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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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의 눈]‘교황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춤출 수 없다.”

지난 8월 17일 해미읍성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 폐막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5일 방한 내내 이른바 ‘어록 신드롬’을 일으키며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교황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로한 것을 비롯해 밀양 송전탑, 쌍용자동차, 제주 강정 등 갈등과 아픔이 있는 곳을 찾아 손을 잡아주었고, 명동성당 미사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초청해 과거의 아픔을 보살폈다. 방한 기간 트위터와 블로그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언급한 문서는 60만건이 넘었다. 광화문 시복식이 열리던 8월 16일에는 100만명의 인파가 운집했고, 이날 하루만 약 16만건의 문서가 프란치스코를 기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힘이 세다. 그가 움직이는 모든 곳엔 ‘위로’가 있고 그의 메시지는 세계를 공명한다. 왜일까. 4박5일 방한 기간에 교황은 그가 ‘공감과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사실을 뚜렷이 각인시켰다. 교황은 갈등과 슬픔이 있는 곳을 찾아 위로와 용기를 전파했고,(공감) 스스로의 혁신을 통해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냈다.(혁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혁신 컨설턴트인 애덤 모건이 제시한 이른바 혁신의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 첫째, 직전의 과거와 단절했다. 마음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낡은 가구들을 버리지 않고 새 가구를 들여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혁신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낡은 과거를 내버려둔 채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지중해의 작은 섬 람페두사를 찾았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배가 난파해 지난 10년간 7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교황은 이곳에서 돈의 가치만 숭상하는 현대 자본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경제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을 호소했다. 교황청의 권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 낮은 이웃들에게로 향한 것이다.

둘째, 절대적 헌신이다. 혁신을 하려면 이전과는 다른 ‘과도한’ 헌신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방한 때도 방탄차를 타지 않고 소형차를 고집하며 사람들과의 접촉을 극대화했다. 경호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나 어린아이들을 안아주었고, 광화문 시복식 때는 차에서 직접 내려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 위로를 전했다.

셋째, 등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디에서나 교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정신을 담백한 언어로 전파한다. 몸은 낮은 곳에 있었지만 정신은 아주 고귀한 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최고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특별법 제정을 유족의 입장에서 최대한 지원한다고 했던 대통령의 약속은 금고 속에 갇혔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앞장서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을 마치 적인 듯이 몰아붙이고 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는 최소한의 절차를 무시해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모두 한 걸음씩 물러서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메시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소셜미디어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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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