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적인 대결정치는 현상유지를 강화할 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정당이 사회적 약자의 민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그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노동의 해체와 사회의 양극화는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정당을 통해 대표되지 못하면서 한쪽에서는 국가 관료제와 거대 사익의 이익만 공고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힘의 절대적 불균형 상태는 팽창하는 국가기구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을 점점 어렵게 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130일이 넘었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의 발생과 그 이후 이어지고 있는 교착상태는 최장집 교수가 지적했던 한국 정치에 내재한 문제점들이 낳은 인재이자 참사일지도 모른다. 지난 8월 27일 광화문 연구실에서 최장집 교수를 만났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130일이 지났지만 진전된 것은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한국 사회가 책임이 결여된 사회인 것 같다.
“책임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의 책임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가장 큰 특징은 이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및 정부의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자 ‘국가개조’라는 엄청난 말을 썼다. 적어도 수사로는 국가를 개조할 정도의 큰 사건이라는 인식을 반영한 말이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빈약하기만 하다. 국가안전처의 신설, 해경의 해체, 해수부·안행부 등의 조직 축소와 같은 일부 정부조직 개편을 한다고 말했던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레토릭도 없어졌다. 유병언씨를 찾는 과정에서는 검찰의 무능함을 보여줬고, 사고의 진상조사 과정에서는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며 ‘의회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정부의 수장으로서 대형참사가 난 데 대해서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서 행정부가 해야 할 일을 지휘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의 기본 역할이고 책임이다. 다른 하나는, 야당에서 이 문제에 대응하는 측면이다. 세월호특별법을 처리하려는 야당의 협상은 실패했고, 여기에 대한 사회의 여론은 점점 격화되고 있다. 이렇게 여론이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는 것은 정당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에 책임을 묻는 과정으로서 지자체 선거와 재·보궐선거, 두 번의 선거가 있었다.
“야당은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세월호 사건을 이슈로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선거 경쟁에서 정부에 책임을 묻는 역할을 야당이 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거만큼 집권세력의 역할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이슈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대참사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에 대한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히 제시했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야당은 수준 이하였다. 그래서 야당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주기 어려웠다. 선거에서 진 이후에는 협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협상에서 실패하자 이번에는 장외투쟁으로 나섰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되풀이 보아왔던 야당의 행동패턴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투표를 통해 문제들이 일정하게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다.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그런데 야당은 정치적 양극화라고 할까, 제도의 틀 안에서 갈등을 풀어가기보다는 극렬한 대립적인 대결구도로 몰고 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역설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다루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양극적인 대결정치는 현상의 유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제도의 틀 내에서만 하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의 수준이 심각한 것 아닐까.
“나는 박 대통령이 스스로를 청와대에 너무 가두지 말고, 자신의 지지세력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도 개방적으로 대화하고, 시민들이나 또는 사회의 중요 집단들의 리더들과 대화하거나 소통하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넓은 사회로 나가는 리더십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현재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야당 강경파들이나 보수정부에 대한 급진적 비판자들이 하듯이 대통령을 격렬하게 비판하고, 증오심이나 적대의식을 북돋우고자 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전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와 타협하는 것이지 투쟁이 민주주의적 태도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 문제를 박근혜 정부에만 초점을 두어 말하기 어렵다. 정치란 정부·여당과 야당이 서로 한 쌍의 파트너가 되어 상호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실제 정치를 통해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 스타일이 대통령에게 결국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고, 이것이 결코 대통령 자신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정치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소통을 강제할 수 있는 야당의 영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민생’ ‘경제’ 프레임으로 세월호 정국을 돌파하려고 한다.
“대통령이나 여당은 아주 포괄적으로 ‘민생정치’ ‘생활정치’를 이야기한다. 막연한 말이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말이다. 이는 야당이 ‘민생’이나 ‘경제’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이나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야당이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된 메시지나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여야의 갈등축은 계속해서 ‘경제냐 아니냐’의 틀로 갈 것이다. 실제로 중요한 갈등은 주로 사람들이 먹고사는 경제문제를 둘러싼 것이고, 또 정치적 갈등도 그렇게 돼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투쟁적 문제에 몰두하는 동안, 마치 경제나 국민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는 것은 여당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평소 국가 관료제와 거대 사익의 이익이 공고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해 왔는데, 세월호 사건은 그 문제점이 가장 나쁜 방식으로 드러난 사건이 아닌가.
“‘세월호 사건의 중심에는 관피아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해수부와 해경과 같은 국가기구들은 과거와 달리 공적인 역할을 자신들이 직접 수행하지 않고 민영화를 통해 민간업체에게 외주화했다. 그 결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간의 경계가 서로 중첩되면서 어느 것이 공적인지 사적인지가 애매해졌다. 이 영역 사이에서 정부기구와 민간업체들이 해야 할 역할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박의 관리·감독 업무를 대행했던 민간업체인 ‘한국선급’이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행정관료의 이익과 기업의 사적 이익이 공생할 수 있는 유착과 담합의 넓은 영역이 형성되면서 비리와 부정부패, 탈법과 편법의 온상이 만들어졌다. IMF 금융위기 이후 시장주의, 시장 효율성이 전 사회적으로 확대되면서 공익적 정신과 가치 및 규범들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약화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게 해수부나 해경의 관할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번 28사단에서 일어난 윤 일병 사건도 마찬가지다. 군내 폭력사건들을 ‘관피아’ 현상의 결과로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군조직의 특별한 관료체계가 가져오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행정관료기구의 문제인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이례적인 참사였는데, 우리 사회에 일반화되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위험이 일상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위험은 사회학자 울리히벡이 말하는 ‘위험사회’에서의 ‘위험’과는 다르다. 울리히벡은 고도로 산업화된 현대사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항시적이면서 불가예측적으로 닥칠 수 있는 재난으로서의 위험을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물론이고 그 직후에 발생한 고양버스터미널 화재사고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사망은 노동자들의 노동현장과 외주업체의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상적으로 닥치는 현상이다. 예컨대 고양버스터미널 화재사고를 보자. 이런 사건의 희생자들 대부분이 노동자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이다. 만약 노동조합이 상당히 강하든가 노동자들의 권익이나 안전대책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는 환경이라면 이런 일은 훨씬 더 적어질 수 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선장이나 승무원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고용조건에서는 제대로 된 직업의식이 나올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위험상황에서 자기 살 궁리만 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도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해양 전문가는 세월호와 같은 여객선을 타고 인천에서 제주도를 간다는 것은 술에 만취한 운전자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평상시에 위험을 안고 운항을 했고, 관행은 그 위험을 허용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위험은 사회적 약자나 노동자들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위험이라는 요소가 강하다.”
그렇다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야당 또한 세월호 사건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위험’이라는 각도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나.
“야당이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불평등 문제나 양극화 문제, 청년실업이나 고용문제와 같은 노동문제 등에 대해 대안을 내놓았던 기억이 없다. 또 선거에서 그것을 이슈화해서 사람들에게 그 이슈의 중요성을 알리고 투표를 하게 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의 허약함은 정당이 사회·경제적 삶의 현실을 다루지 못하는 무능력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 점은 특히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자임하는 야당의 경우가 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야당은 그들의 공언과는 달리 중산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대표하는 조직적 기반, 사회적 기초를 갖고 있지 못하다.”
세월호 사건이라는 큰 사건이 터졌는데, 여기에 정치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다보니 지난번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사람들의 열광이 상당했다.
“교황의 방한은 외부로부터의 좋은 충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지도자들이 보여주지 못한 정신적 가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보호하지 못한 인간적 가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은 우리가 별로 접해보지 못한 가치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황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교황이 강조했던 중요한 가치를 현실 속에서 그리고 정치적으로 구현하려는 것이 중요하다. 한순간 열광한 뒤, 아무런 영향력이 남지 않는다면 금세 망각되고 말 것이다. 열광 자체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이것을 사회를 변화시키는 활력으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열광을 잘하는 사회이지만 이후 이에 대한 끈질긴 고민은 없었다. 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이 이상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생각해도 완전한 민주주의를 찾고, 또 자본주의에 비판적일 때는 자본주의와 정반대되는 어떤 경제질서, 또는 정신적 가치나 도덕적인 것들에 과도하게 기대한다. 그것보다는 차근차근히 냉정하게 현실을 바꾸고 개선해 나가는 지속적이고 끈기 있는 시도가 필요하다.”
세월호 특별법은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여야간의 합의가 중요하다. 비록 세월호 사건의 유가족들과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많은 시민들이 바라는 최대치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든지 접점을 찾아서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분위기에서는 이런 말이 들리지 않을지 몰라도 그것이 반드시 특별법일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땅히 희생자 및 유가족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 유가족들이 보상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보수적인 여론이 있다. 보수적 여론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특별한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이상한 소리를 하자 유가족들은 ‘우리는 보상을 받기 위해 이러는 것이 아니다’라고 대응했다. 그러나 희생자 및 유가족들은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 지금 세월호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양상들을 보면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 정당과 민주화운동 정당 간의 대결인 것만 같다. 여당은 야당을 ‘좌빨’, ‘종북’ 이런 이미지로 공격하고, 야당은 또 여당을 민주화 이전의 수구·독재세력으로 공격하고자 한다. 상대를 부정하고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려고 공격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권위주의 정당 대 민주화운동 정당 간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보수적 정책을 추구하는 보수적 성격의 정당과 진보적 정책과 진보적인 성격의 정당의 경쟁구도여야 한다. 한마디로 보수적인 민주주의와 진보적인 민주주의가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