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치 않은 전교 꼴찌의 최후.’ 9월 11일, 한 대형 인터넷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석차는 68명 중 68등 꼴등이었다”는 말로 시작되는 글이다.
중학교에 진학한 글의 주인공은 성적표를 도저히 그대로 보여줄 수 없었다. 잉크 글씨를 조작해 1등으로 만들어 집에 가져갔다. 아버지는 크게 기뻐했다. 가난했지만, 재산목록 1호였던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까지 했다. 대오각성한 주인공은 달라졌다. 나중에 대학 총장까지 오른 그는 33년이 지난 후 그때의 거짓말을 아버지께 고백하려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손자가 듣는다며 나지막이 말을 막았다. 그때 이미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글의 작성자는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이다.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의 산문 ‘아버지의 마음’. 유튜브 영상으로도 제작되었다. | 유튜브 캡처
그리고 반전. 누군가 댓글로 지방언론 기사를 달면서 ‘식스센스급 반전’(누리꾼 표현)이 시작됐다. 이 감동사연의 주인공이 대학 총장 재임 시절 간여했던 지역재단에 자신의 아들의 채용과 재면접에 부당 개입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담은 것이었다. 바로 며칠 전 보도였다. 누리꾼들은 “세 살 버릇 결국 못 고쳤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 궁금해 한 것은 이 ‘감동사연’에 나온 손자가 그 손자일까라는 것이었다. 맞았다.
보도를 바탕으로 확인한 아들의 근무처로 전화했다. “제가 맞고요.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네요. 인사팀과 통화해보세요.” 재단의 인사팀장은 곤혹스러워 했다. 그의 말을 정리해보자면 채용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실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해고 등을 조치할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설명이 이상했다. 박찬석 전 총장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지난 2월에 조사를 해서 다 결론이 난 사안”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에 따르면 언론 보도와 감사원 감사에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
박 전 총장은 한때 정치권에 몸담았다. 약 10년 전 그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대구에서 뿌리내리기 어려운 야권 성향 정당이었다. 그 뒤 재선을 포기하고 정치권을 떠났다. “그런데, 야당에서 그 재단비리를 제보받고 캤던 모양이에요. 그러니 ‘너희도 만만치 않다’는 식으로 아무런 상관없는 나를 물고 늘어진 것이지.” 그런데 감사원 지적사항은 대부분 사실 아닌가. “우리 아들이 대학 나온 뒤 외국에 가서 MBA 과정을 하다가 나왔어요, 중도에 포기했지만…. 그 뒤 삼성전자에 들어갔다 삼성 자회사로 옮긴 것도 사실이고…. 학사 졸업자가 선임연구원이라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모집 당시부터 현장경력 7년이 자격요건에 있었어요.”
처음으로 돌아가 감동받았다가 배신당했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박 전 총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렇게 연결하는 것이 적어도 제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죠. 자식이 잘못했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지요.” 그래도 아들인데 너무 냉정한 듯하다. “이 사건이 나고 난 다음 몇 번이고 관두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그만두면 도둑놈으로 몰리는 것 아닙니까. 오해가 풀리거나 한 뒤 관두면 몰라도….” 그는 더 큰 ‘비리구조’를 덮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음 기회에 본격 취재가 필요해 보인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