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혐오,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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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단식 조롱하며 특별법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사회 변화 자체를

간섭으로 여기는 비뚤어진 반권위 의식이 극단적 언행으로 표출

9월 6일 정오, 젊은 남성 수십 명이 보수단체 농성장이 있는 동아일보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피자와 콜라, 쓰레기통 용도로 쓰일 고무통(일간베스트저장소 등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이기도 함) 등을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걸어들어갔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수십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단식에 참여한 일부 시민들은 ‘피자 투쟁’을 벌이러 온 청년들에게 항의의 뜻을 보였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피자를 들고 온 청년들은 세월호 농성장 반대편인 광화문광장 북쪽에 자리를 잡고 준비된 음식을 나눠 먹었다.

9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일베 회원 등 청년들이 ‘피자 투쟁’을 벌이고 있다. | 백철 기자

9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일베 회원 등 청년들이 ‘피자 투쟁’을 벌이고 있다. | 백철 기자

‘진보의 극단적인 언사 탓’ 강변
이날 행사를 주최한 아프리카TV BJ 검풍씨는 “일부에서는 피자를 나눠준 행동을 모욕이라고 하겠지만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것”이라며 “안산에서 세월호 현수막을 끊는 사람이 생길 정도의 민심이 있고, 광화문광장은 민심을 대표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검풍씨는 평소 자신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2000명가량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검풍씨의 방송에는 7000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들었다.

추석 연휴 전까지는 세월호 가족들을 조롱하는 민심이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졌다. 인터넷 SNS와 카카오톡 등을 통해 세월호 가족들이 “국가유공자들보다 몇 배 좋은 대우를 해달라”는 주장을 했다는 글이 퍼졌다. 그리고 어버이연합, 엄마부대봉사단 등 기성세대 일부가 세월호 가족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반면 ‘피자 투쟁’ 참가자들은 대체로 20대 남성이었다. 집회에 나와본 경험 자체가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피자 투쟁’ 참가자들은 진보성향 사람들의 극단적인 언사가 자신들을 극단적으로 내몬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최자인 검풍씨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가수 김장훈씨를 예로 들었다. 그는 “김어준씨는 방송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연설 때 눈 깜박인 횟수를 세며 조롱했다. 김장훈씨는 페이스북에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반대되는 말을 하면 바로 차단해버린다. 국민의 반을 일베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풍씨는 ‘피자 투쟁’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사람으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를 꼽았다. 그는 “여야 합의가 두 번이나 뒤집히더니 김영오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욕설을 한 것이 젊은 보수들의 불을 지핀 것”이라고 말했다.

‘피자 투쟁’ 참가자들이 모였던 동아일보사 앞에서는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등 보수단체 인사들이 9월 2일부터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 선진화법 폐지’와 ‘세월호 특별법 반대’를 외치며 국회 해산 청원 서명을 받고 있었다.

변희재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논란을 계기로 농성을 시작한 것은 맞지만 국회 선진화법이 근원적 문제”라고 말했다.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소위 ‘민생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일각의 극단적인 언행에 대해 변 대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변 대표는 “(보수단체가 보기에) 가족들과 야당이 안 되는 걸 가지고 오래 끌다 보니 감정이 격해지는 반응이 나오는 것 아닌가”라며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맨 앞에서 활동하다 보니 여러 가지 검증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변 대표는 “우리와 함께하는 단체 회원들에게는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과도한 표현은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다”며 ‘피자 투쟁’에 대해서도 “가능하면 세월호 유족 근처에는 가지 않고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한성식씨는 “유가족들을 모욕하고 잘못된 사실을 인터넷에 퍼뜨리는 사람들을 보면 인격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며 “단식으로 뜻을 알리는 사람 앞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7월 18일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7월 18일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수세력 안에서도 ‘반인륜’ 목소리
과거 참사 유가족인 이후식 재난안전가족협의회 대표도 “온 국민이 공감대를 형성했던 세월호 참사도 결국 과거 참사들처럼 잊혀져가다 보니 함부로 말하는 사람도 나오는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만큼은 제대로 된 특별법을 통해 진상조사가 명확히 돼야 한다는 것이 과거 참사 유가족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세월호 가족들의 특별법에 22가지 보상이 들어 있으며, 이에 대해 “과거 참사 유족들과 형평을 완전히 잃은 소름 돋는 법안”이라는 글도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이후식 대표는 “우리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외쳐왔다. 과거 참사 유가족들이 세월호 가족들을 비난하는 마타도어의 소재로 사용되는 현실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일베의 사상’의 저자인 박가분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혐오감을 보이는 젊은 보수들의 행태에 대해 강한 정치혐오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씨는 “일베는 여야를 떠나서 공론의 장에서 ‘사회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표명하는 것 자체를 혐오한다”며 “사회 변화 자체를 자신에 대한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비뚤어진 반권위의식”이라고 분석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직후 세월호 유가족들은 온 국민의 위로를 받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자 이들을 다른 정치세력을 보듯이 하는 극단적인 여론이 생겨났다는 분석이다.

이런 극단적인 주장이 계속 오프라인으로 나올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박가분씨는 “이들이 집단행동을 지속하려면 재특회(재일한국인 혐오단체)처럼 특정한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특정한 가치관을 가진 운동이라기보다는 방향과 목표를 잃은 젊은이들의 행동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여권 내에서도 하태경 의원, 이준석 전 비대위원 등이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극단적인 언행에 대해 “반인륜”이라고 꼬집는 등 보수세력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혐오 여론을 부추기는 데는 방송의 역할도 한몫 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지난 9월 5일 ‘8월의 나쁜 보도’로 TV조선의 세월호 특별법 관련 보도를 꼽았다. 민언련은 TV조선이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시민 여론을 주되게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장·노년층과 50대 이상 여성층에서 반세월호 정서가 강하게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TV조선뿐만 아니라 채널A, MBC 등 다른 방송사에서도 대체적으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보도했다”며 “영향력이 큰 방송에서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 등을 전달해주지 않다 보니 국민들이 인터넷 루머 등에 혼란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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