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부터 평생 교육을 책임지는 나라,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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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만 3세부터 박사를 끝낼 때까지, 또는 직업 교육을 다 받을 때까지 등록금을 받지 않는다. 한 사람의 교육을 평생 국가가 책임진다. 일부 주에서 70만원 정도의 등록금을 받고 있지만 올해 안에 폐지된다. 취업이든 진학이든 본인의 선택에 따라서 언제든지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은 2주 전 <독일 학교서 더욱 빛나는 한국 학생들>편에서 독일의 교육제도와 영재교육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살펴보고, 학교-학부모-학생이 함께하는 학교 현장을 취재했다.

그렇다면 평범한 독일 현지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대학 입학을 준비할까? 독일학술연구처(DAAD)에 가서 독일 교육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독일 현지 가정에 두 달간 머물면서 지켜본 독일 청소년들의 생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김나지움 10학년인 요한나(왼쪽)와 예비대학생인 마이라. 둘은 뮤지컬을 하면서 가까워져 가족끼리 여행을 갈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는 선후배다.

김나지움 10학년인 요한나(왼쪽)와 예비대학생인 마이라. 둘은 뮤지컬을 하면서 가까워져 가족끼리 여행을 갈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는 선후배다.

독일학술연구처 한국 담당자와 나눈 독일교육 이야기
독일 공교육은 평생 무료인가?
“독일은 한 사람이 받는 교육을 평생 국가가 책임집니다. 만 3세부터 박사를 끝낼 때까지, 또는 직업 교육을 다 받을 때까지 독일인과 유학생 모두에게 등록금을 받지 않아요. 일부 주에서 70만원 정도의 등록금을 받기도 했지만, 올해 안에 폐지합니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대학 등록금을 폐지한다는 공약을 지킨 결과지요. 하지만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사회적 분담금(Sozialbeitrag)은 내야 해요. 학생들이 연대해서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거기에 사용하는 돈이죠. 한 학기에 40만원 정도인데, 반 이상의 학생이 한 학기 동안 시내의 모든 대중교통 수단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교통 티켓을 제공하는 비용이죠. 나머지는 장애학생을 지원하고, 기숙사와 학생식당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쓰입니다.

만 3세에 유아원(Kindergarten)에 입학할 때부터 교육 서비스는 시작됩니다. 만 6세에 초등학교(Grundschule) 4년 과정에 입학하는데 국제 사립학교는 국가 지원이 없으니까 학비가 무척 비싸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기초지식을 배운 뒤에 직업훈련을 받는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5~6년), 경제와 행정 분야에서 직업인으로 일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레알슐레(Realschule·6년)에 진학하거나,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는 김나지움(Gymnasium·8년)에 입학합니다. 김나지움 12학년 때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아비투어(Abitur)에 합격하면 대학에 갈 수 있어요. 독일은 반 이상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요. 뒤늦게라도 대학에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지원해줍니다.”

아비투어 시험은 무슨 과목을 어떤 방식으로 보나?
“김나지움 11, 12학년 때 아비투어 시험 준비를 집중적으로 시킵니다. 필수과목으로 독일어, 수학, 외국어를 배워야 해요. 그리고 사회과학(심리학, 역사, 사회학, 교육학, 철학, 법, 지리) 중 한 과목을 택하고, 자연과학(생물, 컴퓨터, 화학, 기술, 수학, 물리, 식품영양학) 중에서 한 과목을 택해야 해요. 또 종교, 철학, 문학 중에서도 한 과목을 택하고, 음악과 미술 중에서 한 과목을 택합니다. 그러나 스포츠는 필수예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자신이 선택한 수업을 강의실을 옮겨다니면서 듣게 됩니다. 최종 아비투어 시험에서는 필수인 독일어, 외국어, 수학 외에 한 과목을 선택해서 네 과목만 시험을 봅니다.

대학은 내신 성적과 아비투어 성적, 그리고 대학이 시행하는 면접시험 점수를 합산해 반영합니다. 그 중에 내신 비율이 60% 정도로 가장 높아요. 내신은 조별 발표와 구술, 필기시험이 모두 합쳐지니까 학교 공부를 성실히 잘해야죠. 시험문제는 모두 주관식이고, 주어진 자료나 텍스트를 분석하는 논문 형태가 많아요. 문학작품도 많이 등장하는데, 2년 전에 도서 목록을 학생들에게 알려줍니다. 한 과목당 4~5시간씩 총 20여시간 동안 시험을 봅니다. 특히 필수 한 과목은 말하기 시험으로 봐요. 학생이 어느 정도로 교과목을 이해하고 있는지 심층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서죠. 암기만으로는 절대 통과할 수 없어요.

성적 처리는 학교 선생님이 직접 해요. 공정성이오? 물론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죠. 학생이 이의신청을 하면, 학교 내 제3의 강사가 다시 채점합니다. 김나지움 학생이라고 모두 아비투어를 보진 않아요. 10학년이 끝나고 아비투어를 보기 싫은 학생은 11학년에 가지 않고 1년간의 직업교육 또는 현장실습을 거쳐 전문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 생활로 나갈 수도 있어요. 레알슐레를 졸업한 학생도 학업성적이 우수하면 김나지움 상급반에 입학하여 일반대학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 본인의 선택에 따라서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요.”

힙합 그룹 멤버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예비대학생 마이라.

힙합 그룹 멤버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예비대학생 마이라.

독일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궁금하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고 곧바로 유학 오는 경우엔 수능에서 62% 이상의 성적을 받았거나, 대학에서 2년 이상 수료한 증서가 있으면 독일 대학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독일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어학증명시험(DSH)은 통과해야 하고요. 성적이 나쁘면 그 해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학에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입학보다 졸업이 훨씬 어렵지만, 유학생들은 외국인을 위한 쿼터 적용을 받기 때문에 독일 학생들과 경쟁하는 것은 아니에요.

독일 대학은 서열이 없어요. 모든 대학이 비슷한 수준이고, 입학 허가 조건도 비슷해요. 자신이 원하는 과, 배우고 싶은 교수가 있는 대학을 찾아가서 아비투어 성적표를 내고 면접시험을 보면 돼요. 떨어져도 그 대학에 꼭 입학하고 싶다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6년까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회가 오죠. 대기자 중에서 입학 인원 일부를 반드시 뽑아야 하니까요. 기다리기 힘들면 다른 대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되고요. 전학도 자유롭습니다. 대도시의 대학들은 생활비가 많이 드니까 소도시의 대학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아요. 만 18세 미만 외국인은 부모가 독일에서 유학 중이거나 주재원일 경우, 예술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이 인정되는 경우(만 16세)만 입학이 가능해요. 미성년자가 혼자 유학을 온다면 절차가 무척 까다로워요. 독일에 거주하는 후견인이 학생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을 대사관으로부터 인정받아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통과하기가 어려워요. 언어공부를 충분히 하고 만 18세에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필자가 독일 교육제도를 취재하기 위해 독일학술연구처를 찾았다.

필자가 독일 교육제도를 취재하기 위해 독일학술연구처를 찾았다.

김나지움 10학년 요한나(Johanna·16세)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마르크 그레프 빌헬미네 김나지움 10학년 요한나예요. 11학년이 되면 아비투어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기에 요즘은 학교 합창단 활동과 뮤지컬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금은 방학이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극단에 뮤지컬 지도를 받으러 갈 거예요. 제가 다니는 유일한 학원인 셈이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요. 제 친구 중에는 벌써 졸업한 아이들도 있어요. 하우프트슐레에 간 아이들은 졸업을 하고, 취업할까 직업교육을 더 받을까 고민하면서 쉬는 중이죠. 10월 신학기에 11학년이 되면 아비투어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해요. 독일어와 수학, 영어 세 과목은 선택했는데 아직 한 과목은 선택하지 못했어요. 제가 음악 수업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음악을 선택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학교 선생님들이 음악을 선택한 학생들은 개인 레슨도 많이 해주시니까 학원에 다니는 애들은 없어요.

학교에서 개인 지도도 해주기 때문에 아비투어 시험은 충분히 잘 볼 수 있어요. 학교에서 배운 라틴어도 재미있어서 영어와 라틴어 중에서 무엇을 시험 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필수 과목인 수학은 정말 어려워요. 수업시간에 조별 활동을 통해서 잘하는 친구들에게 배우고, 그래도 모르면 방과 후에 선생님이 따로 지도해주셨지만 부족했어요. 그래서 학교 11학년 선배에게 과외를 3학기 동안 받았어요. 담임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셨죠. 학원요? 있긴 하지만 너무 비싸고 친구나 선배에게 배우는 게 더 편하고 쉽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학교 내에서 과외를 해요. 일주일에 보통 한 번 만나서 교과서 복습을 하죠. 한 시간에 10유로(약 1만4000원)를 내요. 잘하는 과목은 친구를 가르치기도 하고, 내가 못하는 과목은 과외를 받죠. 돈은 꼭 낸답니다. 저는 아직 누굴 가르쳐 본 적은 없어요. 성적이 뛰어난 건 아니거든요. 지금은 수학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마이라 언니는 학교에서 뮤지컬을 하면서 만났어요. 그때 친해져서 언니 집에서 자고 놀고, 언니 어머니랑 같이 여행도 가요. 오늘은 언니 집에 선물로 가져가기 위해서 어머니랑 같이 초코 케이크를 구웠어요. 만들어서 선물하는 게 가장 좋은 선물이니까요.

12학년 때 아비투어 시험에 합격하면 저는 미국으로 갈 거예요. 대학 입학은 1년 미루기로 했어요. 아버지는 엔지니어고 어머니는 학교 교사이신데, 많은 경험을 해보고 어느 대학에 가서 무엇을 전공할지 찾아보라고 하셨어요. 대학교에 가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니까 입학하기 전에 여행도 실컷 하고,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예비 대학생 마이라(Maira·19세) 이야기
“저는 작년에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오는 10월에 대학교에 입학하는 마이라예요. 아비투어 시험에선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그런데 대학교에 원서를 내지 않고 1년 동안 그림을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고, 댄스 학원에 다녔어요. 김나지움을 졸업한 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하기 전에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같은 나라의 유치원에서 독일어나 영어를 가르치며 여행도 하면서 세계의 문화를 체험하는 국가 프로젝트도 있어요. 70% 정도의 경비를 국가에서 지원해주죠.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려고 하다가 한국행을 택했죠. 한국어는 참 아름다운 말인데 배울 곳이 없어서 한국에 가서 어학당을 다녔어요.

대학 입시를 1년 늦춘 건,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내 진로를 선택할 수 없었거든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요. 우선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어요.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스페인어는 학교에서 배워서 구사할 줄 알았고, 포르투갈어는 어머니와 함께 배웠어요. 지금은 한국어가 가장 재미있어서 한국에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요. 1년 쉬는 동안 댄스학원에서 춤을 배우고,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많이 봤어요. 그림도 많이 그리고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도 실컷 찍었어요.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나 스튜디오에서 인턴 일을 하면서 일도 배우고 싶어요.

이제야 제가 하고 싶은 전공을 정하게 됐어요. 제가 방송 제작이나 콘서트 기획과 같은 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래서 10월에 미디어학과(바이에른주 바이로이트)에 입학해요. 아비투어 성적표와 저의 내신 성적표를 제출하고 면접시험을 한 시간 동안 봤어요. 왜 미디어과에 왔는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교수님과 대학교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자세히 물으셨고, 제 생각을 자세히 말씀드렸죠. 친한 친구와 같이 봤는데, 친구에겐 입학하라는 편지가 오지 않았어요. 친구는 또 다른 대학교에 면접을 보는 중이에요.

아비투어 성적요? 최고 평균 점수는 1점이고 최하위 평균 점수가 6점인데 저는 1.5점을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어떤 대학에 가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서 1년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고민을 해보기로 했던 거예요. 1등을 해 본 적이 있느냐고요? 독일 학교는 등수가 없어요. 성적표에는 오직 내 점수만 적혀 있죠. 내가 어떤 과목을 잘하고 또 어떤 과목이 부족한지 자세히 나와 있어요. 친구와 경쟁하고, 나보다 잘한 친구를 질투할 필요가 없어요. 누가 점수가 높고 낮은지 서로 잘 몰라요. 그런데 12학년 때 우리 반에 진짜 성적이 좋은 남학생이 한 명 있었어요. 직업학교에서 취업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대학교에 가고 싶어서 김나지움에 편입해 온 학생이었는데, 뒤늦게 공부를 하니까 재미있다고 정말 공부벌레처럼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아요.

과외는 받아보기도 하고, 제가 해보기도 했어요. 물리학이 어려워서 다른 학교 선배에게 1시간에 10유로를 내고 주 1회 지도를 받았죠. 수학을 잘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권유로 다른 친구들에게 수학 과외를 하기도 했어요. 복습에도 도움이 되고, 용돈도 벌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부모님은 제가 대학 입학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많이 하라고 격려해주세요.”

미안해, 괜찮아, 고마워, 사랑해, 멋지다
교육은 국가가 평생 책임지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생활비 대출을 해준다. 졸업 후 10년 동안 무이자로 원금의 50%만 상환하면 된다. 가난해도 마음만 먹으면 박사까지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자식 양육에 대한 경제적 고민이 없으니 부모들의 스트레스도 적다. 마이라의 가족이 온종일 반복하는 말이 있다. “미안해”, “괜찮아”, “고마워”, “사랑해”, “멋지다.” 한국 가정에서는 마음으로만 주고받는 말이다. 처음엔 듣기가 거북했다. 하루 종일 별것도 아닌 일에 “미안해”, “괜찮아”, “고마워”…. 하지만 몇 주가 지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비법이 그들의 화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다섯 개의 단어가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을. 가정교육은 대화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본·바이로이트 | 글·사진 박상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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