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 연민, 매력이 가득한….”
그레고리우스는 항상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고전문학 교사다. 아내는 5년 전 그레고리우스가 ‘지루하다’며 남편을 떠났다. 출근길, 비오는 날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는 한 여인을 구해준다. 붉은 코트를 입은 그 여인은 빗속으로 사라지며 남긴 것은 포르투갈어로 씌어진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 한 권과 15분 후 떠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 한 장을 남긴다. 이 책을 펼쳐본 그레고리우스는 큰 감명을 받고 홀연히 리스본으로 떠난다.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의 행적을 쫓기 위해서다.
빌 어거스트 감독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우연히 얻은 책 한 권과 티켓 한 장에 일상을 제쳐두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한 교사의 이야기다. 원작은 파스칼 메리시어의 동명의 소설로 독일에서만 2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배경은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독재시대다. 그는 1932년부터 1968년까지 30년 이상 1당 독재를 폈다. 독재체제가 무너진 것은 1974년 4월 25일. 이날 청년장교들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를 종식시켰다. 당시 시민들이 카네이션을 던지며 환영했다고 해 ‘카네이션 혁명’ 혹은 ‘리스본의 봄’이라 부른다.
아마데우와 호르헤는 절친한 친구다. 아마데우는 부잣집, 호르헤는 가난한 집 아이지만 불의에 대해 저항하는 생각은 똑같다. 둘은 살라자르 독재에 대항해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인다. 이때 스테파니아가 이들 사이에 끼어든다. 레지스탕스의 접선 번호와 인물을 다 외우는 스테파니아는 호르헤의 여자친구다. 하지만 아마데우를 보는 순간 그에게 반해버린다. 그레고리우스는 이들의 과거 행적을 캔다.
![[영화 속 경제]리스본행 야간열차-부산에서 리스본까지 유라시아 철도](https://img.khan.co.kr/newsmaker/1089/20140811_52.jpg)
그레고리우스가 출발하는 곳은 스위스 베른이다. 레일유럽(www.raileurope.co.kr)에서 검색해 보면 베른에서 리스본까지는 직통열차가 없다. 파리에서 한 번 갈아타는 열차를 선택하면 여행시간은 약 23시간 정도 걸린다. TGV 등 고속철도가 포함된 2등석 요금은 350유로(약 48만원)다.
그레고리우스가 베른에서 리스본까지 내달릴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이 철도망으로 촘촘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유럽 철도망에는 유럽의 제국 역사가 담겨 있다. 철도를 가장 먼저 깐 나라는 영국이다. 이를 받아들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철로 폭이 1435㎜인 표준궤를 깔았다. 산업혁명기라 물동량의 원활한 이동이 절실했다. 하지만 나폴레옹 집권 당시 프랑스의 위협을 받은 스페인은 광궤(철로 폭 1668㎜)를 깔았다. 프랑스군이 기차를 타고 스페인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같은 이베리아반도 국가인 포르투갈도 광궤를 채택했다. 러시아는 독일을 견제해서 광궤를 깔았다. 때문에 철도가 표준궤인 프랑스에서 광궤인 스페인으로 넘어갈 때 자동으로 열차의 바퀴폭이 바뀐다. 궤간가변 차량이라고 부른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리스본까지 가자는 구상이 있다. 한반도종단철도(TKR)에서 시작해 시베리아횡단철도(TSR) 혹은 중국횡단철도(TCR)를 거쳐 유럽철도와 연결하자는 유라시아철도 구상이 그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6·25전쟁으로 단절된 남북 철도 연결에 합의했다. 이듬해인 2001년 김정일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북한철도 연결에 합의하면서 유라시아철도 구상이 무르익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유라시아철도 연결은 뒤로 밀렸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주창하면서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라시아를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고 이를 통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자는 구상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서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철도를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라 부르고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