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위원장님 다녀가셨다”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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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저렇게 남북 ‘조선’이 다른 게 없을까요.” 9월 중순, 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을 본 누리꾼의 품평이다. 두 사진이 비교되어 있다. 위 사진은 “김정은 장군께서 다녀가시었다”는 북한의 한 공장에 붙어 있는 표어 사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안내판이다.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감천문화마을 방문’이라는 제목의 안내판이다. 주목을 끈 것은 남쪽의 안내판이다. 누리꾼이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어투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2012년 2월 24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계실’ 때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하여 주민들과 함께 골목길을 ‘다니시며’ 서민들을 위한 정책 마련을 ‘다짐하셨다.’” 따옴표를 친 극존칭에 거부감을 갖는 것.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부산시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에 저 표지판이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여행 블로그 등에 올라온 방문기에도 종종 등장하는 표지판이다. 사진은 대부분 “눈에 거슬렸다”는 의견과 함께 게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대통령이 되어서 방문하면 또 모를까,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방문한 것을 갖고 왜 안내문을 만들었을까. “서민을 위해 정책 마련을 다짐했다”는 건 “어부들은 다양한 물고기를 많이 잡아야 합니다”라는 유명한 김일성 주석의 교시처럼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저 안내판을 만드는 데 시민들의 세금이 사용되었을까. 부산시 사하구청 문화관광과에 문의해봤다. 돌아온 답. “아, 그건 우리가 아니라 창조도시기획단 사업이었습니다.” 세금이 들어간 건 맞았다. 몇 단계 더 거쳐 관련 담당자를 찾아냈다. “스토리텔링이 유행이지 않았습니까. 주민들과 운영위원회 회의를 하는데 그런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주민들의 요구로 설치되었다는 말이다.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 세워져 있는 박근혜 대통령 방문 안내표지판.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 세워져 있는 박근혜 대통령 방문 안내표지판.

‘스토리텔링’에는 사연이 있다. 2012년 12월, SBS 인기 오락프로그램인 ‘러닝맨’에서 이곳을 무대로 촬영했다. 그 전후로 방문객 수가 달라졌다. “스토리텔링으로 ‘러닝맨’이 다녀간 곳이라고 표기하면 어떻겠노?”라는 의견이 주민들로부터 나왔고,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과거 다녀간 일을 포함해 ‘별 보러가는 계단’, ‘미로미로 골목길’을 포함해서 4개의 안내판을 세우는 걸 건의했다는 것이다. 예산은 구에서 지출했다. 모두 다해 500여만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극존칭’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그것도 주민들의 요청? 형평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예를 들면, ‘러닝맨’의 유재석‘님께서도’ ‘다녀가셨을까’. “그런 건 아니고요. 왜 공무원들은 행사를 할 때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구청장님, 시장님 하는 식으로…. 박 대통령께서도 막 당선되었고 하다 보니 그렇게 문구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가 이 관계자와 통화하던 날,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이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했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1박2일팀도 이곳에서 촬영해 갔다고 한다. 사하구청 관계자는 “현재는 표지판이 4개밖에 없지만, 앞으로 1박2일 멤버가 다녀간 것 등도 추가해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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