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 승패의 변수 ‘미디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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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첨단무기로 치러지는 실제 전쟁 장면이 TV를 통해 실황중계되는 시대다. 21세기 전쟁에서는 전장의 전투장면이 TV로 생중계되면서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최근 외신이 전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모습은 참혹하다. 현지 방송 화면을 캡처한 사진 가운데는 얼굴은 뿌연 재로 뒤덮여 있는 채로 고개는 뒤로 꺾이고 몸은 축 늘어진 아이의 사진도 있다. 글자 그대로 아수라장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런 가운데 외신은 또 한 장의 사진을 보도했다. 가지지구 북쪽에 위치한 이스라엘 스데롯의 언덕 위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의자를 가져다 놓고 가자 공습을 지켜보는 모습이다. 이스라엘이 발사한 미사일들이 하늘에 흰 줄을 그리며 날아가 가자지구의 어느 지역엔가 내리꽂히면서 폭발이 일어날 때 그들은 박수를 쳤다고 이 사진을 찍은 덴마크 신문 크리스텔리크트 다그블라트의 중동 특파원인 알란 소렌센은 전했다. 그는 가자지구 학살극을 실시간 관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하면서 ‘스데롯 시네마’라고 표현했다. 마침 휴대용 라디오, 망원경, 간이의자, 도시락 등을 준비한 후 팝콘을 먹으며 미사일 폭격 장면을 공연처럼 관람하는 이스라엘인들의 또 다른 사진도 보도됐다.

이스라엘군이 7월 7일 공습을 벌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은 8일에도 가자지구의 하마스 근거지 100여곳을 공습했고, 가자지구 경계에 2개 보병여단과 탱크를 배치했다. | A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7월 7일 공습을 벌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은 8일에도 가자지구의 하마스 근거지 100여곳을 공습했고, 가자지구 경계에 2개 보병여단과 탱크를 배치했다. | AP연합뉴스

요즘은 첨단무기로 치러지는 실제 전쟁 장면이 TV를 통해 실황중계되는 시대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 장면을 2000여년 전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펼쳐졌던 검투사들의 경기처럼 볼 수 있다.

빈 라덴 사살작전 백악관으로 생중계
언론이 전쟁을 생중계한 것은 1991년 미국과 연합국의 이라크 침공작전인 ‘사막의 폭풍작전’이 처음이다. 당시 압도적인 전력과 첨단무기를 앞세운 연합군의 ‘사막의 폭풍작전’은 CNN을 비롯한 방송들의 뉴스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 중계됐다. 전 세계 사람들은 전장의 상황이 라이브로 중계되는 데 깜짝 놀랐다. 이라크군의 사기 저하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후 TV 화면에서 실제 전쟁 장면을 보는 것은 흔한 일상이 돼버렸다.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 작전인 암호명 ‘제로니모 E-KIA’도 미 해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은신처로 접근할 때와 작전 종료 후의 현장을 담은 화면이 첨단장비로 백악관으로 중계됐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 윌리엄 데일리 백악관 비서실장 등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과 함께 40분에 걸친 작전 모습을 지켜봤다. 백악관은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에 오바마 대통령의 잔뜩 긴장한 표정,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놀란 듯한 얼굴로 화면을 주시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제는 특수부대원들이 군사작전을 펼칠 때면 헬멧에 달린 카메라로 현장의 상황을 녹화하는 일은 기본이 돼버렸다. 빈 라덴 공격작전도 현장 전투요원들이 헬멧에 착용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암호화된 상태로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백악관 상황실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때 사용된 핵심 위성은 국방위성통신시스템(DSCS)3와 통신 단말기들을 연결하는 밀스타 시스템이었다.

미군과 CIA는 5만피트 상공에서 수 시간 체공할 수 있는 무인정찰기(드론) RQ-170의 카메라와 여러 가지 센서 장비로 지상의 상황을 감시하고 녹화한다. 심지어 RQ-170은 적대국 항공기의 기내를 ‘스캔’해 무기 탑재 여부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미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실시간으로 녹화한 적대국 항공기의 기내 상황까지 중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쟁이나 전투 장면의 TV 중계는 외국의 일만은 아니다. 한국 국민들도 수년 전 저녁 뉴스를 통해 해군 청해부대의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을 시청한 적이 있다. 이 작전 모습 역시 한국 해군의 특수부대원들이 헬멧 카메라로 직접 찍은 것이었고, 이 광경은 서울 용산에 있는 합참 상황실로 실시간 중계됐다.

그런데 이런 영상미디어를 통한 군의 작전 공개에는 ‘정보 왜곡’의 개연성도 숨어 있다. 전문가들은 TV에서 본 장면은 아무리 현실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단계 건너서 보는 ‘2차 세계’이지, 결코 ‘1차 세계’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군당국 역시 국민들에게 ‘포템킨 마을’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제정 러시아 시대에 ‘포템킨 마을’(Potemkin villiange)이 있었다. 외국 인사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가짜 마을이었다. 1787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는 새로 합병한 크림반도로 시찰을 갔다. 당시 그 지역 지사인 그레고리 포템킨은 빈곤하고 누추한 마을 모습을 감추기 위해 가짜 마을을 만들어 훌륭하게 개발된 것처럼 눈속임을 했다.

미국이 대테러 작전에 활용하고 있는 무인정찰기(드론). | 경향신문 자료

미국이 대테러 작전에 활용하고 있는 무인정찰기(드론). | 경향신문 자료

지구 곳곳에서는 뉴미디어가 ‘포템킨 마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전쟁의 합리화 등의 목적을 위해 교묘하게 이용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아프간전 당시 미군은 CNN 등의 TV 뉴스를 통해 미 육군 레인저스(Rangers)가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남서쪽 95㎞ 지점의 공군기지로 낙하산을 이용, 침투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공개했다. TV 화면에는 낟알 크기의 초록점으로 빛나는 특공대원들과 파도처럼 움직이는 낙하산들이 가득했다.

애국심 자극하려 방송용 연출 장면도
미국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이 낙하산 침투는 TV 방송용 연출작전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미 육군 패스파인더(Pathfinder) 팀이 레인저스에 앞서 미리 탈레반의 공군기지에 침투해 탈레반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레인저스 대원들을 투입시키면서 야간 투시장비를 이용해 낙하장면을 촬영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미군은 영상미디어로 가슴 뭉클한 공중 강습 장면을 중계해서 미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본토에 있는 시청자들은 그런 전후 사정을 모르고 혹시나 미군이 공격을 당하면 어쩌나 하며 가슴 졸이면서 TV 화면을 지켜봐야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전 세계 어디에선가 전쟁을 하고 있다는 미군은 군사작전에서 영상미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장 잘 이해하는 집단이다. 미군은 지금도 작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라면 나라를 가리지 않고 공중에 실시간 영상중계를 위한 무인정찰기를 끊임없이 띄우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현대전이 화력 못지않게 미디어에 의존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21세기 전쟁에서는 전장의 전투장면이 TV로 생중계되면서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전쟁의 의미를 벗어나 ‘제3의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일종의 ‘미디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군은 보다 효과적으로 전장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달하기 위해 ‘임베드 프로그램’이라는 종군기자 프로그램까지 운용하고 있다.

실제 전투에서는 승리하고도 영상미디어를 사용한 사이버 세계의 선전전(propa ganda war)에서는 패배할 경우 아군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다. 이는 적군의 사기는 높아진다는 의미다. 그만큼 영상미디어는 ‘양날의 칼’이다. 어떤 목적과 의도가 개입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로 벌어질 수 있다. 한국군도 미디어 전쟁에 대비한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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