은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금융산업, 특히 은행이 개입된 부문에서 완전히 진입장벽을 헐어서 경쟁을 촉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경쟁의 효율성은 비효율적인 기업을 망하게 하는 데서 연유하는 데 은행을 손바닥 뒤집듯이 망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산업은 인가를 통해 진입을 통제하고, 그 결과 은행산업은 근본적으로 불완전 경쟁에서 연유하는 초과이윤을 누릴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부잣집을 가난하게 만드는 해결책은 선택 불가능한 것이다.

‘모피아’ 없어져야 관치금융 청산
상황이 이렇다면 부잣집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에 합당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우선 선결과제는 적절한 ‘상속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사람이 없으니까 이곳저곳의 토호들이 자신들이 친아들, 친딸이라고 우기면서 재물을 향해 덤벼드는 막장 드라마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행의 주인 찾아주기” 문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 어떤 이는 은행에 확실한 대주주를 찾아주는 방안을 언급한다. 그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은행처럼 그 파급효과가 크고 국가가 세금으로 망하지 않도록 보장해주는 기업을 잘 운영할 ‘착한 대주주’를 찾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여차하면 돈을 빼돌려서 자기 잇속만 차리고, 손실을 국민에게 떠넘길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우글우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상속자’를 찾아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인구조가 잘 정렬된 기업지배구조를 갖추도록 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은 이번 KB사태가 이처럼 폭발한 이면에는 KB국민은행의 이사회와 KB금융지주의 이사회에도 응분의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사들이 각각의 회사를 위해서 충실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해 조금 더 책임추궁이 쉽도록 대표소송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이중대표소송 제도의 도입이다. 그래야 KB금융그룹의 소수주주들이 KB금융지주는 물론이고 KB국민은행의 이사들에게 회초리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번 사태 해결의 본질은 부잣집의 재물을 탐낸 토호를 저 먼 곳으로 쫓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멀게는 ‘관치금융의 청산’이고, 가깝게는 ‘낙하산 인사의 방지’다. 먼저 낙하산 인사의 방지를 위해서는 은행의 임원이 될 사람에게 적어도 3년 이상 금융업 경력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잣집을 호령할 생각이면 그 전에 그 집에 와서 몇 년 동안은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본질적 과제인 관치금융의 청산은 그리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과 모피아로 대표되는 이들 토호의 뿌리가 매우 깊고 그 탐욕의 속내가 아주 뻔뻔하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은 금융감독체계의 개편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개혁의 핵심은 ‘모피아 해체’다. 그동안 모피아는 한편으로는 정권의 이해관계에 봉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감독의 실무조직인 금감원을 수족으로 사용하면서 음으로 양으로 자신의 잇속과 영화를 챙겨왔다. 그들만의 위계질서와 끈끈한 동류의식의 기저에는 이런 이권창출 구조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치 한국은행을 정부로부터 독립시키듯이 금융감독업무를 정부로부터 떼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금융학자들이 관치금융 청산을 소리 높여 외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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