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도 국정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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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눈]대기업들도 국정감사를

국회의원들이 진행하는 국정 전반에 관한 감사는 당사자들이야 어떻든 연구자로서는 감춰진 자료들이 나오는 귀중한 통로다.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의 현애자 의원이 국정감사 때 밝혀낸 아토피에 관한 지역별 통계는 여전히 이 분야 연구의 바이블과도 같다. 요즘 국회의원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한다는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대부분은 법을 제때 안 만든다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국정감사에 대해서만큼은 다다익선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이 하면 할수록, 자세히 하면 할수록 세금 낭비도 줄고, 부패도 줄어들 것이다.

내 질문의 요건은 간단하다. 정부기관과 공기업 말고, 대기업들도 국정감사를 받게 할 방법이 없느냐는 것이다. 간만에 법률을 좀 뒤져봤더니 현재도 가능하다. 다만 ‘본회의가 필요하다고 의결한 경우’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은 예외적으로 7조 4항에서 감사원법의 감사대상 기관도 국정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감사원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의해서 보조금, 장려금, 조성금, 출연금 등 재정지원을 받은 자의 회계를 감사할 수 있도록 ‘선택적 감사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연결시켜 보면, 예를 들면 연구개발비를 받거나 정부 사업에 참여해서 돈을 받은 기업 혹은 정부 발주사업의 수주를 받은 곳들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고, 국회 본회의의 의결이라는 전제하에 지금도 국정감사를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한국의 공기업 등 정부기관은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다. 그렇지만 국정감사법 7조 3항은 이와는 별도로 한국은행,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이 세 곳을 콕 짚어서 국정감사를 받으라고 하고 있다. 정부 위탁사업을 많이 하고, 정부 돈도 들어가니까 국정감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4대강에 참여한 건설사들, 정부의 장기 연구개발에 주요 파트너로 참여하는 기업들에 대해서 국정감사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농협, 수협은 협동조합이지 공기업이 아니다. 그렇지만 정부 돈을 많이 쓰면 당연히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논리이다.

이걸 가장 부드럽게 처리하는 방법은 국가재정법이 규정하고 있는 예비타당성평가 흔히 ‘예타’라고 하는 제도의 평가대상을 준용하는 방식이다. 일일이 국회 본회의에서 한다 안 한다, 별도 의결할 것 없이 대규모 사업을 실시하기 전에 미리 평가하게 되어 있는 사업들과 일정 규모 이상의 연구개발 사업 등을 법률 안에 집어넣으면 가능하다.

대기업이 국정감사를 받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기업 경영이 최소한 지금보다는 투명해지고, 그 안에서 개선이든 혁신이든 새로운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귀찮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국회가 최소한 1년에 한 번 정도는 그 기업을 들여다보면서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는 게 알려지면 기업 신인도도 국제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국민이나 기업이나 전부 좋은 일이다. 국정감사에서 기업의 모든 걸 탈탈 뒤질 수는 없다.

국회가 논다고 요즘 난리다. 국정감사를 제때 할지 이것도 모른다. 이 기회에 국정감사에 정부 일 많이 하는 특정 대기업들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하면 좋겠다. 국회의원이 대기업을 국정감사 대상으로 한다, 이건 확실히 획기적이지 않은가?

<영화기획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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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