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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빠진 새정련, 힘 빠진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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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 부메랑 맞고도 긴장감·의지 실종, 의총 참석자 고작 70여명…

지쳐가는 유족들 “진심으로 움직여 달라” 호소

14일 저녁 국회 본청 2층 출입구 앞. 단원고 2학년 고 김동영군의 아버지, 고 김건우군의 아버지는 불 꺼진 국회 본청과 본청 입구를 지키는 경찰들을 바라보며 연신 담배를 물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기댈 곳은 야당뿐이었다. 참사 초기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을 방문한 이후 유가족들은 정부·여당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 도중 일부 의원들이 복도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서성일 기자

11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 도중 일부 의원들이 복도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일부의원 “여당다운 야당 해야”
고 김동영군의 아버지 ㄱ씨는 “체육관에 박 대통령이 왔을 때 진심으로 박수를 친 사람도 많았다. 그만큼 정부가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으로 믿었던 것”이라며 “그런데 이제 보니 정부는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도 없고, 여당은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못 주겠다고 하니 어떻게 계속 믿을 수 있나”라고 말했다.

ㄱ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수년간 운영하던 음식점도 닫은 채 매일같이 국회 농성장에 나와 있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야당이 진상규명에 보다 확실히 나서주길 원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야당도 세월호 유가족들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지 않았다. 지난 7일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만나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대신, 특검을 도입하겠다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다.

박 위원장은 10일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진상조사위 구성에 유가족의 입장이 더 반영되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박 위원장도) 새누리당 같다”며 박 위원장의 협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고 김건우군의 아버지 ㄴ씨는 “그나마 11일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다시 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결국 세월호 유가족들을 선거에 이용했던 게 아니냐는 실망감은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11일 새정치연합 의총은 오후 3시부터 완전 비공개로 진행됐다. 70여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4시간 반 동안 28명의 의원들이 발언했다. 발언자 대부분은 여야 원내대표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백지화할 것을 주장했다. 의총 직후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의총에서는 8월 7일 여야 원내대표 합의사항으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바라는 유가족과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다”고 발표했다.

의원총회에서 맨 처음 발언한 이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 인사로 꼽히는 정청래 의원이었다. 정 의원은 “합의 내용도 과정도 인정할 수 없다”며 “누더기를 만들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의 힘이 부족해서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을 못 만들겠다면 솔직히 말씀드리고 깨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유승희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박영선 위원장은 더 협상할 자격이 없다”며 “재협상은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의원은 기자에게 “박영선 위원장은 ‘메시아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 여당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조금씩 우리 입장을 관철시켰어야 했다. 성과를 조기에 내야겠다는 조바심이 있어서 패착이 나왔다”고 말했다.

다만 정 의원은 “박 위원장 말고 다른 사람이 특별법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선 크게 공감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10일 국회 본청 앞에서 박영선 새정치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면담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10일 국회 본청 앞에서 박영선 새정치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면담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반면 당 일각에서는 당내 강경파가 선명성만 내세우며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3선 전남 강진군수를 지낸 황주홍 의원은 의총을 전후해 당내 강경파를 비판했다. 황 의원은 “안철수·김한길 전 대표도 당내 강경파에 시달려왔다”며 “동료 강경파들이 (박 위원장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 대해) 벌떼처럼 대들고 있다”고 묘사했다. 의총 다음날에는 YTN라디오에 출연해 “(새정치연합이) ‘선명 야당’이라는 기치보다 ‘여당다운 야당’으로 가야 우리도 여당이 될 수 있다”며 “좀 더 의젓하게, 어떤 것은 대범하게 여당에 협조하는, 그러면서도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래된 당내 강경파와 호남 보수파의 대립, 진보노선과 중도강화노선의 대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총 결과를 두고 새정치연합의 혁신 의지 자체가 낮다는 말도 나온다. 특정 인물이나 계파만 탓할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세월호 특별법이라는 중요한 안건을 두고 의원총회 참석자가 70여명이었다는 것은 사안의 긴급성에 비해 출석률이 저조한 것”이라며 “당내 위기의식과 긴장감이 여전히 바닥이라는 게 이번에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고 김건우군의 아버지 ㄴ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ㄴ씨는 “최근 국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야당이 우리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대하는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이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의 답답한 심정은 깊어져만 간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도 과거 다른 참사들처럼 결국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항상 갖고 있다.

유가족 ㄱ씨는 “예전엔 우릴 조심스레 대했던 공권력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다”며 공권력의 달라진 태도에서 세월호 참사가 망각의 늪에 빠진 징조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 직후인 지난 8일부터 경찰은 24시간 국회 본청 입구와 국회의사당 출입구를 지키고 있다. 11일에는 경찰이 국회에 들어오려는 유가족을 막는 일이 벌어졌고, 13일 오전에는 청와대 인근 청운동 주민센터 근처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집회를 하던 세월호 가족들을 강제해산시키기도 했다.

경찰 태도도 강경… “망각의 늪 징조”
이러다가 국회 농성장 자체가 강제철거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세월호 유가족은 “생계 등의 이유로 농성장에 참여하지 않는 유가족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고 가족들이 지치면 보상문제를 들먹이며 가족들을 분열시키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20명 가까운 세월호 유가족과 활동가들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고 하나, 14일 국회 농성장에는 ㄱ씨, ㄴ씨를 비롯한 5~6명만이 농성장에 있었다.

고 김동영군의 아버지 ㄱ씨는 “시간을 끈다고 해서 유가족들이 분열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야당의 모습을 주문했다.

“과거 야당의 모습처럼 지금 야당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움직여주셨으면 합니다. 나라를 바로세울 수 있도록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여야를 떠나 국회 전체가 정부에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한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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