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구로공단의 굴뚝시대 근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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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동자들은 주당 45.6시간을 일하고 월 평균 196만5000원을 받았다. 전국 평균보다 3시간 더 일하고 22만원 적게 받는다.

여름휴가 절정기, 서울의 주요 도로가 한산하다. 서울지하철 1호선과 7호선 환승역인 가산디지털단지역의 출근시간, 지각을 피하려는 노동자들의 몸싸움이 치열하다. 20~30대 젊은 노동자들이 이어폰을 꽂은 채 웃음기 없는 얼굴로 걸음을 재촉한다.

3공단으로 향하는 7번 출구. 기륭전자 김소연 전 분회장이 1992년 가리봉역에 내려 서성이던 곳이다. 전봇대에 구인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던 시절, 두리번거리던 그는 봉고차에 태워져 갑을전자라는 회사에 내렸고, 이후 기륭전자까지 22년을 구로공단에서 보냈다.

20년의 시간, 바뀐 건 역 이름만이 아니다. 국가산업단지 1호 구로공단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공장 굴뚝은 아파트형 공장으로 바뀌었다. 허름한 백반집은 세련된 레스토랑으로, 푸른빛 작업복은 캐주얼 복장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도 달라졌을까?

수출의 다리에서 본 2공단 4거리 | 박점규

수출의 다리에서 본 2공단 4거리 | 박점규

20년 전 굴뚝 있던 자리엔 첨단건물이
건너편 2공단도 출근하는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권고사직 노동조건 후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상담받고 버티면 ‘끝’ 싸인하기 전 꼭 상담하세요” 공단 입구에 걸린 현수막이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시선을 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권고사직이 횡행한다는 얘기다.

2공단을 둘러본다. 1990년대 구로공단의 대표적인 민주노조 사업장 한국KDK가 있던 자리에 15층 백상스타타워가 들어서 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으로 유명한 대우어패럴, 효성물산이 있던 자리는 마리오아울렛, W몰, 현대아울렛이 차지하고 있다. 이곳이 1990년대까지 한국을 뒤흔들던 노동운동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1895일 투쟁, 94일 단식, 고공농성, 정규직화 합의, 합의 파기, 야반도주…. 여느 대기업보다 유명한 기륭전자가 있던 공사장 앞에 선다. 사장은 땅과 건물을 팔아먹고 날아버렸고, ‘가산동 지식산업센터 신축공사’ 현장은 3년째 멈춰서 있다. 기륭은 구로 노동자의 다른 이름이다.

금속노조 남부지역지회 사무실. 구자현 지회장의 손에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구조고도화사업계획서’가 들려 있다. 그가 공단의 역사와 변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 1990년대 구로공단 노조 조직률은 25%였다.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월급이 오르면 공단을 넘어 전국에 영향을 미쳤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노동자들이 정권을 흔들었다.

김영삼 정부는 1997년 ‘구로단지 첨단화 계획’을 추진했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공장 이전에 따른 보상에만 관심이 있었다. 구로공단 사장님들은 땅을 팔아 떼돈을 벌었다. 공장이 헐리고 첨단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첨단화 계획’에 따라 생산에서 판매까지 하나의 법인에서 하던 일들이 여러 개로 쪼개지고 나눠졌다. 분사화, 외주화, 소사장제, 하청화가 최첨단으로 이뤄졌다. 15년이 흘렀고, 노조 조직률은 전국 최하위인 2%로 떨어졌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1만1911개 회사에 16만2032명이 일한다. 한 업체당 13.6명이다. 지난 4월 15일 국가산업단지 지정 50돌 기념 토론회에서 발표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동환경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 노동자들은 주당 45.6시간을 일하고 월 평균 196만5000원을 받았다. 전국 평균보다 3시간 더 일하고 22만원 적게 받는다. 저임금 노동자의 24.4%는 주당 6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첨단 구로공단에서 하청의 하청으로 일하는 ‘IT 노가다’들에게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겉모습은 첨단시대이지만 노동환경은 굴뚝시대인 구로공단에서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사업단 노동자의 미래’는 지난 3년 동안 ‘무료노동 이제 그만’과 ‘노동법을 지켜라’ 등 많은 사업을 벌이며 변화의 토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수출의 다리를 건넌다. 왼편 현대택배 자리는 수영장이었다. 50년 전 구로공단을 세울 때 근로자아파트, 근로자복지센터, 운동장, 수영장을 같이 만들었다. 그런데 그 자리는 지금 호텔, 쇼핑센터, 택배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마저 팔아먹었다.

노조 사라진 공단, 병원 못 가는 노동자
3공단 끝자락 일회용 의료기기를 만드는 한국메티칼샤프라이. 구로공단에서 45년을 지켜온 회사다. 쉬는 시간, 방진복을 입은 여성노동자들이 줄지어 노조사무실을 들른다. 촉탁직과 청소노동자 4명을 뺀 156명이 모두 정규직이다. 월급은 조금 적지만 상여금도 있고 휴가도 많고 안정되어 있어 회사를 떠나는 사람이 없다. 90년대 가장 열악했던 공장이 지금 가장 나은 사업장이 됐다. 노조가 소중한 이유다. 정영희 지회장은 가까이에 있는 기아차노조 때문에 속상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기아는 지역 연대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회의에도 잘 안 나온다. 최근에는 정리해고 사업장 코오롱 불매운동을 하는데, 전 조합원과 가족들까지 코오롱 운동복을 단체 구매했다. 오죽했으면 기아차 불매운동을 하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기아는 주간 2교대 하니까 시간도 많고 조합비도 짱짱하잖아요. 노조 간부들이 지역에 나와서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정 지회장의 간절한 바람이다.

571번 버스가 3공단을 거쳐 디지털단지 5거리, 가리봉시장, 구로시장을 지난다. 구로한의원 김태식 원장은 1999년부터 15년 동안 공단 노동자를 만났다. 쪽방 주인과 병원 환자는 노동자에서 중국교포와 독거노인들로 바뀌었다. 기아차와 기륭전자를 비롯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가끔 한의원을 찾지만 산업재해로 한방 진료를 받는 노동자는 별로 없다. 노동조합이 사라진 공단,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첨단’ 노동자들이다.

네이버에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최규석의 만화 ‘송곳’에 나오는 남부노동상담센터에 문재훈 소장과 금천교육네트워크 최석희 대표, 기륭전자 김소연 전 분회장이 모였다. 20~30년 청춘을 구로에서 보낸 이들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50년 50인의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 <구로공단에서 G밸리로>를 건넨다.

인명진 목사를 시작으로 손학규 김문수 심상정 원희룡 박영선 박원순 등 ‘잘 나가는’ 49명이다. 책 서문에는 “특정되지 않은 마지막 50번째 인물”이라고 쓰여 있지만 주인공은 기륭전자 김소연이다. 운동을 팔아먹고 떠난 김문수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아 거부했기 때문에 비어 있다. 20년 공단의 이야기가 오간다. 어느덧 퇴근시간, 기륭전자분회 사무실 근처 식당. 공단의 어느 인쇄회사 노동자가 반가운 얼굴로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지방노동위원회 결정문을 문재훈 소장에게 건넨다. 돈 때문에 노무사를 구하지 못해 문 소장이 사건을 맡았다. 최석희 대표는 “문 소장님이 노무사보다 승률이 높다”며 너스레를 떤다. 최 대표는 2009년 평택역 기무사 민간인 사찰 피해에 대한 국가 배상금 일부를, 얼마 전 해산한 한국음향노조는 남은 조합비를 쌍용차에 건넸다. 쌍용차와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구로공단의 연대는 흘러간 옛 노래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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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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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