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감사 결과는 한결같이 참모총장이나 장관 직전 단계에서 결정적인 보고가 끊긴 것으로 나왔다. 일부에서는 보고 라인의 육사 40기들이 동기생 사단장 보호를 시도했던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군 당국이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 등을 계기로 병영문화 혁신위원회 출범 등 갖가지 ‘사후약방문식’ 사고 대책안을 남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방부 감사관실은 “국방부 장관이던 김관진 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권오성 전 육군참모총장은 이 병장 등의 엽기적인 가혹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감사 결과를 지난 14일 발표했다.
국방부 감사 결과를 보면 헌병, 인사, 공보, 지휘계통 등 엽기적 가혹행위를 국방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에게 보고해야 했던 채널이 여러 곳 있었지만 이들이 일제히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공교롭게도 육사 40기생들이 최근 가혹행위로 인한 28사단 병사 사망사건과 22사단 GOP 총기 난사에 이은 무장탈영 사건으로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먼저 이모 28사단장(육군 소장)과 서모 22사단장(육군 소장)이 보직해임됐다. 일선부대 사단장은 같은 기수에서도 선두주자들만이 먼저 나갈 수 있는 직위다. 육사 40기에서도 선두주자 5명만이 소장 진급과 함께 1차로 사단장으로 진출했는데, 이 가운데 2명이나 이번에 낙마했다.

지난 12일 윤일병이 폭행으로 사망한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포병부대 부대원들이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또 국방부 감사 결과에 따라 선모 육군 헌병실장(육군 준장)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이모 육군 정훈공보실장(육군 준장)은 경고 및 주의조치 대상에 포함됐다. 이들 모두 1980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40기 동기생들로 결과적으로는 최근 일련의 군 사고로 인한 최대 피해집단이 된 셈이다.
국방부 감사 결과는 한결같이 참모총장이나 장관 직전 단계에서 결정적인 보고가 끊긴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주요 보고 또는 지휘·감독 라인에 있던 인물들은 헌병, 인사, 공보 분야에서 10년 이상 업무를 해온 베테랑들이다. 그런 만큼 해당 분야 군내 최고 전문가들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엽기적인 가혹행위를 군 수뇌부에 보고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 군내에서조차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보고 라인의 40기들이 동기생 사단장 보호를 시도했던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기무와 법무는 감사대상에서 제외
주요 보고 라인의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군기무사령부는 이를 견제해 총장이나 장관에게 직보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기무사 차원의 묵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 배경으로 기무사의 2인자이자 실세인 김모 참모장(육군 준장) 역시 육사 40기라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로 사건 자체를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던 정황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게다가 국방부 감사관실은 기무와 법무를 감사 대상에서 제외해 정밀조사와 문책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육군 관계자는 “감사 결과에 맞춘 짜맞추기식 해석”이라며 이 같은 여러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어찌됐든 국방부 감사 결과는 결과적으로 군 수뇌부 보호를 위한 꼬리 자르기식 징계로 이어지게 됐다.
군 당국은 최근 병영문화 개선책을 소나기식으로 쏟아냈다. 대부분이 과거에 이미 써먹었던 발표용 대책들이다. 정부는 503 GP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2005년에 대통령 직속으로 병영문화 개선위원회를 만들었다. 당시 나온 장병 기본권 증진을 위한 여러 가지 개선안들을 군은 이번에도 마치 새로운 대책인 양 재탕한 것이다. 병영문화가 실제로 개선이 되려면 기존에 이미 마련했던 대책을 준수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이유다.
그나마 병사들의 고립감 해소를 위해 병영 내에서 병사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 정도가 새롭게 눈에 띄는 정도다. 육군은 주 소통수단이었던 스마트폰의 상실로 병사들이 권태, 외로움, 불안 등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세대 장병은 입대 전 하루 평균 3시간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으나 입대 이후에는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난해 한국광고주협의회(KAA)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군 당국이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하려면 사용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안 앱, 보안장치 등을 설치하는 한편 사용 시간과 장소, 보관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사항들을 충분하게 검토하지 않고 육군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스마트폰 사용 검토를 밝히면서 여기저기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휴대전화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당장 허용하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군사보안 유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또 다른 병영 부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 허용을 둘러싼 논란
지금도 병사들은 흔히들 ‘싸지방’이라고 불리는 군대 PC방을 외부와의 소통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 군 PC방은 사이버 지식정보방의 줄임말로 군 장병의 사회와의 정보 단절 해소, 자기계발, 학습기회 제공을 통한 병영문화 개선 및 복지 선진화를 표방하며 이용되고 있다. 국방부는 “부대 사이버지식방의 인터넷 PC를 통해 부모 등과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화상 면회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라며 “특히 사이버지식방에서 스마트폰으로 화상전화를 할 수 있는 체계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군 PC방 이용도 군 수뇌부의 말 한 마디로 이용률이 오락가락하는 게 현실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방장관이 바뀌면서 ‘파이팅 투나잇’ 군대, 즉 ‘오늘 밤이라도 당장 싸울 수 있는 군대’를 부르짖자 열쇠를 걸어 잠가버리는 군 PC방이 속출했다. 혹시라도 군 PC방에서 게임하는 병사들로 인해 군기 빠진 부대라는 얘기를 들을까 우려한 일선 부대 지휘관의 지시 때문이었다.
사실 군 PC방은 오지 부대에서 고장이라도 나면 부품은 없고 고치기도 힘든 데다 외부 랜선이라도 연결할라치면 각종 보안 심사와 검열 서류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일선부대에서 관리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는 사이버지식방을 확대하고 운영 환경을 업그레이드해주는 게 병사들의 스마트폰 군부대 반입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스마트폰은 오히려 현대 전쟁의 핵심인 네트워크중심전(NCW)에 대비해 군내에 보급돼야 한다. 미군은 이미 무거운 무전기와 종이지도를 대체할 수 있는 전장용 스마트폰을 보급하고 있다. 미 국방부가 아프간 전쟁 이후 개발한 애플리케이션만 해도 수백개가 넘는다. 미군은 여러 전장에서 소부대를 디지털화한 후 전쟁 수행 방법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영국군은 적군이 설치한 폭발물의 위치를 찾아내 아군에게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한국군이 상용 스마트폰 기반의 통신체계를 군에 적용한다면 고성능의 정보기기를 적은 개발비용으로 조기 전력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스마트폰이 효율적인 미래 전투지휘체계 구축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NCW 구현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디지털화된 정보를 네트워크를 통하여 자유롭고 정확하게 유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원격감시 및 전투장비의 제어 및 조정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스마트폰의 활용 문제를 전투수단이 아닌 군내 가혹행위 해소대책의 하나로 내놓고 나서 보안 문제가 거론되자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또 군에서 누군가 스스로 나서 책임을 지려는 자세보다는 책임을 전가하려는 듯한 발표로 일관하는 한 군내 사건·사고는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