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특위위원 심재철ㆍ조원진 등 최악의 라인업, 유족들 이간시키고 망발 일삼아…
야당도 준비 부족ㆍ무책임 못 미덥기는 마찬가지
“참 대단들 하십니다. 의원님들, 정말 대단하시네요.”
다섯 시간 만이었다. 유가족들은 스스로를 ‘기다림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길 기다렸고, 해경의 구조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시신만이라도 온전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진도 팽목항에는 여전히 11명의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남아 있다.
국정조사에서도 유가족들은 기다려야 했다. 국정조사 중단을 선언하고 자리를 떠난 새누리당 의원들을 기다린 지 다섯 시간째, 더는 참지 못한 유가족들은 새누리당 국정조사 종합상황실을 찾아갔다. 심재철 국정조사특위 위원장과 새누리당 특위 간사인 조원진 의원이 종합상황실에 앉아 있었다. 유가족 중 한 명은 그들을 보고 질렸다는 듯이 “참 대단하다”며 분노와 한숨을 뒤섞어 내뱉었다.
지난 7월 2일은 세월호 국정조사에서 해양경찰청의 기관보고가 있던 날이다. 문제가 됐던 건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의 녹취록 인용이었다. 세월호 침몰시점인 지난 4월 16일 오전 10시32분에 청와대 관계자와 해경 상황실장이 통화한 부분이다.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김 의원은 “VIP(대통령)가 동영상을 좋아한다”는 발언을 했다. 김 의원의 말에 조원진 의원은 그런 말이 어디 나와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새누리당은 김 의원이 사퇴해야 국조를 진행할 수 있다며 퇴장해버렸다.
새누리 괜한 트집 잡아 국조 마비시켜
그날 오후 내내 텅빈 새누리당 위원석을 바라보며 유가족들은 “속 터져 죽겠네” “내가 들어가서 할복이라도 해야 하나”라며 까맣게 타들어간 얼굴로 한탄을 했다. 숫자 3이 쓰여진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온 유경근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무거운 얼굴로 연신 국정조사장을 들락날락했다. 숫자 3 안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3반 아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연신 서성이며 속을 태우던 유 대변인은 더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방청석에 털썩 주저앉아 소리쳤다.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내 새끼에게 네가 왜 죽었는지 알려주고 싶은 거 그거 하나면 되는데, 그게 욕심이냐. 내 새끼 죽어서라도 쳐다보면서 얘기할 수 있게, 죽어서라도 죄인되고 싶지 않은 건데….” 유 대변인이 오열하자 방청석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눈물을 쏟으며 기다렸지만, 새누리당 위원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국조가 중단된 지 다섯 시간이 지난 저녁 6시가 가까워지자 가족들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새누리당 종합상황실을 찾았다. 국조를 다시 진행시키라는 유가족들의 요구에 조원진 의원은 김광진 의원이 사퇴해야 국조를 다시 진행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국조 파행의 책임을 야당에 미뤘다.
“아까도 김현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측 간사)이 찾아왔는데, 저는 김광진 의원이 사퇴를 하면 나머지는 김현미 간사와 의논해서 국조를 이끌어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김광진 의원을 사퇴시키고 협의를 시작합시다. 야당에서 결론을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이게 다입니다. 김현미 간사가 사과하러 왔기에 저한테 사과하지 마시고 김광진 의원을 사퇴시켜라, 그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족들의 요구에 조원진 의원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자, 한 유가족이 목소리를 높여 화제를 돌렸다. 국조가 중단된 상황에서 심재철 의원과 조원진 의원이 국정조사 증인인 해경청장을 따로 만나고 있었던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김 의원이 말실수한 것보다 지금 국정조사 증인을 여당에서 따로 만나고 있는 상황이 훨씬 문제가 되거든요. 그럼 조 의원님은 간사에서 내려오시겠습니까?” 다른 유가족이 말을 이어갔다. “여당 국정조사 위원이 증인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판사와 피의자가 판결에 대해 입을 맞춘다는 것 아닙니까?” 유가족들이 연달아 따져묻는 사이 해경청장이 불려왔다. 유가족들은 해경청장에게도 따져 물었다. “기관보고를 해야 할 증인이 여당 위원들을 따로 만난다는 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국조 90일 중 일정조정에 30일 허비
유족들이 여당 위원과 해경청장의 만남이 부적절한 것이 아니냐고 거듭 따져 묻자 조원진 의원은 “나는 다른 일을 보고 있었는데, 해경청장이 들어오시기에 목마르시지 않냐며 음료수만 따 드렸을 뿐”이라는 군색한 답변만 늘어놨다. 조 의원의 변명에 유족들은 헛웃음만 쳤다. 조 의원이 더는 김 의원의 사퇴만을 요구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자 조 의원은 “여당 위원들끼리 회의 좀 하게 자리를 비워주십시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유가족들은 상황실을 빠져나왔지만, 국정조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상황실 앞을 서성였다. 혹시나 여당 위원들이 자리를 떠 국회 밖으로 나갈까봐서이다. 그 날 유가족들의 요구로 국정조사는 다시 재개됐다.
최악의 ‘라인업’이었다. 유가족들에게 새누리당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은 그랬다. 한 유가족은 “국정조사 위원들 면면을 보고 국정조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은 위원장인 심재철 의원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심재철 의원 때문에 진도 실종자 가족들과 안산 희생자 유가족들 사이에 큰 싸움까지 벌어졌다는 것이다. 국정조사 진행 장소를 서울이 아닌 진도로 하려고 했고, 가족들끼리는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심 의원이 진도 실종자 가족들이 내려오지 말라고 했으니 서울에서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실종자 가족 측에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유가족 대책위의 한 임원은 “기본적으로 심재철 위원장의 마음가짐이 국정조사를 원활하게 추진할 생각이 없다는 거고, 지금 국조만 봐도 그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선거나 중요하지 전혀 가족들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실망 차원을 넘어선 분노”라고 말했다.
친박 핵심이라고 불리는 조원진 의원에 대해서도 유감이 깊다. 국정조사장에서 유가족들에게 ‘유가족이면 가만히 있으라’고 이야기한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기관보고 일정 조정에 차질을 빚으면서 국정조사 일정을 허비했다는 것이다. 국정조사 90일 기간 중 간사 간 일정을 조율하는 데만 30일이 걸렸고, 유가족들은 이에 대한 책임이 새누리당 측 간사인 조원진 의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국정조사 시간에 졸아서 논란을 불러온 이완영 의원은 “기본 자질이 안 돼 있는 사람”으로 분류해 두었다. 유가족들은 입을 모아 “과연 새누리당에 국정조사 의지가 있느냐,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야당은 믿음직할까. 유가족들은 상대적으로 야당 의원들을 믿고 있기는 하지만 야당 또한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대책위의 한 임원은 야당이 힘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유가족들에게 기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국정조사가 시작하기 전에 야당 국회의원들 몇 명과 따로 이야기할 일이 있었는데, 이들 중 어떤 분은 오히려 대책위에 자료를 요구하더라. 명색이 국회의원인데. 야당이라서 자료 확보가 어렵다는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자료를 받아야지 대책위에 요구하면 어떻게 되겠나”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번 국정조사 파행 또한 야당의 힘이 아니라 유가족들 힘으로 정상화를 시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한 야당 관계자는 “솔직히 야당 혼자였으면 국정조사가 그렇게 중단된 거 다시 진행시키지 못했다. 세월호 국정조사는 무엇보다 유가족들의 동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 맞서 험난한 싸움 시작
국정조사에서 기관보고는 시작에 불과하다. 기관보고, 현장조사, 청문회, 특별법 제정, 특검 등 세월호가 남긴 숙제들은 산적해 있다. 그러나 정치권 내에서는 벌써부터 “세월호 참사 또한 이대로 유야무야되지 않겠나. 특검이나 특별법이 성과를 낸 적이 언제 있었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진상규명의 첫 단추인 기관보고에서부터 파열음을 내면서 어쩌면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유가족들은 정치의 최전선으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유가족들 또한 세월호 참사가 정쟁의 대상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정치적인 역학구도에 따라서 자신들의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대책위의 한 임원은 “이것은 분명 여야를 넘어선 일이다. 여야를 넘어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하고, 재발 방지를 해야 하는데, 7·30 재·보선 결과에 따라서 또 우리의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재·보선에서 여당이 이기면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고, 또 야당이 이기면 우리에게 좀 유리해지지 않겠나”라며 쓰게 웃었다. 정치권의 합의에 대책위의 목소리가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짙다. 지난 7월 4일 여야는 원내대표 합의로 오는 16일에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것으로 잠정 합의했다. 이에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여기에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유족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특별법 내용은 항상 같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여야가 합의할 내용이 유가족들의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는 뉘앙스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지위 고하를 막론한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를 담당할 범국민기구에 시민·사회단체와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잊혀지는 게 가장 두렵다”는 한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이가 돌 때부터 찍은 모든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았다. 망각의 관성에 빠진 한국 정치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힘겨운 기억의 정치가 시작된 셈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