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면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달그락거리고, 하루쯤 다리를 쭉 뻗고 게으른 잠을 잘 수 있는 삶은 인간다운 삶의 기본이다. 소위 ‘저녁이 있는 삶’과 ‘주말이 있는 삶’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박한 삶은 여전히 꿈일 뿐이다. 장시간 노동의 굴레가 너무나 견고한 탓이다.
빼앗긴 저녁과 주말을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해 도입된 것이 주 5일제(주 40시간 근무제)다. 국내에서 시행된 지 10년 만에 우편집배원들의 ‘숙원’이 풀렸다. 우정사업본부(본부장 김준호)는 7월 12일부터 집배원 토요배달 휴무제를 전면 실시하기로 했다. 마침내 온전한 주 5일제가 이뤄진 것이다. 우정노사는 지난해 12월 ‘7월 1일 실시’를 합의했었다. 한때 시행이 불투명하다며 노조가 반발하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노사대화로 원만하게 결론이 났다.
집배원들은 2005년부터 부분적으로 토요휴무를 했다. 통상우편물을 제외한 당일특급, 익일오전특급우편, 택배(등기소포) 등은 토요일에도 배달을 했다. 위탁택배원 등 대체인력이 소화하지 못한 물량을 집배원들이 배달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토요일엔 택배 업무를 일절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금요일에 접수한 우체국택배는 월요일에 배달된다. 홍보기간인 7월 말까지만 썩거나 변질 우려가 있는 택배에 한해 종전처럼 서비스한다. 그동안 주말에 우체국택배를 이용하던 고객들은 상당한 불편이 예상된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 받는 집배원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준다면 기꺼이 감내할 만한 불편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택배 소포를 정리하고 있는 집배원. 7월 12일부터 집배원 토요휴무제 전면 실시로 토요일엔 우체국택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640시간이다. 국내 근로자 평균(2090시간)의 1.3배에 달한다. 설날·추석·연말·선거기간 등 특별기간의 근로시간은 이보다 훨씬 늘어나 거의 살인적이다.
이들의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과 우편물 소통의 보편적 서비스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면 인력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노동강도를 줄이기 위해서도 집배인력 증원은 절실하다. 편지 등 통상우편물은 줄었지만 무거운 우편물이 급증해 노동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 최근 6년 새 우체국택배 물량은 83%나 늘었다. 배달 난이도, 소요시간 등을 고려할 때 택배의 업무부하량은 통상우편물보다 34배나 높다고 한다. 거기다 배달 여건까지 나빠지고 있다. 곳곳에 신도시가 생기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배달세대가 2007년 1869만 곳에서 2012년 2012만 곳으로 크게 늘어났다. 업무부하는 안전사고로 이어진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13년까지 최근 3년간 집배원 노동재해율은 2.54%에 이른다. 전체 노동자 재해율이 0.59%임을 감안하면 집배원의 노동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우정노사 모두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인력 증원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해 매출 2조7000여억원, 3600여개의 우체국 망, 4만5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우정사업본부가 예산, 인사, 조직 등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원은 안전행정부가,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 실제로 우정사업본부가 안행부에 올린 1137명 증원 요구는 올해와 내년에 각각 160명씩 늘리는 것으로 쪼그라들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최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체제는 근로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공공부문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2020년까지 OECD 평균수준으로 단축해 일자리 창출과 근로자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집배원의 건강권 회복과 ‘주말이 있는 삶’은 토요휴무제만으론 어림없다. 상시적인 고강도 장시간 노동 구조를 깨야 한다. 이를 위한 노사의 상생노력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집배인력 증원의 키를 쥔 정부의 의지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일자리도 늘고 집배원의 삶의 질도 개선된다. 이것은 정부의 약속이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