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릴 만하면 병영 악·폐습으로 인해 발생하는 총기사고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근본적인 사고 발생의 토양을 제거하지 못하면서 군 당국의 입에 발린 대책만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군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10여년 사이에 일어난 굵직한 군의 총기사고를 보면 2005년 경기 연천 530GP 총기난사→2011년 경기 강화 해병부대 총기난사→강원 고성 GOP 총기난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국방부의 대책은 ‘미봉책’ 일색이다. 국방부가 앞으로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는 부대를 ‘그린-옐로-레드’ 등 신호등 체계로 분류해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중대나 소대는 그린(초록색)으로 분류해 관리하다가 관심병사나 신병이 많이 들어오면 ‘옐로’(황색)로 분류하고, 사고가 날 확률이 높으면 ‘레드’(적색)로 등급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한민구 신임 국방부 장관은 “보호관심병사 관리를 포함한 병력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종합적인 보완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7월 3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에서 동부전선 GOP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그렇다고 잊어버릴 만하면 병영 악·폐습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총기사고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군 내부에서조차 별로 없는 것 같다. 군당국은 총기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병영 내 악·폐습 타파를 위한 대책을 ‘세트 메뉴’로 내놓곤 했다. 전군 차원의 부대 진단, 제대별 정신교육, 국방부와 합참의 합동 실태점검, 인성 결함자 입영 차단책 마련 등이 대표적이다. 수년 전에는 심지어 육군일반명령 제03-21호로 이미 제정해 운영하고 있는 ‘병영생활 행동강령’과 똑같은 내용을 ‘국방장관 지시사항’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새로운 대책인 양 포장해서 전군에 하달한 사례도 있다.
정신과 군의관 1명이 1만2000명 담당
그러다 보니 전군에 부대진단 긴급지시가 내려지면 부대 지휘관들도 추가적인 행정업무가 생겼다고 불평이고, 병사들은 병사들대로 귀찮아 하게 마련이다. ‘부대 내 가혹행위가 있었느냐’ 등을 묻는 설문조사나 부대진단을 이유로 이뤄지는 여러 가지 조사 자체가 이들에게는 짜증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3년 전에는 병영문화 개선책 중 하나로 장교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하겠다”며 이등병으로 위장해 ‘이등병 비밀 체험’을 하는 사례까지 재탕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장교들이 전입 신병들의 고충을 직접 겪고 이해한다는 명분으로 신분을 감추고 이등병들과 함께 며칠간 생활한 후 체험담을 발표하는 절차를 밟은 것은 2005년 10여명의 사상자를 낸 연천 GP 총기난사 사건 당시 이미 실시된 바 있었다. 이것이 해병대 총기사고가 나자 새로운 시도인 양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근본적인 사고 발생의 토양을 제거하지 못하면서 군당국의 입에 발린 대책만 반복되고 있다. 당장 관심병사 문제를 살펴보더라도 군에서는 전문가가 관심병사 등급을 판정할 수 없다. 육군 군의관 중 정신과 전문의는 34명에 불과하다. 의사 한 명이 병사 1만2000명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부대 지휘관이 정확한 진단 없이 관심병사 등급을 분류해야 하는 형편이다.

지난 6월 28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연병장에서 열린 ‘동부전선 GOP 총기난사 순직장병 합동영결식’에서 희생 장병의 시신이 운구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군에서 퇴출되는 복무부적합 조기전역자는 최근 수년간 급증했다. 이들 대부분은 관심사병이다. 출산율 저하와 군복무 기간 단축 등으로 빚어진 병역자원 부족으로 과거에는 공익이나 면제자가 됐을 신체검사 대상자에 대해서도 징병검사 기준을 완화해 현역 자원으로 판정하는 바람에 관심사병이 덩달아 늘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방부 자료를 보면 징병검사 시 현역 판정 비율은 2000년 85.9%에서 2010년 들어 약 92%까지 높아졌다. 1980년대와 90년대 각각 45.4%, 64.2%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게다가 욕설·구타 등 가혹행위로 목숨을 끊은 병사 중 90% 이상이 관심병사다.
야전 지휘관들의 말을 빌리자면 도저히 군복무가 힘든 자원이 배치돼 애를 먹이다가 결국 현역 복무부적합 판정을 받고 ‘고향 앞으로 가’ 하는 사례가 늘었다. 실제로 현역병 복무부적합 조기전역자는 2009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군 부적합자를 공익요원 등 대체복무로 걸러내지 못해 일선부대 지휘관에게 관심사병 등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 됐다.
현역병 복무부적합 조기전역자 급증
국방부는 군복무에 부적합한 병사들을 조기전역시키거나 공익근무로 전환시키는 제도를 더욱 활성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위험군에 있는 병사들에 대해 현장 지휘관들이 적극적으로 전역심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개선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휘관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자칫 병력 관리를 못하는 무능한 지휘관으로 찍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제도가 정상궤도에 오르면 최대 2만명까지 복무부적합 판정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는 현실 속에서 가능하겠느냐는 반문도 나오고 있다.
사실 군 입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신체 건강한 자원만이 군복을 입어야 정상적인 군대다. 미국도 현역 자원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군의 경우 신병 모집 때 ‘복무부적합’ 판정을 받는 비율이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신병 입대 가능 연령층인 17세에서 24세까지 약 3400만명 중에서 복무부적합자가 7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특히 미국의 17∼24세 연령층에서 미군 입대에 관심이 있는 동시에 입대자격을 갖춘 사람의 비율은 1%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면서 미군에는 비상이 걸렸다.
‘관심병사’는 ‘문제병사’가 아니다.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군대라는 조직에 잘 어울리지 못할 뿐이다. 문제를 일으킨 관심병사만 집중 관리해야 한다는 군대 내 잘못된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관심병사가 돌출행동을 하는 건 상급자인 소대장이나 부사관 등의 잘못된 처신 때문에 빚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병사로 분류되면 오히려 병영 내에서 2차 피해자화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선 부대 내 구성원들의 집단 따돌림, 즉 ‘왕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병사 스스로도 무력감으로 적응력을 상실하고 심하면 현역복무에서 이탈하는 심리적 자포자기 현상이 발생한다.
군당국은 관심 관리가 필요한 인원들에 대해 사단에서는 비전캠프를 2개월 단위로 약 일주일간 심리치료 및 인성교육 프로그램 등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군단에서는 그린캠프를 월단위로 2주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관심병사로 분류된 후 사단 비전캠프나 군단 그린캠프에 입소하게 되면 부대 내 구성원들 모두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에는 이런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모범병사와 함께 비전캠프에 입소시키기도 했으나 이제는 비전캠프가 관심병사 연수원격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의 관심병사제도 대신 소원수리제도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담 등을 통해 신변 비밀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현실성은 별로 없는 형편이다. 군의 모병제도를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