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직업이나 직분, 하늘이 준 업(業)을 천직이라고 한다. 교사, 소방관, 군인, 철도원, 배우, 연주자, 요리사, 농부 등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직이라는 말 속에는 긍지와 애착과 자존심이 배어 있다. 법정 스님은 천직을 가진 사람은 꽃처럼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고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날로 성숙되어 간다고 했다. 그러나 시대변화 앞에서 영원한 천직은 없다.
얼마 전 미국 구인·구직 정보업체 ‘커리어캐스트’가 ‘10대 몰락 직종’을 선정해 관심을 모았다. 3만여개의 직업 중에서 향후 고용전망이 급격하게 나빠져 쇠퇴할 직종을 예측한 결과 우체부가 첫 손에 꼽혔다. 커리어캐스트는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를 근거로 2012~2022년 사이 우체부의 고용하락률이 28%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메일과 SNS의 발달로 편지배달 업무가 줄어드는 게 주요인이라고 했다.

우체국예금보험 어린이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나유진양(작은 사진)과 나양의 작품. | 우정사업본부 제공
1만5000여명이 종사하고 있는 한국의 우편집배원 앞날은 어떨까. 해마다 손편지 물량이 줄어들고 집배신 공정이 빠르게 자동화기기로 대체되고 있어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커리어캐스트 전망처럼 10년 안에 몰락할 직업도 아니다. 근대 우정이 시작된 이후 유망직종으로 대접받은 적이 없는데 몰락직종이라니 새삼스럽다. 그들은 오히려 애환 속에서 우정사를 빛내고 수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왔다.
1906년 ‘만세보’에 연재된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자 박힌 벙거지 쓰고 감장 홀태바지 저고리 입고 가죽주머니 메고 문밖에 와서 안중문을 기웃기웃하며 편지 받아 들여가오, 편지 받아 들여가오, 두세 번 소리하는 것은 우편군사라.” 개화기 체전부들의 남루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편군사는 벙거지꾼, 배달부, 보발이(步撥)처럼 당시 서민들이 체전부를 얕잡아 부르던 호칭이다.
독립신문도 양반들로부터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는 체전부의 생활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 체전부가 서신을 전하려고 어느 양반 집 사랑에 들어간즉 그 집 임자 되는 양반이 크게 꾸짖어 가라사대, 아무리 개화된 세상이기로 벙거지 쓴 놈이 무엄하게 방에 들어오니 그럴 법이 어디 있냐면서 하인을 불러 이놈 잡아내어 문 밖으로 쫓아내라 하며, 이놈 저놈 호령하고, 그 괄시와 멸시가 비할 곳이 없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체전부 노릇할 사람이 없을지라.”(1897년 7월 3일자)
‘경(京) 다동(茶洞) 최판관택 입납’ ‘경 문밖 청패고개 나주서 올라온 양천 허씨댁 입납’ 따위의 주소 하나 들고 오직 두 발에만 의지해 우편물을 배달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로명 주소가 정비되고 이륜차나 자동차를 몰고 우편물을 배달하는 요즘엔 형편이 좀 나아졌을까? 많은 집배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 덕분에 뿌리 깊은 편견과 왜곡된 시각이 많이 교정되었지만 그들의 처지는 아직도 고단해 보인다.
‘직업은 당대 인간세계를 보여주는 창’이라고 한다. 직업의 변화가 사회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말일 것이다. 어른들은 뜨는 직업에 촉수를 세우고 지는 직업에서 빠져나오려고 기를 쓴다. 하지만 어린이들 눈에는 고마운 직업, 친근한 직업, 선한 직업만 보인다. 집배원이 그런 직업의 하나일 것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주최한 ‘우체국예금보험 어린이 그림그리기대회’에 출품된 알록달록한 작품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대상을 차지한 나유진양(부천 신도초 6학년)은 ‘힘든 이웃들도 기쁘게 찾아가는 우체국 택배 아저씨’를 그렸다. 전국 초등학생이 낸 3만8000여점의 작품 중에서 대상을 차지한 나양의 작품은 이웃과 더불어 생활하는 친근한 우편택배원의 모습을 멋지게 묘사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집배원들은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미련스럽게 일하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안 되는 영역이 있다. 집배원, 날마다 꽃처럼 피어나는 천직으로 오래오래 남기를….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